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3-01-16일자 사설 '[사설]박근혜 당선인, 증세로 복지공약 지켜야'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이 정권 출범도 하기 전에 흔들리고 있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 일부 관료들이 삼각편대로 복지공약 폐기를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빚어진 이례적 현상이다. 공약 재조정의 필요성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공약집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대안 모색도 없이 폐기 운운하는 행태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어제 대선 공약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중복되지 않은지 분석·진단하겠다고 밝혔다. 여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공약 이행 속도조절론’에 대한 첫 반응으로 해석된다. 앞서 새누리당 내에선 계파와 성향을 불문하고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정몽준 의원은 “인수위는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한다”고 했고, 김재원 의원은 “그냥 무조건 (공약을) 지키겠다고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보수언론도 연일 재원 조달의 문제점을 들어 복지공약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이른바 속도조절론자들의 논리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맹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들은 공약의 의미를 간과 또는 폄훼하고 있다. 공약은 선거 승리를 위해 내놓았다가 이기고 나면 간단히 취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자 그대로 유권자와의 공적인 약속이다. 더욱이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실현 가능성을 따지고 또 따져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한다”고 누차 강조하지 않았던가. 둘째, 이들은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에 다시 딴죽을 걸고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게도 매달 노령연금을 주겠다는 건데, 돈 많은 사람한테 왜 세금을 낭비하느냐”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몇 해 전 전면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싸고 국가적 논쟁이 벌어졌을 때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이건희 회장의 손주들한테까지 공짜 점심을 줘야 하느냐”며 똑같은 논리를 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여당 참패로 나타났다. 전 국민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되, 부자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둠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자는 취지에 다수 시민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 공약대로 복지 지출을 확대한다 해도 한국의 복지예산 비중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이를 뿐이라고 한다. ‘박근혜표 복지’가 과도한 포퓰리즘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 당선인은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국민연금 보험료로 기초연금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유(類)의 편법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한 세수 확보 역시 한계가 있다. 근본적 해법은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증세를 적극 검토하는 일이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반발은 불을 보듯 훤하다. 그러나 이 정도 난관도 돌파하지 못한다면 ‘복지 대통령’의 꿈은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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