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2-06일자 기사 '운구행렬과 함께 했다면 ‘시신시위’라 못한다'를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정민규 오마이뉴스 기자
드라이아이스의 용도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포장하면 넣어주는 드라이아이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감싸는 드라이아이스가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선 슬프고도 참혹한 쓰임새의 처지다.
지난해 12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회사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주검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동료 노동자들은 스티로폼으로 에워싼 관의 뚜껑을 열어 드라이아이스를 채워 넣고 있다. 최 씨를 사랑했던 모두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광경이다. 그를 편하게 놓아주도록 장례를 치루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지만, 당장은 공장 안으로 냉동탑 차를 넣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농성 일주일째인 5일까지도 안타깝게도 회사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사측은 ‘시위대가 불법으로 공장으로 난입했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이 한진중공업 공장으로 들어온 날은 지난 1월 30일. 그날은 최 씨가 세상을 떠난 지 41일이 됐던 날이었다. 이날 부산역에서는 대규모 노동자대회가 열렸으며, 집회를 끝낸 노동자들은 행진 신고를 한 영도구 한진중공업까지 걸어서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 중에 고인이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관을 내와 운구를 시작했다. 당시 경찰은 적극적으로 운구를 저지했다. 경찰은 행진 대열은 물론 유족과 관을 맨 동료, 관을 향해서도 최루액을 뿌렸다.
경찰의 위력에 밀린 운구행렬이 영도조선소 서문 근처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경찰에 에워싸였다. 당시 운구행렬 안에서는 경찰에 주검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면서 사람들이 영도조선소의 철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4~5미터는 족히 되는 높은 철문을 흔들던 중 큰 철문에 나있던 현관문 크기의 작은 문이 열렸다. 누군가 인근에서 구한 쇠파이프를 이용해 문을 연 것이다. 너 나할 것 없이 그 문으로 들어갔고 기자 역시 그들을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경찰에 쫓겨 들어간 상황임에도, 당시의 장면은 운구행렬의 난폭함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회사는 시위대가 미리 준비한 용접절단기까지 동원해 문을 뜯어냈다고 언론에 알렸다. 현장에 없던 일부 언론은 회사 관계자의 말만 빌어 보도했다.
그리고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이를 토대로 공식 입장문을 내 이번 사건을 치밀한 계획 속에 이루어진 극단적인 폭력행위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공권력의 투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기자가 본 것은 그들의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물론 심지어 경찰 중에서도 용접절단기를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는 ‘시신시위’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공장 안의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주검을 볼모로 생떼를 쓰는 협잡꾼으로 묘사됐다.
언론은 ‘시신시위’라는 표현으로 유족과 최 씨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언론은 또한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고 한자씩 눌러서 남겼을 유서의 내용을 무시하고 생활고나 신변을 비관한 자살로 고인의 죽음을 몰아가려하고 있다.
언론은 왜 4살과 6살 형제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갑작스럽게 시작한 공장내 취재 생활은 불편하다. 처음에는 사측이 음식물 반입을 막아서 과자 몇 점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나중에 겨우 반입한 김밥은 은박지마저 다 씹어먹을 정도로 맛있게 먹고 있다.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잘 때도 일할 때도 항상 같은 옷이다. 덮을 것이 없어 입고 있던 잠바를 이불 삼고 있다. 테이블에서 일하다 잘 때는 노트북을 접어두고 테이블 위에서 잠을 청한다. 딱딱한 테이블 바닥 탓에 몇 번이고 잠을 깬다. 사측과 언론은 노동자들이 계획적으로 들어왔다지만 계획적으로 들어왔다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

정민규 오마이뉴스 기자
경찰은 담벼락에까지 배치돼 모두를 연행하겠다는 방침 하에 근무를 서고 있다. 보기에 따라 농성이란 표현보다는 감금이란 말이 어울릴 듯 하다.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은 보안요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드나들고 있지만, 기자는 그 보안요원에게 막혀 질문을 던질 수도 없었다. 이것은 유족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유족을 만나고 싶지만 노조원들이 막는다는 회사의 말은 유족의 말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누가 잔인하고 극단적인가.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를 위해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강서야”를 외치는 노동자들인지, 아니면 철탑에 올라가야만, 주검을 부여잡고 싸워야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들인지.
정민규 오마이뉴스 기자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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