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3-05일자 기사 '“정부조직법 잠정합의, 청와대 전화와서 결렬”'을 퍼왔습니다.
SO 방통위 존치가 최대 쟁점… “정부 비판적 방송 채널 밀어낼 수도”
방송통신위원회 업무 분담과 관련,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했으나 청와대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새누리당은 “이제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분위기고 민주통합당은 “양보할 수 있는 만큼 했다”면서 “청와대가 하루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5일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해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5일 단독으로 3월 임시국회 소집을 의결했다.
복수의 여야 관계자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 3일 잠정 합의를 이루고 사인하기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유선방송사업자(SO) 인·허가권을 방통위에 두되 관련 법률의 제·개정 권한을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기자는 입장이고 민주통합당은 둘 다 방통위에 존치시켜야 한다는 입장인데 5일 공개된 합의문에는 IPTV와 PP(유선방송 채널사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방송 정책을 방통위에 존치시키기로 돼 있다.
새누리당이 전향적으로 민주당의 입장을 수용하는 분위기였으나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와 “SO 양보는 절대 안 된다”는 지시를 받고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다시 SO 인·허가권까지 미래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민주당이 언론에 흘린 합의문에 대해서도 김기현 수석원내부대표가 긴급 브리핑을 열어 “협상에서 주고 받았던 모든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유독 SO에 목을 매는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민주당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SO의 채널 배정권을 쥐고 방송을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을 직접 건드리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SO를 움직여 방송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라는 이야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단순히 산업 진흥 이외에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으로 국정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는 것과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ICT(정보통신기술)을 성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인데 정작 ICT 통합에는 관심이 없고 엉뚱하게 방송에만 욕심을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원식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박 대통령은 마치 방송이 ICT 분야 창조경제의 핵심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데 방송은 ICT의 극히 일부인 데다 성장산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거나 청와대 주변의 인의 장막이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보도와 비보도를 나누자는 입장인데 민주당은 애초에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요리채널이나 낚시채널에 새누리당·민주당 등 정치적 냄새가 있을 수 없는데 (민주당은) 자꾸 공정방송을 거론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SBS ‘힐링캠프’는 연예 프로그램인데 정치인들이 출연을 하기도 한다”면서 “이걸 보도·비보도로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5일 임시국회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있지만, 정부조직은 정부를 운영할 분의 뜻이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면서 “방송의 독립성이 우려되면 방송장악을 막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장관 한 사람이 방송 플랫폼 정책을 쥐고 흔들면 프로그램의 기획과 편성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면서 “장관 전화 한 통으로 마음에 안 드는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SO를 압박해 종편에게 황금채널을 배정했던 것처럼 독임제 부처가 SO를 콘트롤하면 정부에 우호적인 방송에 앞자리 채널을 주고 그렇지 않은 방송을 뒤로 밀어내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현행 방송법에는 SO가 PP의 채널 편성권을 갖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SO 업무가 미래부로 넘어가면 미래부 장관이 PP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도 인수위에서 통일부와 여성가족부를 없애려고 했다가 야당의 의견을 수용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수정한 바 있다”면서 “청와대가 기본 틀은 짤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는 야당의 최소한의 요구도 수용하지 않으면서 정부 부처를 자기 조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군주 시대에나 가능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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