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8일 금요일
소득보다 상속에 세금을
이글은 시사IN 2013-01-16일자 기사 '소득보다 상속에 세금을'을 퍼왔습니다.
국회가 억대 연봉자의 소득 공제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국은 상속 공제 액수가 커서 10억 상속받은 사람이 세금을 거의 안 낼 정도다.
누군가 말했다. “통계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와 같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통계가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말해준다.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저 막연한 관념에 지나지 않은 예측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언론이 찾아 낸 과학적 논리는 ‘인구구조의 변화’였다. 그 역시 통계였다. 물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단 하루만에 찾아낼 수 있는 이유라면 예측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통계는 대단한 정보이거나 국가기관만이 독점하고 있는 정보가 아니다. 그저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해결된다. 당장 ‘나라지표’에 가서 검색해 보길 권한다. 왜 출산률 문제가 심각한지 금세 알게 될 것이다.
매년 국세청에서 발표하는 (국세통계연보)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세금 구조에 대한 재미있는 통계가 많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는 세무서는 어디일까? 서울 강남 세무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답은 영등포 세무서이다. 증권회사가 밀집된 여의도가 영등포 세무서 관할이기 때문이다. 증권 거래 시 부담하는 ‘증권거래세’가 모두 영등포 세무서를 거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통계는, 모든 직장인의 꿈인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무려 36만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급여 소득자 100명 중에 2명꼴이다.
이 억대 연봉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 최근 국회가 이들의 종합소득 공제 한도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료비, 보험료, 교육비, 주택자금 공제, 기부금 공제 등을 합쳐서 연간 2500만원 이상을 공제받지 못하도록 세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 공정한 룰이다. 그래서 더 많이 버는 사람, 억대 연봉자가 세금을 많이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정부의 복지 지출 증대를 위해서 증세를 피할 수는 없다. 일부 국가에서는 부유세까지 도입하겠다고 나서지 않는가?
ⓒ정훈 그림
그런데 억대 연봉자의 소득공제 한도를 줄이면 세수가 진짜 많이 늘어날까? 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회계사 업을 하면서 많은 고액 연봉자를 보았는데, 이들이 의료비, 교육비, 보험료, 주택자금 공제, 기부금으로 공제받는 금액이 과연 2500만원이 넘었던가? 회계사로서 수없이 연말정산 업무를 대행해 봤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그 세법 개정안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억대 연봉자 공제한도 축소, 실효성 의문
또 다른 의문도 든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 내는 의료비, 자녀의 대학 등록금,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내는 기부금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 지나친 비유일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 ‘노역’이라는 것이 생각난다. 노동에 대해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부과하는 것은 1년 중 서너 달은 국가를 위해서 일하라는 ‘노역’에 가까운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다시 ‘부자’의 정의를 새겨보고 싶다. 소득이 많은 자도 부자지만, 재산이 많은 자도 부자이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사람은 5720명에 불과하다. 5년 전에 비하면 그 인원이 2배 정도 증가했으니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아직 재산에 대한 과세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해야겠다. 억대 연봉은 고사하고 그의 반인 50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20년 정도를 전혀 소비하지 않고 숨만 쉬며 모아야 하는 금액인 10억원을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사람은 단 한 푼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상속을 받는 경우 대부분 상속 공제를 받게 되는데 그 금액이 실로 엄청나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그런데 그 명제가 상속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원재훈 (이촌회계법인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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