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9일 토요일

‘안티조선 전사’ 변희재는 왜 ‘보수’로 변절했나 그의 준엄한 언어에서 조선중앙통신을 떠올리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913-03-08일자 기사 '‘안티조선 전사’ 변희재는 왜 ‘보수’로 변절했나 그의 준엄한 언어에서 조선중앙통신을 떠올리다'를 퍼왔습니다.


한때 ‘안티조선 운동의 전사’였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왼쪽)는 지금 보수진영에 서서 ‘종북세력’을 가려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 안티조선 운동을 함께 했던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한 식당에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글은 한겨레신문 2913-03-08일자 기사 '‘안티조선 전사’ 변희재는 왜 ‘보수’로 변절했나 그의 준엄한 언어에서 조선중앙통신을 떠올리다'를 퍼왔습니다.

[토요판] 특집 
한윤형이 만난 ‘보수논객 변희재’

한때 안티조선 운동의 전사였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보수진영의 논객으로 비장하게 종북을 가려내고 있다. 안티운동 전선에 섰던 몇몇 인사들에게 ‘변희재론’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논쟁할 가치조차 없다며 대부분 거절했다. 변희재의 행동은 어떤 면에서 진지한 코미디 같기도 했고 한편으론 그 또한 ‘놀이’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동지였던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가 변희재를 만났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그럴 만했다. 그가 (조선일보)에 기고를 시작한 뒤 불러주지 않던 (한겨레)가 몇 년 만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와 악수하면서 그는 “십년 만에 보네요”라고 했다. 내 뒤로 들어오는 ‘한겨레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아마 진보언론 사람들도 다시 찾게 될 정도로 자신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실감하고 기뻐했을 것이다.변희재 대표는 1974년생으로 이십대 때부터 자유주의자를 자처했고 ‘안티조선 운동의 기수’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웹진 (대자보)의 편집국장을 지낸 이후 (서프라이즈)와 (브레이크뉴스) 등의 웹진을 거쳐갔고 (한겨레)의 옴부즈맨 칼럼위원도 했다. 2005년부터는 ‘안티포털’ 운동을 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도 그런 성향의 글을 기고했으나, 당시 진보언론과 언론운동진영은 이에 대해 별다른 인지가 없거나 오히려 포털이 보수언론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 봤다. 언론비평지 (미디어오늘)에 보낸 포털 비판 글들이 게재되지 않자, 그는 2006년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언론운동진영에선 그걸 ‘변절’로 칭했다.

안티조선 주자에서 보수논객 대표주자로

이명박 정부 시절 (빅뉴스)와 (미디어워치) 등의 매체를 운영하는 그에 대해 진보진영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중적으로 화제가 된 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감사에 그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과 그 결과로 나타난 진중권의 교수 해임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온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비난과 이에 대한 명예훼손 법원 판례 정도였다.대선 정국에서 그는 진중권을 대상으로 ‘사망유희’라는 이름의 일대일 토론을 제안했고 곰티브이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주제로 그와의 토론을 성사시켰다. 여기서 그는 ‘준비가 부족한 진중권에게 승리했다’는 평과 ‘자료를 교묘하게 왜곡했다’는 평을 동시에 들었고 ‘일베’(일간베스트) 유저들에게 영웅이 되었다. 최근엔 국가정보원 초청 강연에서 그가 아티스트 낸시 랭을 종북이라고 칭했다는 경향신문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낸시 랭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평하고 “나는 나만 좋아한다. (친북종북이나 친북파가 아닌) 친낸종낸 종낸낸파다”라고 발언해서 화제가 되었다.진보진영에서 누군가 그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짜증을 내곤 했지만, 나는 그의 ‘굴곡’이 그 자체로 한국의 언론운동과 인터넷 논객 문화의 특성과 한계를 보여주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그러나 사적으로 그를 만날 자신은 없었다. 그가 그 만남의 의미를 뭐라고 하고 다닐지 짐작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겨레의 제의를 받았을 때 인터뷰란 형식으로 그를 만나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십년 만에’ 그와 악수했다.

변희재

“내가 진중권을 꺾은 뒤
진보 쪽에서 낸시 랭 여신 대접
포털에 나와 북핵 얘기 하던데
북한이 핵 쐈는지도 모르더라
이런 거짓말쟁이의 말을
왜 자꾸 받아주는지 모르겠다”

-경향신문 1면에 났더라. 어찌 된 일인지? 트위터를 보니까 그런 말 안 했다고 해명하시던데.“자다 깨서 기자 전화를 받았다. 낸시 랭을 종북으로 보느냐 해서 가장 광의로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했다. 그리고 더 설명하려 하니 전화를 끊더라. 경향신문 정도 매체가 그렇게 취재하면 안 된다. 나는 가장 광의로 종북을 규정할 때는 ‘질이 떨어지는 사람’을 종북으로 부른다. 내가 법원에 제출한 논리로는 ‘제3종북’이다. 그 기준이면 낸시 랭도 들어간다. 그러나 나도 평소에 이 기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국정원에서의 강의 내용이란 것도 최근 법정싸움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이었다.낸시 랭은 외려 ‘친노종북’ 세력을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나경원, 강용석, 전여옥 같은 이만 비웃길래, 내가 트위터에서 우익진영의 약한 이들만 건드리지 말라고 한 적은 있다. 그러다가 한 케이블 방송국에서 낸시 랭과 토론을 붙였는데, 처음에 거절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가르치면서 하면 되지 않느냐 해서, 나가서 잘 가르치고 왔다. 이게 포털에 나가면서 내가 낸시 랭에게 케이오(KO)패했단 식의 기사가 양산됐다. ‘사망유희’ 토론에서 진중권을 꺾을 때까지 ‘낸시 랭에게 케이오패’로 찍혔다. 그러다 내가 진중권을 꺾으니 이제 낸시 랭이 진보진영의 ‘스타’다. 말하자면 내가 우익세력 최고의 논객인데, ‘나꼼수’도 해체되었고, 이제 날 이겨봤다 할 수 있는 인사가 낸시 랭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내가 ‘앞으로 친노종북 세력이 낸시 랭을 구원의 여신으로 대접할 것이다’라고 ‘예언’한 적은 있다. 예언이 실현되는 상황 아닌가?낸시 랭이 포털사이트 뉴스 코멘트할 땐 북핵 얘기 하더라. 그런데 이번에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핵을 쐈는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이런 거짓말쟁이의 말을 왜 받아주는지, 그녀가 예술가를 자처하고 다니는 건 일종의 사기인데, 한겨레가 자꾸 인터뷰하면서 우상화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낸시 랭은 캐릭터 자체가 상품인 사람인데, 그걸 두고 ‘거짓말’이라 하는 게 잘 이해가 안 갔다. 예전부터 그에게 느꼈던 가장 큰 문제가 그 지독한 자기중심성이었다. ‘우익세력 최고의 논객’이란 자기 평가에 굳이 시비 걸고 싶진 않았으나, 진중권과 낸시 랭에 대한 평가에 나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변희재와 얽힌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이’로 비판받는 동시에 ‘그 진영의 대표주자’로 호출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담론 생산의 중심에 있다고 믿기에 자신과 얽힌 이들을 끝없이 폄하하면서도 결국엔 끝없이 과대평가하는 모순을 보인다.가령 진중권은 ‘전문성 없는 무능한 386의 전형’이면서 ‘진보논객의 대표’가 되고, 낸시 랭은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기꾼’이면서도 ‘친노종북 세력의 구원의 여신’이 된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 볼 수는 없겠으나,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끝없이 과장하는 것이 변 대표의 약점이며 십년간 그의 행보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코드’란 생각이 들었다.

‘친노=종북 아니라 친노 또는 종북입니다”

- ­‘제3종북’이라 했는데, 그러면 ‘제1종북’과 ‘제2종북’은 무엇인가?“‘종북’의 역사성부터 따져야 한다. 종북은 우익 쪽에서 만든 말이 아니라 진보진영 내부에서 나왔다. 우익들은, 자기들이 친북이라고 비판할 때는 반향이 없었는데, 이건 반향이 있으니 그걸 가져다 썼다. 그런데 ‘종북’은 정치철학적인 개념이 아니고, 그냥 우리 사회 정치세력을 칭하는 정치적 개념이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우익진영 내부 논쟁도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경우는 종북이란 말의 범위를 넓히지 말라며 나 같은 이를 비판한다. 그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며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이들만 ‘종북’이라 부른다. 나머진 ‘친북’이나 ‘미북’(북한을 미화)으로 세분화한다. 근데 기준을 이렇게 잡으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어떤 이가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하는지 무슨 수로 아는가? 그래서 나는 내면이 아니라 행위로 종북세력을 규정한다. 2008년 법원이 북한의 대남적화 노선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국보법 폐지, 미군 철수, 그리고 연방제 통일안이다. 이 세가지를 모두 찬성하는 이를 나는 종북이라 본다. 이게 ‘제1종북’이다.그런데 여기에 찬성하는 건 아니면서 이들과 연합하여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이 있다. ‘제1종북’의 실체를 까발린 그 멤버들이 다시 통합진보당에 기어들어갔다. 대중에 대해 그들의 실체를 은폐하면서 갔다. 나는 이런 이들을 ‘제2종북’이라 칭한다. 나는 ‘제1종북’보다 그들을 은폐하는 ‘제2종북’들의 사회적 해악이 더 크다고 본다. 이것이 내가 정치세력들 중에서 종북을 구별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지난 총선에선 야권연대 전체지. ‘제3종북’은 편의상 만들어본 거다. 낸시 랭은 종북을 이용해 종북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사람이다. 친노종북 진영이 낸시 랭에게 기대면 망하는데 그걸 모른다. 낸시 랭이 얼마나 사악한데.”대체로 자유주의자들은 ‘내면’을 알 수 없기에 딱지를 붙이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가 트위터나 강연에서 굳이 낸시 랭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다. 정말로 낸시 랭을 가르쳤다고 믿었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나를 괴롭혔고 그래서 내가 미워하는 대상’은 그 자체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치평론의 과제가 되는 듯했다.

한윤형

낸시 랭은 캐릭터가 상품인데
‘거짓말’이라고 할 것까지…
그에게 느꼈던 가장 큰 문제는
지독한 자기중심성이었다
자신과 얽힌 이들 폄하하면서도
결국 끝없이 과대평가하는 모순

-상식적인 생각이 아닌 것 같다. 가령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파와 협력한 독립운동가’라 불러야지 ‘친일파와 협력했으므로 역시 친일파’로 부른다면 우익들이 화내지 않을까?“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만들어낸 정권에 대해 그쪽에서 ‘친일정권’이라고 부르지 않나. 무슨 술 먹고 같이 논 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웃음) 다만 정권을 잡기 위해 서로 협력을 했다면 그 정치세력의 성격은 단일하게 지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북’인 거다.”-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시 운동권세력, 소위 전국연합과 선거연합을 했다. 그들 중엔 변 대표가 ‘제1종북’이라 부르는 이들도 섞여 있다. 그렇다면 ‘김대중은 빨갱이다’라는 극우파들의 주장을 변 대표가 인정하는 것인가?“1992년이면 김대중이 ‘뉴디제이(DJ) 플랜’으로 상당히 오른쪽으로 온 상황이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7년에 김종필 등 그야말로 보수세력과 손잡고 정권을 창출하지 않나. 그렇기에 김대중은 ‘빨갱이’ 논란을 벗어날 수 있다. 한번 협력했다고 계속 종북인 건 아니고 (종북은) 정치적 규정이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나 자신은 김대중 정부 시기의 글로벌 개방 노선과 참여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했다. 민주당은 건국세력, 민주화세력, 글로벌 개방세력이었는데 민주화는 거시적으론 완료되지 않았나. 지금 민주당은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어 무당파가 된 상황이다.”그러면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 더이상 협력하지 않는데 왜 ‘친노종북’이란 말을 쓰나?“그 말은 ‘친노’=‘종북’이란 의미가 아니다. ‘친노’ 또는 ‘종북’이란 뜻이다. 그게 지금의 야권이다.”

6일 서울 여의도동 미디어워치 사무실은 미국 성조기가 걸린 것 말고는 벤처업체의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국정원이 SNS를 수사한다면 변희재는…
민주당에 대한 입장은 그럭저럭 이해가 되었다. 변희재가 김대중 정부의 아이엠에프(IMF) 극복 방식과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다면 지금은 민주당보다 오히려 새누리당을 지지할 수도 있는 정치성향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안티조선 진영 내에서도 그는 꽤 보수적인 편에 속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많이 변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를 “한때 진보논객이었다”고 평하는 건 ‘종북’이 남발되는 것만큼이나 ‘진보’의 남발일 게다. 사실 지금 진보인사라 불리는 이들 중에도 변희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은 섞여 있다.
그렇다 해도 위험한 논리다. 가령 통일이 된다 치자. 북한 정권에서 남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날지 모른다. 근데 그렇다고 민주화운동 전체가 종북이었다 재단할 수 있나? 목적이 다른 이들이 함께 활동했는데 북한을 위한다는 목적만 대표될 수 있나? 역으로 뒤집으면, 박정희 경제개발에 친일파와 일본 자금이 끼어들었다고 산업화 전체를 친일의 산물로 매도하는 것이 가능한가?
“안 그래도 나한테 하루에도 수십개씩 그런 멘션이 들어온다. 가령 5·18 당시에 북한 공작원이 들어왔니 마니 하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팩트를 하나하나 다 체크해서 양면적인, 다면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역사적 평가에서 민주화운동이나 광주항쟁이 북한의 소행으로 매도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동의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종북세력에 대해 내리는 건 계속 말해왔듯 정치세력에 대한 정치적 평가다. 역사적 평가와는 매우 다르다.”
정치철학적 정의와 정치적 정의, 역사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 등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말’이 난무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치평론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대화’라야 한다. 정치세력끼리도 대화를 해야 하며,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그들과의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변희재
“인터넷에선 조선일보를
이길 수 있는 매체 가능한데
포털이 중간에서 조회수 왜곡
그래서 내가 설정한 어젠다는
첫째가 포털, 둘째 청년창업
종북문제는 사실 10위권도 안돼”
하지만 변희재는 내가 나름대로 예시를 들어 질의했음에도 본인이 만들어낸 ‘논리적 곡예’에서 한걸음도 이동하지 않았다. 이것은 ‘설명’의 언어가 아니라 ‘소명’의 언어이며, 그런 점에서 그가 재판을 좋아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싶었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자꾸 도중에 끊겨서 다음 논점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 ­그런데 낸시 랭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민감했던 것 같다. 십여년 전(2000년) <스타비평>을 냈을 때는 한국 연예인들이 미국 연예인들처럼 활발하게 정치적 발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그건 인정한다.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그때 난 어렸고 공영방송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한국방송>(KBS) 시청자위원을 2년가량 하며 감을 잡았다. 한국에선 공영방송이 연예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연예인이 자기 신념에 의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단 걸 깨달았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건 소신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벤처’다. 사정이 그런데 그 발언들 자체를 순수하게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되도록 발언을 자제해야지.”
그렇다고 연예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령 변 대표 때문에 예명까지 바꾼 연예인 김아무개씨의 경우, 그녀가 싸이월드에 올린 글에 대해 ‘의견개진할 지적 능력 안 된다’ 하지 않았나.
“그게 나 때문에 바꾼 건가. 국회에서도 난리가 나니까 바꾼 거지. 싸이월드에 생각 없이 올렸다고 해명만 해도 이해했다. 근데 그게 포털에서 소비되며 누리꾼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이런 경우엔 그 영향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그런 발언을 할 경우 정치적인 공격을 받기 때문에, 비상한 각오로 해야 한다. 발언을 할 거면 일주일에 책을 두 세권 읽어야 한다는 얘기도 그런 취지였다.”
- ­글을 좀 잘 쓰셔야 할 거 같다. 당시 글을 읽은 느낌으론 지금 설명으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무식한 연예인’들은 정견을 말하지 말라는 것 같았다.
“그런 의도 아니었다.”
변희재의 ‘자유주의’는 물구나무선 자유주의였다. 내면의 문제를 추정하기 힘들기에 ‘종북’의 쓰임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확대하자고 말한 것처럼, 연예인이 정견을 말하면 피해를 보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발언권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국정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수사하면 국정원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에스엔에스를 그만두라 할 사람이었다.
한윤형
내가 나름 예시를 들어 질의해도
변희재는 ‘논리적 곡예’에서
한 걸음도 이동하지 않았다
이것은 ‘설명’의 언어가 아닌
‘소명’의 언어이며 그런 점에서
재판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변절’한 적이 없다
자연스레 포털 문제로 넘어오는데, 안티조선 운동의 논리를 안티포털에도 적용했던 이가 변 대표인 거 같다. 양자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뭐라고 보나?
“내가 요즘 조선일보 정우상 논설위원의 공격을 받고 다시 ‘안티조선’ 생각을 하는데, 당시 조선일보를 싫어했던 이유와 오늘날 느끼는 게 비슷하다. 당시 난 조선일보 문화면이 애매한 신좌파 비평으로 가는 걸 주로 깠다. 조선일보가 생긴대로 우익으로 가면 중도 영역에 시장이 열리고 거기에 진보언론이나 뉴미디어가 들어올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참여정부 이후 그 영역에 포털이 들어왔다. 네이버가 뉴스를 편집하고 매체를 통제하니 공정한 경쟁이 안 된다. 나는 인터넷에서만은 조선일보와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매체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근데 포털이 중간에서 조회수를 왜곡하니 안 된다. 이제 공정경쟁을 방해하는 것은 포털이다. 내가 많이 비판해서, 네이버는 이제 뉴스캐스트 넘어 신문 가판대 형식으로 간다 한다. 이 방향이 옳다.
조선일보의 나에 대한 비판에서 느낀 것은, 예전 그대로, 도전을 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지키면서 버티는 스타일이었다. 오히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안 그런다. 정우상이나 그 이하 젊은 사람들이 그저 좋은 직장 다니려고 온 사람들이라 어르신들보다 더 고루하다. 난 조선일보가 한겨레 못지않게 ‘일베’에 긴장감을 느낀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우익논리하면 조선일보였는데, 이제 젊은 친구들이 우익담론 시장도 먹어버린 거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서프라이즈’나 ‘노사모’ 같은 게시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데, ‘일베’는 그들과 생긴 것도 비슷하다.(웃음)
공정경쟁만 이루어지면 조선일보 이길 수 있다. 사실 ‘종북 문제’는 나 자신의 어젠다 설정에서 10위권 밖이다. 첫째는 포털 문제고 둘째는 청년창업이다. 그런데 이게 결국 언론환경 개선 문제다. 내가 안철수를 싫어하는 이유도 그가 포털 문제를 비켜갔기 때문이다. 안랩이 네이버와 싸우다 2년 만에 아주 비굴하게 백기투항했다. 근데 그때 약체업체들 몰아내고 네이버에 머리 숙여놓곤, 포털 비판 없이 재벌만 비판하더라. 본인이 제조업 재벌을 겪어 본 적이 있는가? 그때부터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했다. 언론 환경만 개선되면 청년층도 창업 통해 살길이 열리는데, 안철수는 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
제법 재미있는 얘기도 있었다. 변희재는 일찌감치 ‘매체’를 만드는 ‘창업’의 길을 걸었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 같은 이 사회의 모든 구조에 저항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가 ‘변절’했기는커녕 지독한 내적 일관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건 앞서 말했듯, 지독한 자기중심성에서 나온 지독한 내적 일관성이었다. 내 삶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투쟁.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언제나 맞닥뜨렸던 질문인 ‘내가 쓰는 글이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을 듯했다. 포털이 낀 조회수 왜곡이 아니라 매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문제에서 미디어워치가, 빅뉴스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에 대해선 함께 얘기할 수 없을 듯했다.
인터뷰를 하고 온 뒤 빅뉴스는 변희재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경향신문 기자가 변 대표에게 반말을 했다며 비판하기 시작했다. 변희재가 통화를 한 상황은 이 인터뷰의 뒤풀이 상황이었다. 나는 수화기 너머 경향신문 기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을 수는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 몇 개의 기사가 나오는 상황이 민망하고 난감했다. 그리고 빅뉴스는 이 민망난감한 상황조차도 ‘성전’을 벌이듯 준엄한 언어로 질타하고 있었다. 문득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의 그 준엄한 어조가 머릿속에서 포개졌다. ‘종북’은 아니겠지만, 가장 북한 매체에 가까운 스타일로 글을 쓰는 건 오히려 그들이었다.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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