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자매매체 2013-03-07일자 기사 '"교회가 세상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입지 줄어들다 결국 없어질 것"'을 퍼왔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1988년 천정연 인권소위원회로 활동을 시작한 지 25년, 1993년에 독립적인 단체로 창립한 지 20주년을 맞았다. 3월 7일에 열리는 후원의 밤 행사를 앞두고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천주교인권위의 일원으로 참여해 왔고,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를 만났다.
날짜 : 2013년 2월 27일
장소 : 법무법인 덕수 김형태 변호사 사무실
대담 : 한상봉 (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 25주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는데, 유신정권 이후 1970년대부터 사회보다 앞서 나가는 기운이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힘을 제도화하는데 천주교인권위원회가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 사회운동단체들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그 과정에서 천주교인권위는 법률적 지원을 하고, 사회운동을 인권운동의 차원으로 더 확장시키는 근거지 역할을 한 것입니다.

- 천주교인권위와 관련해 그동안 특별히 인상이 깊이 남은 사건은 어떤 게 있나요?
천주교인권위가 ‘조작간첩’ 사건들을 오랫동안 다뤄왔고 결실이 있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등에도 관여해 왔는데, 이와 관련한 판결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도 천주교인권위가 큰 공을 세웠다고 봅니다. 그 결실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 후로 군대 내 사망사고도 많이 줄었다고 봅니다.
개별 사건이지만 ‘이도행 씨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1995년에 일어난 사건인데 이도행 씨는 부인과 한 살배기 딸을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996년 1심에서 사형을 선고했어요. 이 사건을 천주교인권위가 맡았는데, 8년 가까운 법정 공방 끝에 2003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이때 김수환 추기경님도 도와주셨죠. 이 사건이 사형폐지운동으로 확산됐습니다. 워낙 사회적 파장이 컸고, 유죄와 무죄, 사형과 무죄를 오갔죠. 어떤 판사는 사형 판결을 내리고, 어떤 판사는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사형제도의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이도행 씨도 너무 고생 많이 했고 개인적으로 불행하지만, 사형폐지운동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인혁당 사건은 10여 년 전 문정현 신부님을 통해 천주교인권위가 맡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 분위기가 달라서 인혁당이라면 ‘빨갱이’로 생각했죠. ‘교회’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천주교인권위가 맡은 것이지, 교회가 아니었으면 사실 무서워서 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는 갈 곳 없는 분들을 우리 천주교인권위가 보듬어주고, 하소연을 들어주고, 함께 울고, 일 년에 한 번 추모제 열고, 그분들의 소리를 대신 외쳐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묻혀 있던 인혁당 사건 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사건의 진상이 빛을 보게 됐죠. 그때부터 재심이 시작됐고, 형사 무죄, 민사 배상까지 받았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한국전쟁 전부터 권위주의정권 시절을 거치며 국가기구의 탄압으로 벌어진 의문사 사건을 해결한 첫 단추였죠. 천주교인권위가 과거사 정리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 봅니다.
파키스탄 사형수 2명 문제도 사형폐지운동과 연결됩니다. 파키스탄인 사형수 아미르 자밀과 미안 무하마드 아자즈가 김수환 추기경님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고, 추기경님의 부탁으로 천주교인권위가 문제 해결에 나섰죠. 결국 이들은 무기로 감형됐다가 1999년에 특사로 나와서 본국으로 추방됐습니다.
이후 이주노동자 문제가 천주교인권위로 많이 들어왔어요. 지금은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나 국가기구가 많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7년 3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모여 ‘라파엘 클리닉’을 열어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혜화동 가톨릭신학교와 동성고등학교 강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용산참사도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들 같으면 큰소리 뻥뻥 칠 수 있지만, 만나보니 용산참사 관련자들은 진짜 밑바닥의 아무것도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들이었어요. 저희는 이들의 형량도 줄여주고, 억울한 일도 밝혀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천주교인권위 변호사들이 맡아서 변론에 나섰습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에도 나왔지만 진실은 다 밝혀졌지요. 특공대, 경찰들이 과잉진압이라고 자백했고,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대부분이 얘기했어요. 나중에 재심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 천주교인권위 20주년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우선 김승훈 신부님, 하경철 변호사님이 생각납니다. 황인철 변호사님은 벌써 20주기를 맞을 만큼 일찍 돌아가셨고, 원로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천주교인권위 위원장을 맡은 때가 1993년이었는데, 아직 30대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든든한 ‘빽’이 되어주신 분이 김승훈 신부님과 유현석 변호사님입니다. 정치권력이나 교회로부터 천주교인권위를 보호해준 분들이죠. 두 분은 모임만 있으면 거의 빠짐없이 나오셨어요. 그런데 두 분도 너무 빨리 돌아가셨어요. 이돈명 변호사님도 돌아가셨고, 우리가 추모할 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천주교인권위의 ‘빽’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천주교인권위가 추기경님의 법무 참모실 같은 역할을 했죠. 무슨 일이 있어서 부르시면 제가 혜화동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현재 명동 가톨릭회관 뒤편에 있는 천주교인권위 사무실을 얻을 때도 추기경님과 김승훈 신부님,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모아주신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했지요. 그전에는 가톨릭회관 3층의 작은 방에 있었는데 회관 측에서 자꾸 나가라는 상황이었어요.
- 천주교인권위가 겪은 어려움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또 아직도 남아 있는 어려움이 있다면?
결국 천주교인권위가 다루는 문제는 ‘정의’와 ‘평화’의 문제인데, 과거에는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평화인지 비교적 분명하게 이분법적으로 가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니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많아지고 변화된 상황에서 저희가 꼭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인권단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천주교인권위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주변에서 재정적 지원도 많이 들어왔어요. 후원하는 신부님들도 전국적으로 많았고요. 지금은 인권단체가 워낙 많고 세분화되어 천주교인권위만이 가진 경쟁력이 떨어지고 후원금도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 분야가 세분화되다 보니 ‘통섭’ 기능이 오히려 필요할 수도 있어요. 다른 단체에 비해 천주교인권위가 유리한 점은 천주교회라는 밑바탕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연대활동의 비중이 커져서 용산, 강정, 쌍용차 문제에서도 천주교인권위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 천주교가 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흔히 천주교는 영성적인 것만을 주로 얘기하고, 영성은 세속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회 밖에서도 천주교를 그렇게밖에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성과 세속을 그렇게 나눌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가까이 와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세속과 영성을 갈라놓으면 교회는 영성을 다루고, 천주교인권위는 세속에서의 인권을 다룬다는 것인가요? 둘을 나누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만약 나누는 것이 교회의 흐름이라면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세상과 교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세상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교회의 입지가 줄어들다가 결국 없어질 것 같아요.

- 1971년에 열린 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에서 (세계 안의 정의)라는 문헌을 통해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행위에 동참하는 것은 복음의 온전한 구성요소”라고 말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군요.
앞으로 천주교인권위와 교회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제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폐지소위원회에 들어간 지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천주교인권위 자체는 교회 비공인단체지만, 인권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기구가 교회 안에 없다 보니, 저희 역할이 교회 안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주교회의와 교구별로 정의평화위원회가 있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서서 실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천주교인권위가 나서게 되고, 결국 인권위 활동은 교회의 제도, 비제도를 가르는 경계를 흐리게 만들면서,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정의평화운동과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 공식기구가 나서기 어려운 일을 천주교인권위가 맡아서 한다고 봐도 좋습니다.
- 제가 보기에, 천주교인권위는 교회 공식기구와 그 바깥의 중간지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중간지대를 확대하는 게 우리 교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주교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제도교회 안에 들어가 활동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전처럼 제도교회의 간섭을 받기 싫다면서 외면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함께 연대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데 제도권, 비제도권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교회가 비교적 보수적인 것은 제도의 속성이므로, 감안하고 일하다보면 서로 배울 게 있을 것입니다.
유현석 변호사님과 이돈명 변호사님은 자제들이 신부님이고, 본인들도 본당에서 사목회장을 오래하시는 등 교회의 일원이기도 했어요. 그분들 이후 세대에는 천주교 활동가들과 제도교회가 분리됐다가, 지금은 관계가 복원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 교회 안에서도 갈라졌던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놓인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천주교인권위가 연 ‘난생처음 후원의 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20년 만에 첫 후원의 자리를 마련했다.
‘인권과 평화, 그 달콤한 연대’라는 제목으로 3월 7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명동 라루체에서 열린 20주년 기념 ‘후원의 밤'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첫 후원 행사이자 스무 돌을 맞는 성년식이기도 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산하의 인권소위원회로 출발, 5년 만인 1993년에 독자적 단체로 창립되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후원의 밤 행사를 앞두고 “가난하고 힘이 없어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곁에서 권력과 자본에게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살아온 시간들이었다"면서 "변함없는 후원과 사랑을 거듭 부탁하는 것이 염치없는 일이 되지 않도록 교회 안에서, 또 교회 밖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흔들림 없이 살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후원의 밤’에서는 인권변호사인 이돈명 변호사를 추모하기 위해 제정한 ‘이돈명 인권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올해 수상자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로 선정됐으며, 2012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에 이은 두 번째 시상이다.
이날 행사에는 문정현 신부와 변영주 감독이 함께해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이한철 밴드, 가수 이수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노래패 ‘함께 꾸는 꿈’ 등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또 ‘박데레사-김베드로 기금’으로 제작된 인권입문서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을 배포한다.
천주교인권위원회 후원은 국민은행 004-01-0724-877 , 농협 301-0076-9349-51 예금주: 천주교인권위원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휴심정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