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1-13일자 기사 '교도소에서 모든 '개털'이 한 목소리로 짖는 그것, '특별사면''을 퍼왔습니다.
[이용석의 노동자로 살며 읽기]법? 아직도 그런 뜨뜻미지근한 걸 믿냐는 말
나는 병역거부로 1년 2개월 그리 길지 않은 징역을 사는 동안 구치소와 교도소 네 군데를 거쳐갔다. 거기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인천구치소와 수원구치소에서는 미결수 가운데서 주로 경제사범이 모여 있는 방에서 살았다. 말이 경제사범 방이지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부도난 사장님부터 일본에서 소매치기 하다 잡힌 아저씨, 본드 불고 들어온 형, 교통사고 가해자, 비리 공무원, 조선족 밀입국 브로커까지. 군산교도소에서는 취사장, 청주교도소에서는 보안과 청소를 했는데,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방을 같이 썼다. 보안과 청소를 할 때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방을 썼고, 취사장 일을 할 때는 살인, 강도, 강간, 폭행 같은 강력범부터 절도나 무전취식 같은, 어찌 보면 감옥 안에서도 취급 못 받는 죄명을 가진 사람들이 두루두루 방을 같이 썼다.
죄명만 각양각색이 아니었다. 성격도 각양각색이었다.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놈도 있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 욕심만 차리는 사람도 있다. 전라도 사람이 있으면 경상도 사람도 있고,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짜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불문율은 감옥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종교나 정치 이야기는 감옥 안에서도 되도록 피하게 된다. 그래서 물어보진 않았지만, 실제로 아마 다양했을 거다. 새누리당 지지자, 민주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진보정당 지지자들도 있었을 거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있다 보니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이 많다. 이런 걸 징역 용어로 ‘심리 붙는다’고 한다. 특히 밖에서는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관계를 가지고 심리 붙는 경우가 잦다. 어떤 방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이 술을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를 가지고 심리가 붙어 결국엔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고 당사자들이 징벌방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런데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죄명을 안 가리고, 성격을 안 가리고, 정치 성향을 안 가리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 목소리를 낼 때가 있다. 모든 개털들이 한 목소리로 짖는 것, 그것은 바로 범털들이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감옥 밖으로 나갈 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개털들은 한 편으로는 부러워서, 한 편으로는 억울해서 사면설이 솔솔 나고 있는 이상득이니 천신일이니 최시중이니 하는 양반들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로 나가는 김승연을 엄청나게 욕 해 대고 있을 거다.
수감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옥 밖으로 하루라도 빨리 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하지만 범털들과 개털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은, 그리고 노력의 결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감옥 바깥과 마찬가지로 감옥 안에서도 법 앞의 형평성은 깡그리 무너져 있고, 수감자들은 말은 안 해도 이런 차별적인 양상을 극도로 증오한다.

▲ 일제히 '항소'를 포기하고 설 특사를 기다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 이상득 전 의원,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범털들은 감옥 안에서 있을 때도 개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게 지내는데, 나가는 것 또한 제대로 형량을 채우고 만기출소 하는 법이 거의 없다. 이상득, 천신일, 최시중처럼 대통령과 친해서 사면 받아 나가는 경우도 있고, 김승연처럼 아프다고 형집행정지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사람들이 나갈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대통합 운운하며 사면을 한다지만, 자기 친형 풀어주고 친구 풀어주는 거는 가족대통합이지 국민대통합은 아니다. 쇠파이프 휘두를 정도로 건강한 양반이, 감옥 안에서도 다른 수감자들보다 훨씬 편하게 살았을 양반이 아프다고 휠체어 퍼포먼스 하는 거는 누가 믿겠나?
반면 개털들에게는 형량을 다 채우지 않고 감옥을 나가는 일은 아주 요원하다. 문제를 안 일으키고 가석방을 받으면 만기 출소보다 빨리 나갈 수는 있지만, 그래봤자 형기의 90%를 살아야(병역거부자들은 80%를 살면 가석방으로 나온다) 겨우 나올 수 있다. 그나마도 교도관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부당한 대우를 참고 모욕의 세월을 견뎌야 가석방을 받을 수 있다. 병역거부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감옥 생활에서 상처로 남은 것들은 가석방 때문에 불합리한 것들을 참아 넘길 때 느꼈던 모욕감이라고 한다. 오히려 감옥 안에 수감되어 있는 중에 추가 사건이 드러나서 재판을 다시 받고 형량이 늘어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을 ‘추가 뜬다’고 하는데, 나도 수감되기 직전에 평택 미군기지확장이전 반대 집회에서 연행되었던 사건이 추가 떠서 중간에 재판을 다시 받았다. 다행히 형량은 늘지 않았다. 아무튼 개털들은 빨리 나가는 건 고사하고 추가만 안 뜨고 가석방만 받아도 감지덕지다.
사실 따져보면 이미 감옥에 가기 전에 개털과 범털은 구분되어 있다. 일단 범털에 속하는 사람들은 죄를 잘 짓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다. 법 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는 집에서 쫓겨날 일이 없으니 철거민이 되어 망루에 올랐다가 용산 참사 철거민들처럼 감옥에 갈 일이 없다. 이명박과 그 측근들은 조카가 굶어죽을 일이 없으니 장발장처럼 빵을 훔치다 감옥에 갈 일도 없다. 이회창 아들들은 아버지 빽으로 군대를 면제받았으니 그들이 혹 평화주의 신념을 가졌더라도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갈 필요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금 감옥에 있는 이상득이나 최시중, 천신일, 김승연 들은 자기들이 운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고 억울하다고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는 특권을 악용해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지만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물러설 기세가 없다고 한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사면을 철회한다 해도 이상득이나 최시중이 죄값을 제대로 치르고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기왕이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선임해서 전관예우 톡톡히 받으며 형량이 대폭 줄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그나마도 김승연처럼 갑자기 아프다며 형집행정지 판정을 받고 들것에 실려서 나오거나 휠체어를 타고 나오게 되겠지.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본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 아무 교도소나 가서 아무 수감자나 붙잡고 물어봐도 똑같은 예측이 나올 거다.
대책 없는 강제철거에 갈 곳이 망루밖에 없던 철거민은, 망루에 올랐다가 아버지를 죽인 죄까지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4주기가 다 되도록 아버지 제사 한 번을 못 모시고 있다. 장발장은 굶주리는 조카 살리려고 빵 하나 훔쳐 17년을 감옥에 갇혀 지냈고, 빵 하나도 훔치지 않은 병역거부자들은 한 해에도 700명이 넘게 감옥으로 향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개털이기 때문에 사면 받을 일이 없다. 건강이 악화를 핑계 삼아 형집행정지로 나올 일도 없을 거다.

▲ 지난 달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당선인과 청와대에서 단독회동을 갖었다. 이 자리에서 무엇이 논의됐을까? 박 당선인은 아직 이 대통령의 특사 추진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뉴스1
이 개털들 목록은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끊임없이 업데이트 될 거다. 강정과 밀양 주민들, 송전탑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 그리고 힘든 싸움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겠지. 그리고 모두들 추가나 안 뜨고 가석방이나 받으면 다행으로 살아가겠지. 범털들 목록도 어쩌다가 업데이트 되긴 될 거다. 자기들도 차마 가릴 수 없을 큰 잘못이 드러났을 때에만 겨우 몇 명이 운 없게 감옥에 갈 거다. 그들 중 과연 누가 죄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나올까?
내가 바라는 건 이상득, 최시중, 천신일 같은 권력형 비리 사범들과 김승연 같은 재벌 범법자들이 죄값을 다 치르고, 자격이 된다면 일반수들과 마찬가지로 가석방 심사를 받고 나오는 거다. 뭐 그 이전에 재판에서부터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수감 생활 할 때도 특혜를 주지 말아야겠지만, 거기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들어간 감옥에서 자기 형량을 다 채우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싶다.
영화 타짜에서 아귀가 한 말이 생각난다. “법? 아직도 그런 뜨뜻미지근한 걸 믿어?” 안 믿는다. 예전에도 안 믿었고 앞으로도 안 믿는다. 그래도 좀 믿어 보고 싶다. 나를 포함해서 무슨 큰 죄를 짓지도 않은 병역거부자들이 사면 복권 한 명도 안 된 거 하나도 안 억울한데, 저 치들이 이렇게 죄값도 안 치르고 나오는 걸 보면 속에 열불이 날 것만 같다.
그저 돈이나 벌 생각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경영진들의 폭력을 보고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평화주의자의 시선으로,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용석 / 출판노동자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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