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3-02-04일자 기사 '[사설]‘이동흡 표결 처리’ 박 당선인의 뜻인가'를 퍼왔습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헌법재판소장의 공백사태 장기화와 관련해 돌연 이동흡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 표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황 대표는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2주일이 됐는데도 최후의 결론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원 각자가 헌법에서 부여받은 표결권을 행사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세로 굳어가던 임명권자의 지명철회 요구나 후보자의 자진 사퇴 촉구는 “의회주의에 반하는 강제적 폭거”라고 몰아세웠다. 여권 핵심부의 사전 조율 없이는 불가능한 반전이다.
황 대표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 봐야 할 것 같다. 평소 권력자의 의중 확인 없이 소견을 좀처럼 드러내보이지 않는 그이지만 이따금씩 내놓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국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온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 발언은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그는 이 후보자의 헌재 재판관 시절 특정업무경비 전용이 문제가 되자 “그 돈으로 콩나물 사는 데 써야 되겠느냐”며 부적격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박 당선인의 복심인 이정현 당선인 정무팀장이 “청문회 후보자에 대한 자진 사퇴 강요는 국회의원 권한과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이라며 황 대표를 지원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아무래도 여권이 표결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모양이다.
이 같은 태도는 국회의 역할과 권능을 경시하는 처사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다 제쳐두더라도 국회의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것은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여야를 넘어 국회 차원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이 보고서 채택 마감을 하루가량 남겨놓고도 야당과의 협상을 접었을까. 여론조사 결과 드러난 여론도 국회의 결정을 전폭 지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표결로 가는 방법은 사실상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유일하다. 정작 인사 문제를 직권상정한 예는 없다. 전례를 떠나 판정이 끝난 사안을 놓고 뒤늦게 표결 처리를 하자고 호들갑 떠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폐해는 크다. 설사 표결에 부쳐진다 해도 통과될 리 만무하지만 이 후보자에게 ‘일단 버티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헌재소장 공백사태를 장기화시킬 수밖에 없다.
표결론은 이 후보자를 실질적으로 지명한 이가 박 당선인임을 자인하는 것일 뿐 명분도 실익도 없다.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 낙마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기회로 삼겠다고 판단했을지 모르지만 단견이다. 꼼수는 사태를 꼬이게 만들고, 여론만 악화시킨다. 박 당선인 측은 50~60%대인 낮은 지지율의 원인이 ‘소통 미흡’과 ‘인사 잘못’에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명철회 외에 우회로는 없다. 지금이라도 이 후보자의 낙마 이후를 준비하는 게 그나마 ‘이동흡 파문’으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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