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청문회 보고서 채택된
행안부 장관 등 8명 임명 미뤄
‘위기정치’ 명분 야당 압박·여론전
검찰총장·헌재소장 ‘장기 공백’
정부조직법 무관한 문제 방치
여론수렴 없이 조직개편 강행
새정부 지각출범 사실상 자초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 선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말투는 사뭇 비장했다. 윤 대변인은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으로 정상적 국정 수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상시국이라는 인식과 자세를 갖고, 국정 공백의 최소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매일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국정상황을 치밀하게 점검해 나가고, 해당 비서관이 부처를 일대일로 챙기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 말 그대로 ‘비상시국’을 맞은 듯한 분위기다. 출범 열흘째를 맞는데도 국정운영의 틀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한 위기감도 드러난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정 공백’과 ‘비상시국’을 강조할 뿐, 이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은 외면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법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사안마저 방치하면서, ‘위기정치’를 통해 야당을 압박하고 대국민 여론전을 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된 장관의 임명을 미루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유정복(안전행정), 윤병세(외교), 서남수(교육) 후보자 등 8명의 장관은 당장 임명할 수 있다. 청와대는 ‘정부조직법이 통과되면 바뀐 직제로 다시 임명장을 줘야 해 모양이 좋지 않다’고 설명하지만,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전 정부 직제로 임명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상시국’이라면 국내 안전(안전행정부)과 북핵 등 외교안보(외교부) 분야의 장관 임명을 늦출 이유가 없다.
실제 박 대통령은 오전에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를 구미 가스유출 사고 현장에 급파해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그런데도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에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지 못해 국민안전 관련 행정이 소홀해질 수 있고, 안전 관련 대책도 종합적으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장관 임명을 늦춰 ‘국정 공백’ 상황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준비 부족으로 빚어지고 있는 혼선이나 공백 등을 정부조직법 탓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치권에서는 ‘인수위 때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여론이나 여야의 의견 수렴을 거쳤더라면 정부 출범 이후 처리에 필요한 시간이 크게 줄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개편안 처리가 늦어진 데는 박 대통령 책임도 작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정부조직법 개편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늦어지고 있는 인선도 마찬가지다. 인사 일정을 꼬이게 한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낙마는 박 대통령의 부실 인선으로 인한 것이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석연찮은 ‘자진 하차’ 역시 야당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당장 가능한 법무장관 임명을 늦추면서, 법무장관의 제청을 받아 임명하는 검찰총장 지명도 뒤로 밀리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서야 할 조직의 수장이 석달 이상 공석이다. 헌법재판소장 장기 공백으로, 소장 후보자를 지명해야 하는 대통령이 ‘헌법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사법부 공백도 정부조직법 통과 지연과 상관이 없는 분야다.
청와대는 부처 업무 공백과 관련해 ‘해당 분야 비서관이 부처를 일대일로 챙기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비서관 인선은 아직도 완료되지 않았다. ‘비서관이 부처를 챙기는 것’은 그 자체로 청와대 비서실의 직할 통치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과거 정부에선 장관 청문회가 늦어지면 부처 안정을 위해 차관부터 임명해 조직을 추스른 경우도 있었지만, 현 정부에선 차관 인사 시기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각종 법령과 현안이 산적한 국무회의를 무산시키고,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도 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자해적 정치행위다. 하루속히 대통령의 의무를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종철 석진환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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