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3-15일자 기사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하는 '멋진 신세계'(하)'를 퍼왔습니다.
[기고]자본이 장악하는 '멋진 신세계'
플랫폼의 기본적인 역할이 이용자와 콘텐츠 제공자 간의 매개에 있다면, 규제완화에 따른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출현이나 과점적 구조의 형성이 과연 콘텐츠 경쟁력 증진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콘텐츠(채널)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 간의 불공정 거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방대한 채널을 전송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이 구축되었다고 해도 시청습관에 기인한 번호대역의 제한(소위 황금채널대역)은 여전하다. 우여곡절 끝에 유료방송플랫폼 사업자들이 가구 수신료 수익의 25% 이상을 채널사용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규제가 도입되었지만, 이 역시 채널 영업의 과정에서 비공식 경로로 다시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환류한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이 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법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날 김행 대변인은 "새 정부는 임시국회가 끝나는 오는 5일까지는 국회가 정부조직법 통과시켜줄 것을 거듭해서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콘텐츠 사업자와 재벌 기업의 상생?
ICT전담부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ICT대연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망과 플랫폼 소유자로서 콘텐츠 사업자에 대한 우위의 강화일 것이다. 현행과 같은 콘텐츠 사업자와의 수익 배분율 규제 또한 미래창조과학부와 같은 독임제 부처에서는 “사업자 간 자율”에 맡길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된다면 일부 수익성이 높은 콘텐츠는 적절한 대가를 나누어 갖겠지만,그렇지 못한 사업자들은 최소한의 유지비용조차 요구하기 힘들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들이 콘텐츠 사업자들을 선별하는 병목행위(bottleneck)와 전송하는 콘텐츠의 변형을 가하는 게이트 키핑(gate-keeping)에 대한 우려로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무엇보다 망과 플랫폼 시장에서의 지배적 사업자가 출현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결론을 보지 못했던 망중립성 논쟁의 종식을 의미한다. 익히 알려져 있지만 망중립성 논쟁의 핵심은 전송망을 통해야 하는 콘텐츠와 서비스에 대한 망 사업자의 통제를 최소화 한다는데 있다. 유무선 망 사업자에게는 규제지만, 콘텐츠 사업자에게는 진흥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합의제 기구에서는 쉽사리 한쪽 사업자의 손을 들어 줄 수 없는 딜레마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독임제 부처로 망과 플랫폼 정책을 이관하게 되면 이런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할 수 있다. ICT대연합이 ‘미래창조과학부로의 주파수 정책 전면 이전’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배경 또한 이러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네트워크와 플랫폼 영역의 규제완화와 과점적 구조의 형성은 현재보다 더 나은 콘텐츠 사업자의 독자적인 경쟁력 증진이 아니라, 그 의존성만을 더욱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C-P-N-D라는 미디어 생태계 가치사슬에서 콘텐츠 사업자들은 플랫폼과 네트워크 사업자의 이윤창출을 위한 생산요소로서 그 지위가 격하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우려는 전망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ICT 콘텐츠 진흥의 대표적인 사례로 ‘싸이’가 거론되는 것은 그래서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유튜브 조회 수 10억 회를 넘어가는 ‘국제가수 싸이’ 조차도 통신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음원 시장에서 9주 동안 1위를 차지하며 거둔 매출은 3,600만원이고, 이마저도 싸이 개인에게 모두 돌아가는 몫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도하는 ICT 산업에서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네트워크와 플랫폼 지배력 확장을 요구하는 통신사업자들과 그 부수익을 노리는 기업들의 열망 앞에서 콘텐츠 사업자들의 존재는 과연 ‘을’의 지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자본이 장악하는 ICT의 “멋진 신세계”
대통령이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로 약속하는 ‘멋진 신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불명확한 예측보다 확실한 것은 과거 정권들과 달리 박근혜 정부의 ICT 정책은 그 스케일부터 다르다는데 있다. 김영삼 정권 이래 노무현 정권까지 각 정권은 케이블, 위성, DMB, IPTV 등 뉴미디어 도입을 마치 필수과목처럼 이수해 왔다. 하지만 이들 뉴미디어 도입이란 유료방송 가입자 시장을 늘려 놓은 방송산업 내 플랫폼 사업자들의 신규 진입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박근혜 정부의 ICT 진흥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도입에 그치지 않고 방송과 통신 전 영역의 가치사슬과 생태계의 재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재편은 국가주도의 정책이 아닌 거대 통신기업과 자본이 먼저 요구해 온 사업자 주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런 차이점이 이전의 뉴미디어 도입과 다른 수준의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대를 낳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그려 본 ICT 산업의 진흥은 다분히 내수에 기반한 독점적 사업자들의 진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시 말해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 속에서 내수 증대를 통해 안정적 기반을 확보하고 대외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이런 전략은 결코 새삼스럽지 않다. CDMA, WiBro와 같은 네트워크 기술의 ‘세계 최초 상용화’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구호들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00만원에 가까운 국내 기업의 스마트폰이 외국에 나가면 그 절반 값이라는 불편한 진실 또한 그렇다. 결국 네트워크와 플랫폼 사업자 중심의 ICT 진흥이 국내 재벌 기업들의 내수 확보로 귀결된다면 정권 출범 때 그토록 강조했던 ‘경제 민주화’와 ‘좋은 일자리 창출’은 요원해 질 것이다.
미래과학창조부의 신설과 ICT 산업의 진흥이란 이렇듯 “정권의 방송장악”이 아니라 “자본에 의한 콘텐츠와 이용자들의 장악”이다. SO의 미래과학창조부 이관이 채널편성권을 가져가 정권에 입맛에 맞는 콘텐츠만을 유통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그래서 단편적이다. SO의 방통위 존치는 도리어 이미 동일한 망과 동일한 가입자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유료방송플랫폼 중 하나만을 따로 떼어 놓겠다는 ‘억지’로 여겨질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협의의 ‘정치적 공공성’보다 ‘자본으로부터의 공공성’이다. ICT 산업진흥의 전략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을 더 많은 수익창출을 위한 자원(resource)로 본다는 점에 있다. 이런 까닭에 플랫폼 전반에 대한 규제와 진흥을 독임제 부처에 맡기고 “이용자 보호”라는 이름뿐인 업무만을 합의제인 방통위에 남기자는 것은 공공성에 대한 자본의 정면 도전에 다름없다. 플랫폼의 진흥과 규제의 역할을 모두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속한’ 결정에 맡기더라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법적 강제의 기능만은 합의제 기구가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동원(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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