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한반도 긴장 최고조, 가장 중요한 안보적 과제는
8일 육해공군 장교 합동임관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국민 굶주리는데 핵무기에 집중하면 결국 자멸할 것”이라며 “도발에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위해 군에 “철통같은 안보태세 확립으로 대한민국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한반도의 위기가 최고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보름 여 만에 닥친 일이다. 북한이 불가침협약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직후 박 대통령의 연설은 예사롭지 않다. 군에서 한 ‘축사’ 성격의 의례적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워낙 언론과 대국민 노출이 적은 박 대통령이기에 현 상황에 대한 압축적 인식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없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2가지로 압축된다. 현 국면에서 ‘타협’과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변화의 길로 나선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적극 가동 하겠다”고 말했다. 현 단계의 북한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안보태세’의 확립이다. 이는 내부용 메시지로 읽힌다.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처’라는 표현으로 북한의 국지적 도발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철통같은 안보대테’를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최우선 순위는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고 관리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위기의 긴장감만 강조했다. 결국,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국내 정치 국면 전환과 국정 공백 사태의 ‘알리바이’로 활용하고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현 상태에서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공공연히 밝히고 국내용 ‘안보태세 강화’만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행보를 보며, 솔직히 두렵기까지 하다. 북한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이 원천적으로 극악무도한 악이라는 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의 통제가 상실된 상황에서 돌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에 기인하는 문제다. 관리되지 않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일차적인 문제다.
더욱이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북한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키 리졸브 훈련’까지 시작된다. 북한은 이를 ‘침략 훈련’이라고 규정한다. 실제, 키 리졸브 훈련은 '유사시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미군 증원 전력을 수용 및 통합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한미연합 전시 증원 연습훈련이다. 한미연합사령부가 주관하고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연습((Foal Eagle)과 통합해 실시된다. 정부는 ‘키 리졸브’ 훈련 때 북한이 도발하면 사정없이 응징하겠단 입장인데, 상식있는 국민 가운데 ‘사정없는 응징’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엎친 상황에 ‘키 리졸브’가 덮쳐지는 상황인 셈이다.
대화의 수단이 단절된 상태에서 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대통령 그리고 대화를 차단하는 군사훈련까지, 이명박 정부 이래 남북관계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지금이 가장 심란한 때가 아닌가 싶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과 심지어 미국조차 북한의 핵 도발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진 않지만 국지적 도발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은 공통의 판단이다. 물론, 이 국지적 도발마저도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따내기 위해 몸값을 높이려는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한국은 국지적 도발이 발생하면 직접적 타격을 입는 상황으로 한가한 분석에 안심할 때가 아니다.
▲ 정부는 ‘키 리졸브’ 훈련 때 북한이 도발하면 사정없이 응징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상식있는 국민 가운데 ‘사정없는 응징’ 상황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뉴스1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 대통령의 그것처럼 ‘결연한 자세’가 아니라 ‘탄력적 사고’다. 국지적 도발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마음 단단히 먹고 이를 향해 나아가자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민첩하고 현명하게 예견되는 참사를 피할 궁리를 하는 것이다. 이건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자존심의 영역도 아닌 정전협정 체제의 분단국가 대통령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정치적 자세’에 속한다.
북한 관계는 특수한 3가지 측면으로 구성된다. 외교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측면이 있고 교류로 대변되는 경제적 측면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념적 측면이 있다. 정치적 측면은 국제적인 것이고 경제적 측면은 국지적인 것이라면 신념적 측면은 우리 내부의 문제라는 특성이 있다.
보수 세력들은 이 가운데 보통 신념적 측면의 문제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종북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이 이에 속하고 북한에 삐라를 보내 그들을 정신적으로 ‘개화’하자는 것 역시 이 부분에 속한다. 북한 인권을 강조해 우리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것 역시 사상과 신념의 우위를 확인하고픈 대표적 욕망 가운데 하나다. 이는 대부분 북한을 향한 것이라기 보단 국내 정치용 성격이 짙고 내부 단속용 의제인 경우가 많다.
현 상황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북인식은 딱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과 정치적으로 협상하고 경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인데 이를 신념적 차원의 정서가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보수 언론, 특정한 보수적 정치 집단은 다른 것을 내버려두고 신념적 문제만 주장할 순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 쪽에 치우쳐있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국가적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박 대통령은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보수정당의 리더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관장하는 대통령 신분이다.
지금 당장 교류로 대변되는 경제적 관계 개선에 나설 순 없겠지만 북한의 의도가 어느 정도 읽히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를 통한 정치적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UN의 제재는 끝이 아니라 지속적인 외교전을 전개하는 시작점이란 인식을 갖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북한이 변하면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다’는 식의 접근은 ‘잘하면 나도 잘 하겠다’는 수준의 유치한 관계 맺기 방식이다.
북한과 관련해 우리의 신념을 더욱 다지자는 낡은 훈계는 이제 그만해도 좋다. 충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난 정부에서 완전히 상실됐던 북한과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감이 최고조를 향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떤 '매뉴얼'을 갖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은 북한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 그 만큼 적어진단 점에서 매우 불안한 문제다. 누군가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했다. 북한과 어떻게 ‘타협’해 도발을 막을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당면한 가장 중요한 안보적 과제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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