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1-17일자 기사 '규제와 진흥의 분리라는 관념에 대해'를 퍼왔습니다.
[김동원의 Modus Vivendi]오리너구리에게 배울 점
난감하다는 말을 바로 이럴 때 써야 할 듯하다. 인수위 측에서 내놓은 공식 발표는 “방통위는 현재 수행하는 방송통신 규제 및 진흥 기능 중 진흥기능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 전담 조직으로 대통령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위상을 유지한다. 신설하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ICT 업무는 차관제를 도입해 관장하도록 할 예정이다”라는 단 두 문장이다.

▲ 인수위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는 김용준 위원장(가운데), 유민봉 간사(왼쪽) ⓒ뉴스1
15일 발표 직후 “ICT대연합”을 비롯한 업계 대표, 조직 개편의 당사자, 그리고 언론들은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어떤 부서들이 통폐합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 “규제와 진흥의 분리”, “ICT차관제의 도입” 이 세 가지뿐이다. 워낙에 말을 아끼는 인수위인지라, 지금 쏟아지는 보도들은 미래창조과학부, 규제, 그리고 진흥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의 해설에 가깝고, 심한 경우 압박용으로 쓰여진 것들도 있다. 결국 지금의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나 질문을 바꾸어보자. 지금 나온 조직 개편안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가 아니라 ‘왜 그런 안이 나왔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말이다.
의지의 기호와 정부조직 개편
언론에서는 이번 개편안으로 혼란에 빠진 각 부처와 업계의 동정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런 풍경이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5년 전 MB 정권의 인수위가 처음으로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 또한 이보다 못지않은 해설과 예측을 낳았기 때문이다. 당시 인수위가 내놓은 개편안의 충격은 상당했다.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통일부, 여성가족부 등 7개 부처가 사라지고 각 부서의 기능들이 한데 묶이거나 분리되는 안이었다. 물론 이 개편안이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약 한 달간의 논란을 거쳐 극적으로 합의된 최종안에서는 몇몇 부서가 존속되는 수정이 있었지만 경제관련 부처의 대규모 통폐합은 그대로 시행되었다. 특히 “지식경제부”는 산업자원부를 중심으로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의 일부 업무를 합친 매머드급 부서로 탄생했다. 아울러 정보통신부의 기능 또한 네 분야로 나뉘어져 각기 다른 부서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상당한 수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개편안은 “작은 정부”와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융합IT산업”라는 기조는 끝까지 고수했다.
지금은 어떤가. 최종안을 알 수는 없지만, 발표된 개편안의 핵심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과 경제부총리 및 해양수산부의 부활이다. 여기에 지식경제부가 외교통상부의 통상업무를 이관하여 맡게 된다. 가장 주목을 받는 미래창조과학부는 독립부처로 논의되던 ICT 분야와 교과부의 과학기술분야,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일부 기능을 합친 또 다른 매머드급 부서가 될 예정이라 한다. 5년 전의 기억을 복기한다면, 현재의 개편안에서 핵심은 “경제 살리기”와 “과학기술과 창조경제의 융합”이 될 것이다. 결국 MB 인수위나 지금의 인수위 모두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안은 대선 기간 핵심 공약으로 외치던, 즉 당선인의 의지를 나타내는 기호(sign)들이 정부조직의 이름으로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 5년 전의 MB의 의지가 “지식경제부”로 나타났다면, 지금은 “미래창조과학부”로 나타난 것이다.
주어와 목적어가 없는 규제와 진흥
결국 이번 개편안 또한 현재 각 부처와의 충분한 협의나 정책 수행 로드맵에 기초해 제안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특히나 이번 1차 개편안이 각 부처의 인수위 업무보고가 다 끝나기도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마치 돌발적인 것처럼 들리는 “미래창조과학부”란 명칭이 이미 공약집에 명시되어 있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당선인의 의지와 ‘국정 철학’을 반영하는 이런 기호들이 공약집이 아니라 실제 정부 업무에 적용될 때 벌어진다. 기호들이란 그것이 가리키는 지시물(reference)과 자의적 관계를 맺듯, 지금의 미래창조과학부란 기호도 기존의 어떤 기능과 인력들을, 그리고 어떤 산업분야를 가리킬지 지극히 모호하다. 단지 언급된 표현은 “진흥(promotion)”과 “규제(regulation)” 뿐일 텐데, 이 역시 주어와 목적어가 없는 동사일 뿐이다. 즉 기존 부서 중 누가 진흥과 규제를 맡을지, 그리고 규제의 대상과 산업부문은 어디인지가 정해지지 않은 셈이다. 공약집은 무수한 말들의 결합에 불과하지만 이런 말들이 실제의 정책 수행으로 들어오게 되면 현실의 다양한 삶의 영역들과 주체들의 행위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공약집에서 진흥과 규제의 주어가 ‘박근혜’였다면, 개편안에서 그 주어는 관료조직이 되고, 언급되지 않았던 대상과 수단이 채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다는 이런 점에서 규제와 진흥 또한 순전한 기호에 불과하다. ICT 부문이건, 방송통신융합 분야이건 규제와 진흥은 구별될 수 없는 대상과 행위를 전제한다. 지난 5년 간 숱하게 논란이 되었던 ‘망중립성’을 예로 들어보자. 네트워크(전송망) 사업자들에게 망중립성이란 분명히 규제이지만, 콘텐츠 사업자들과 이용자들에겐 진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케이블TV의 디지털 전환은 또 어떤가? 보급형 디지털TV에 클리어 쾀(Clear QAM)을 도입하는 방안은 디지털 환경을 위한 진흥이지만, 어떤 사업자들에게는 차별적 규제에 가깝다. 이렇게 복잡한 현실을 지극히 자의적인 규제와 진흥이란 기호로 분리해 버린다면, 이는 현실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흥에는 “탈규제와 육성”을, 규제에는 “감시와 통제”라는 의미를 연결하는 관념의 연쇄에 그치고, 결국 조직개편은 내부 이해당사자인 관료들의 합종연횡과 자리 나누기로 귀결되고 만다.
오리너구리에게 배울 점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래창조과학부를 비롯한 이번 정부조직 개편 또한 이전 정권들의 개편안과 그 바탕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말(sign)로 출발하는 이 분류체계가 복잡하고 서로 연관된 현실들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에 있다. 물론 양자의 일치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한때 생물학의 분류체계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오리너구리를 떠올려 보자. 알을 낳으면서도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이 동물은 포유류인지 조류인지 구분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분류와 말을 돌아보게 한다. 생물학뿐일까.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와 밀접한 분류체계 중 하나인 정부 조직개편안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번 인수위의 개편안은 다른 정부가 그랬듯 선거 기간 동안 대상과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던 말이 물질적 형태를 갖추는 첫 번째 과정이 될 것이다. 정치라는 수사학에서 국정 운영이라는 행위로의 첫 번째 이행인 지금, 메모는 수첩에만 있을 수 없고, 개편안은 봉투에만 머물 수 없다. 더 이상 “의지”와 “국정 철학”만을 강조할 때가 아닌 것이다.
김동원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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