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4-24일자 기사 '방송3사, 조현오 '노무현 차명 계좌 발언' 일제히 누락'을 퍼왔습니다.
노 전 대통령 관련 검찰 발표 그대로 받아썼던 것은 뭐지
노 전 대통령 관련 검찰 발표 그대로 받아썼던 것은 뭐지
언론은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각종 사건에 관한 정보의 유통에서 관문(gate)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언론계에선 흔히 이를 ‘정보의 길목을 지킨다’고 표현한다. 어떤 사건은 보도하여 독자 혹은 시청자들에게 흐르게 하고, 또 어떤 것은 아예 차단해 정보의 확산을 막는다.
23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중요한 법정진술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에서 조 전 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각돼 자살했다’는 발언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진술했다. 그 전까지는 “너무나 정보력이 뛰어나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수차례 독대하고, 검찰 고위직과도 친분이 있는 유력인사”라고 에둘러 말해오다가 비로써 그 인사가 누구인지 밝힌 것이다.
조 전 청장은 해당 발언을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과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의 이인규 중수부장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엄청난 파문이 예고되는 발언이다. 임 전 이사장은 국정원 산하 연구원의 수장으로 MB와 지속적으로 ‘독대’해 정보를 보고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97년 대선에서 ‘북풍 공작’의 담당자였던 임 전 이사장은 이후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노무현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그 활약과 인연으로 MB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그를 “MB 정부의 숨겨진 실세”라고 이해한다.

▲ 23일자 KBS 뉴스9 편성표
이인규 중수부장 역시 만만치 않은 ‘체급’의 인사다. 지금은 변호사가 됐지만, 당시 그는 공식적 수사 라인의 책임자였다. 조 전 청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검찰 최고 수뇌부는 물론 검찰을 지휘했던 최고 권력자 역시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 전 청장은 2번이나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조 전 청장의 발언을 두고, ‘위기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직 경찰청장으로 실형을 받아 법정 구속되는 ‘치욕’을 경험한 조 전 청장이 ‘앙심’을 품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임 전 이사장과 MB의 관계는 물 밑의 문제로 유야무야 방어한다고 하더라도, 이 전 중수부장까지 거론한 것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MB를 직접 겨냥한 ‘협박’이라는 지적이다.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 (달콤한 인생)의 상황을 빌어 설명해보면, 5년간 권력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가차 없이 버림받은 모욕적인 상황에서 조 전 청장이 “저한테 왜 그랬어요? 5년 동안 당신을 위해 개처럼 일한 나를 정말 죽이려 했어요” 이렇게 묻고 있는 격이다.

▲ 23일자 MBC 뉴스데스크 편성표
예기치 않게 죽은 권력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단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전개이고, 전직 경찰청장과 국정원 최고위층 그리고 사법 권력의 전위라고 할 수 있는 중수부장이 모두 연관되어 있단 점에서 파급력이 엄청나다. 뉴스 가치 측면에서 볼 땐, 방송 뉴스의 헤드라인을 차지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일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방송 3사 뉴스 가운데 어느 곳도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 이후 권력에 불리한 뉴스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KBS와 MBC는 물론이고 그나마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상대적으로 돋보인단 평가를 받던 SBS까지 해당 보도를 아예 편성하지 않았다.
방송 뉴스가 일제히 조 전 청장의 진술을 외면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방송 뉴스의 존재 양식과 사회적 기능에 대해 총체적인 회의감과 함께 시급한 성찰이 필요함을 드러낸다. 조 전 청장의 발언을 배제한 방송 뉴스의 행태는 집단적으로 아예 해당 사실의 유통을 단절시킨 일종의 ‘담합’ 행위라고 볼 수 있고, 정보 유통의 회로에서 관련 내용을 누락시키면서 사회적 여론의 통제자로 나섰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방송 뉴스들이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관련한 내용은 물론 이른바 ‘친노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표적 수사가 있을 때마다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던 것과 비교해보면 더욱 노골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체제에서 방송 뉴스는 권력에 불리하다 싶으면 알아서 버리고, 권력에 유리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취하는 종속적 기질이 만연되었다.

▲ SBS 8시뉴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언론이 게이트키퍼로 존재하고자 함은 근본적으로 정보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자로서의 ‘권력’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위계를 갖는 권력의 속성에서 볼 때, 언론 권력의 정치권력 종속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편향성과 정치적 지향성을 바탕으로 한 눈치 보기가 게이트키핑의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방송 뉴스를 보느냐’는 세간의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방송사들은 ‘공정성’과 ‘형평성’의 가치아래 중립적 뉴스를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해왔다.
그나마 방송 뉴스의 퇴행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방송 뉴스 자체에 아예 시큰둥해졌다. 방송 뉴스가 썩 괜찮은 평가를 받던 시절과 비교하면 ‘의제 장악력’은 말할 수 없이 초라해졌고, 사회적 올바름의 상징성은 완전히 소멸됐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방송 뉴스는 언론 본연의 기능으로 존중 받는다기보다는, MBC의 사례에서 보듯 시청률의 압박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계륵’ 같은 대상으로 전락했다. 조 전 청장의 발언을 누락한 23일 방송 뉴스는 뉴스가 어쩌다 이런 취급을 받게 됐는지의 근원적 단면을 보여줬다. 뉴스라는 미명 하에 정보를 통제하고, 보도를 누락해 권력에 신호를 보내는 방송. 그 위선과 기만이 오늘 방송 뉴스의 현실이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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