2013년 4월 8일 월요일

‘생명버스’ 탄 난치병 문주씨 “제발 공공의료 걷어차지 마세요”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4-07일자 기사 '‘생명버스’ 탄 난치병 문주씨 “제발 공공의료 걷어차지 마세요”'를 퍼왔습니다.

김문주(30)씨


동행르포 진주의료원 생명버스


재생불량성 빈혈로 11년째 고통
적자 빌미 103년 의료원 폐업에
갈곳 잃은 환자들 남일 같지않아


“저소득층·노인들 생명줄 외면”
“의료는 돈, MB정책 답습 우려”
민심 거스른 불통에 원망 들끓어



빗줄기가 버스 유리창을 때렸다. 전국에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친 6일 아침, 서울·광주·전주 등지에서 ‘생명버스’ 앞으로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폐업 강행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진주의료원 직원들과 환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앞유리에는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서울발 3호 버스 뒤편에 탄 김문주(30·사진)씨는 ‘재생 불량성 빈혈’이라는 난치병을 11년째 앓고 있다. 얼마 전까지 기초생활 수급자였던 김씨는 지금은 차상위계층이다. 이 병에 걸리면 골수에서 혈액을 만드는 기능이 망가져 면역력이 떨어지고 지혈도 잘 되지 않는다. 어지럼과 무기력증을 곧잘 느낀다는 김씨는 왜 왕복 9시간이 넘는 ‘생명버스’에 몸을 실었을까.

“난치병을 앓다 보니 병원 이용이 잦은데, 공공의료기관을 폐쇄한다니 저소득층 처지에서 너무 불안해요. 박근혜 정부가 대선 때의 (중증질환) 무상의료 약속은 제쳐놓고라도 공공의료만은 제발 걷어차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앞에서 3대의 생명버스에 나눠 탄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도 ‘공공의료의 훼손만은 막아야겠다’는 점에서만큼은 같았다. 3호 버스에 탄 대학생 이아혜씨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경남의 오세훈’이 되려 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적자는 ‘좋은 적자’인데 폐업을 하겠다고 한다. 돈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생명버스 탑승자들은 의료를 국민건강 증진 및 질병 치료라는 공공의 목적보다는 돈 버는 수단으로 여기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박근혜 정부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2008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촛불시위에서 의료 상업화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결국에는 2012년 10월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해지도록 경제자유구역법 시행규칙이 마련됐다. 또 정부는 2009년부터 해마다 약 60억원을 들여 민간병원들의 국외환자 유치 사업을 도와왔다. 그 결과 국외환자는 2009년 약 6만명에서 2012년 15만명을 돌파했다. 갈 곳 없는 저소득·노인층 환자들이 진주의료원에서 내쫓기고 있는 상황과 극단의 대비를 이룬다.

버스가 충남 천안을 지날 때쯤 지난 4일부터 국회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중인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의 문자메시지가 기자의 전화기에 날아왔다. “오늘은 제가 진주로 내려갑니다. 농성은 국회가 아닌 진주에서 계속 진행합니다.”

질긴 빗방울이 잦아들 즈음 생명버스는 농성 39일째인 진주의료원에 도착했다. ‘아픈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을 돌보다 아픈 사람들’을 찾아 ‘함께 아프고 싶은 사람들’이 진주에 모였다.



“돈보다 생명이다” “박근혜 복지공약 퇴색” 성토 이어져


호스피스 병동 뒤 살구·유채꽃
생의 마지막 힘겨운 절규인듯


‘귀족노조 걸그룹 미스B’ 펼침막
“노조 탓하며 노인 짓밟지 말라”
촛불 밝히고 노래·춤으로 응원



의료원 2층 강당에선 103년을 자랑하는 진주의료원의 역사가 동영상으로 흘렀다. 15년차라는 직원은 “우리 병원의 지난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친다”며 울먹였다. 39명만 남은 환자들의 말간 눈엔 불안이 가득했다. 특히 돈이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없는 노인들은 병원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진주의료원에 입원중인 안우용(91·왼쪽), 이갑상(79) 할아버지가 6일 오후 경남 진주시 초전동 진주의료원 앞에서 열린 진주의료원 지킴이 발족식에 참석해 생명버스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진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3년 동안 입원해 있다는 이갑상(79) 할아버지는 “딸이 있어도 연락이 안 된다. 다른 병원엔 돈이 없어 못 간다”고 했다. 흰 고무신을 신은 안우용(91) 할아버지는 “위암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여생을 마치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서해석(66)씨는 “주민과 환자의 뜻을 무시하는 홍준표 지사는 지지표가 한 표도 없는 ‘홍무표’”라고 소리를 높였다. 7층과 8층 노인병동 가운데 7층은 이미 텅텅 비었다. 8층에도 겨우 24명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얼굴에 분홍빛이 감도는 송윤석(84) 할머니는 “당뇨 때문에 다 죽었다 살아났다”며 “자식도 없고 정말 갈 데가 없다. 제발 폐업만은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조○선(f/76)’. 호스피스 병동의 한 병실에는 76살 여성 환자의 문패가 붙어 있었다. 문틈으로 말기 담도암 환자가 보였다. 병동 뒷산에는 살구꽃, 유채꽃이 흐드러졌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오히려 워태로웠다. 생의 마지막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호스피스 병동이 공공의료기관 진주의료원의 현실과 겹쳐졌다.

사실 진주의료원은 ‘돈 안 되는’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해 적자를 키웠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일반병원이 외면하는 의료급여 환자가 전체의 40%였다. 진주지역 저소득·노인층의 ‘든든한 생명줄’ 노릇을 톡톡히 했다는 점을 입증한다. 하지만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부채가 크게 쌓였다는 이유로 폐업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살아남을 곳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게 정백근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봐도 34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흑자는 7곳 정도이며, 그 규모도 미미한 수준이다. 전체의 65%가 100억원 이상의 부채를 가졌다. 이 때문에 만약 진주의료원이 폐업되면 다른 지방의료원도 순차적으로 같은 길을 밟을 수 있다.”

가뜩이나 지난 2월에는 민간의료기관도 공공보건 사업을 할 수 있고 이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공공의료법이 개정됐다. 현재 전체 의료기관의 6%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공의료기관을 더 확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개악’이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이참에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감염병 대처, 응급의료, 저소득층 진료 등 민간병원이 (낮은) 수익 때문에 맡으려 하지 않는 영역에 대해 공공병원이 손해를 감수하고 책임져 왔다. 중앙정부가 지방의료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국가중앙의료원이나 국립대병원이 지방의료원을 지원하게 하는 공공의료 발전망을 갖춰야 한다.”

밤이 왔다. 모두들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귀족노조 걸그룹 미스B’라는 펼침막을 내건 노조원들의 춤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마이크를 잡은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 말은 묵직했다. “경남도가 전시성·엉터리 사업 하다 적자를 잔뜩 내놓고, 귀족노조·강성노조 때문이라고 뒤집어씌운다. 의료급여 환자라고, 힘없는 노인이라고 짓밟는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지자체의 일’이라며 공공의료 확충 공약을 저버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21년차 간호사 박영애(45)씨는 “함께해줘 고맙다. 다시 힘이 났다”고 했다. 2010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2011년에는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맞선 ‘평화비행기’가 있었다. 불통의 시대를 힘겹게 통과해온 버스와 비행기는 이제 ‘생명’의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또다른 불통의 시대와 맞서고 있다. 저녁 8시께 버스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김문주씨는 “재생 불량성 빈혈은 골수이식을 해야만 낫는데, 의료급여를 받더라도 (내가 내는) 비용만 1500만원이 든다”고 했다. 김씨와 같은 희소난치성 환자들도 저소득·노인층과 마찬가지로 공공의료의 혜택이 절실하다. 이들 모두의 바람을 싣고 달린 버스는 밤 12시 무렵에야 출발 장소에 다시 도착했다. 서울의 빗줄기도 한층 잦아들어 있었다.


진주/손준현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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