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6일 토요일

박근혜 정부 막장 드라마 ‘제1화’


이글은 시사IN 2013-04-01일자 기사 '박근혜 정부 막장 드라마 ‘제1화’'를 퍼왔습니다.
동영상 파문으로 사퇴한 김학의 법무 차관을 자리에 앉힌 건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측근 그룹이라는 게 정설이다. 출범 한 달,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인사는 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전을 거듭한 드라마는 휴대전화에 찍힌 동영상에서 시작했다. 1984년 건설업자 윤 아무개씨(52)와 결혼한 ㄱ씨는, 지난해 9월 남편 휴대전화에서 불륜 동영상을 찾았다. 남편과 여성 권 아무개씨(52)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었다. 동영상을 본 ㄱ씨는 한 달 뒤인 2012년 10월11일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10월16일에는 남편 윤씨와 내연녀로 의심되는 권씨를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ㄱ씨는 지난 2월19일 이혼 소송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결혼생활 파경 책임이 윤씨에게 있다”라며 위자료 1억원을 ㄱ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재판의 증거로 윤씨와 권씨의 성관계 동영상이 제출되었다. 지난 2월25일 간통 사건 공소장이 접수되어 서울중앙지법에 배당되었다).

간통 고소 한 달 뒤인 지난해 11월 첫 번째 반전이 일어난다. 윤씨 부인한테 내연녀로 의심을 사, 간통 혐의로 형사 고소를 당한 권씨가 다름 아닌 윤씨를 성폭행 등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권씨는, 윤씨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별장으로 유인해 차 안에서 약물을 먹이고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또 성폭행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으로 자신을 협박해 벤츠 승용차와 15억원을 가로챘다고도 했다. 
조사에 나선 서초경찰서는 윤씨를 붙잡아 집과 차량,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경찰은 두 사람의 내연 관계로 미뤄 강간 혐의 입증은 어렵다고 보았다. 윤씨는 사업과 취미생활을 함께하며 권씨와 내연 관계로 발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20여 차례 입건됐으나 간통 혐의만 기소


경찰은 대신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과 총포도검법 위반 혐의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다.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건설업자로 알려진 윤씨는 사기·횡령 따위로 그동안 20여 차례 입건된 적이 있는데, 확인 결과 간통 혐의 기소 외에는 한 번도 기소된 적이 없었다. 그와 관계를 맺은 경찰과 검찰 고위층들의 배경 덕이라는 말도 나온다.

ⓒ뉴시스 건설업자 윤 아무개씨가 고위공직자 등을 상대로 성접대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강원도 원주시의 별장에서 열린 또 다른 모임의 모습
  

권씨는 윤씨를 경찰에 고소하는 한편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가 박 아무개씨에게 윤씨가 가로챈 벤츠 승용차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박씨는 벤츠 승용차를 찾아오는 과정에서 CD 7장에 보관된 사회 유력 인사들의 성접대 동영상을 발견했다. 여기서 또다시 반전이 일어난다. 박씨가 벤츠 승용차를 권씨에게 돌려주지 않고 팔아버린 것. 또 승용차 매매를 문제 삼지 못하도록 권씨가 포함된 동영상을 비롯해 다른 유력 인사들이 담긴 동영상 일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가 이 같은 사회 유력자들의 성접대 현장이 찍힌 동영상의 존재를 경찰에 알리면서, 경찰도 사실 확인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말 고소 사건을 맡았던 서초경찰서 수사팀은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강원도 원주 별장에 있는 CCTV 화면을 확보했다. 이 즈음 화면에 찍힌 유력 인사들의 출입 장면과 차량 번호 대조작업을 통해 권씨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에 나섰다. 이때 성접대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경찰이 확보했다는 풍문도 있지만, 경찰은 당시 원본(CD) 동영상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경찰은 건설업자 윤씨, 내연녀 권씨, 권씨의 부탁을 받은 박씨를 CD 동영상 소지자로 의심만 했다. 또 윤씨의 지시로 유력 인사에게 성관계 장면을 휴대전화로 보낸 조카 윤 아무개씨도 동영상 보관자로 보았다. 당시 원본 동영상 확보에 실패하면서 경찰은 이 사건을 내사에서 수사로 전환하지 못했다.  

집단 성접대설은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올해 초 법조계와 증권가 ‘지라시’에 동영상 소문이 퍼진 것이다. 지난 2월에 접어들면서 김학의 대전고검장이 건설업자로부터 협박을 당한 당사자라는 구체적인 소문까지 돌았다. 
검찰총장 유력 후보로 올랐던 김 고검장이라 당시에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보통 검찰총장 인선 등 인사철을 앞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각종 음해성 루머가 돈다. “조폭과 친하다더라” “지방 근무할 때 현지처를 뒀다더라” “아무개 기업가를 스폰서로 뒀다더라” 따위이다. TK·PK·호남, 또는 서울대·고려대, 특수라인·공안라인 등 특정 학맥과 지연으로 얽혀진 검찰 내 파벌 사이에 벌어지는 파워 게임의 부산물이다. 실제로 지난 정권의 검찰총장 임명 때도 이런 루머는 파다했다. 

ⓒ뉴시스 김학의 차관은 3월21일 사표를 제출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공안통인 김학의 고검장은 이전에는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지 않다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력 후보로 발돋움했다. 친박계 경기고 인맥을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 멤버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민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대령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세 차례 참전하고 무공훈장을 받은, 김 고검장의 아버지 후광이라는 말도 돌았다. 

김학의 고검장은 검찰총장추천위원회의 1차 후보 9명에 올랐다. 그러나 이변이 일었다. 정권을 창출한 친박 그룹이 민다는 그가 지난 2월8일 결정된 최종 후보 3명(채동욱·김진태·소병철)에 들지 못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구성된 검찰총장추천위원회가 정권교체기에 ‘거수기’를 거부한 반란으로 받아들였다. 총장 후보에서 밀리면서, 김 고검장(사법연수원 14기)은 사법연수원 동기(채동욱·김진태)나 15기 후배(소병철)가 총장이 되면 자연스레 옷을 벗을 것으로 점쳐졌다.

3월13일 법무부 인사에서 또다시 반전이 일었다. 옷을 벗고 나갈 것이라던 김 고검장이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었다. 모양새가 이상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보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한 기수 아래지만, 장관의 경기고 1년 선배였다. 고등학교 선배를 차관으로 둔 꼴이었다. 더 이상한 건 검찰총장과의 관계였다. 여전히 서열 중심 기수 문화가 강한 법무부·검찰은 장관-총장-차관 순이 관례였다. 차관은 총장보다 기수가 늘 낮았다. 김준규 검찰총장(11기) 시절 황희철 차관은 13기였고, 최근 한상대 총장 때도 길태기 차관은 연수원 15기로, 총장과 2기수 차이가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동욱 검찰총장 후보자의 동기를 차관에 앉힌 것이다. 그러자 검찰 안에서는 김 차관을 두고 ‘친박 실세 차관’이라는 말이 돌았다. 총장을 시키려다 여의치 않자, 김 고검장을 실세 차관으로 앉혀 대통령이 검찰을 컨트롤하겠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였다. 

실세 차관 임명 전에 문제의 동영상 루머를 청와대 민정팀도 파악했다. 청와대 민정팀은 경찰에 내사 여부를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김기용 경찰청장은 내사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당사자인 김학의 고검장도 “윤씨와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다”라고 펄쩍 뛰었다고 한다. 당사자가 부인하고 경찰 최고위층도 내사설을 부인하자, 청와대는 인사철에 나도는 근거 없는 흠집내기 루머로 판단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적어도 지방검찰청장 정도 되는 기관장이 그런 지저분한 짓을 했겠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본인이 워낙 부인하니까 더 확인할 수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팀의 부실 검증 

비슷한 시기에 언론사에도 정보가 포착되었다. 언론사 취재가 시작되면서 김 차관이 임명된 다음 날부터 ‘고위 인사’ ‘유력 인사’ ‘고위층’ 성접대 보도가 줄을 이었다.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청와대 민정팀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경찰 수사팀을 불러 확인했더니 반전이 일었다. 내사를 하지 않았다던 경찰 수뇌부의 보고와 달리 현장 수사팀은 정반대 보고를 했다. 이미 지난해 말에 관련 진술을 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사건이 미칠 파장까지를 보고했다. 경찰 수뇌부와 수사팀으로부터 전혀 다른 보고가 올라오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공직기강 해이’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법으로 보장된 임기가 1년이나 남은 김기용 청장은 지난 3월15일 전격 교체되었다.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경찰청장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공약 파기라는 비판을 감수한 인사였다. 청와대는 공직사회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고 갑작스러운 교체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불거지면서 정반대 보고가 교체 배경이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월18일 내사에 들어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사흘 만에 수사로 전환하며 속도를 냈다. 연일 언론사 취재와 수사가 좁혀오자, 김학의 차관은 “턱도 없는 소리”라며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실명 보도를 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언론사에 으름장을 놓았다. 검찰 쪽에서도 동영상이 확보되기 전에는 확정할 수 없다고 정리되었다. 모두가 전무후무한 ‘성접대 낙마’가 불러올 후폭풍의 강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3월21일 실명 보도가 나온 지 만 하루도 안 돼, 김 차관은 낙마했다. 취임 6일 만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다섯 번째 낙마자가 발생한 순간이었다. 청와대는 뒤늦게 법무부 장관이 차관 인사권자라며 파장을 축소했다. 법조계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고등학교 선배를 차관으로 앉힌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보지 않는다. 친박계 총장 1순위였던 그를 차관에 앉힌 건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측근 그룹이라는 게 정설이다.  
출범 한 달,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인사는 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인사의 화룡점정을 김학의 차관이 찍고 낙마했다. 

고제규·김은지 기자  |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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