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노늘 2013-01-07일자 기사 '윤창중 대변인, 기자 선배 행세할 자격 없다'를 퍼왔습니다.
김창룡 미디어창] ‘폴리널리스트’ 대변인이 내세우는 언론계 30년 경력에 대한 단상
기사감 판단은 누가?”
‘폴리널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선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의 발언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그의 막말논란, 국민편가르기식 발언과 칼럼에 대해 논란이 이어질 때도 과거발언이었기 때문에 좀 더 두고보자는 유보적 입장도 있었다.
야당에서 그의 인선을 두고 반대할 때도 나름의 이유를 이해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그를 임명했고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반대하는 모습은 정말 윤대변인 말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윤 대변인이 공식 대변인이 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언론계 선배인양, 언론인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것은 향후 언론보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이 점은 막말보다 더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야 한다는 사실이다.
윤대변인은 최근 기자 브리핑에서 “기사거리가 안 된다. 영양가가 없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거리가 있는지 여부는 언론이 판단할 문제 아니냐고 기자들이 반발하자 “있는지 없는지는 대변인이 판단한다”고 말을 자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주장의 이면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전해졌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6일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전체회의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30년 정치부 기자와 논설위원, 논설실장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게 (언론이) 국가 요직에 대한 인선 때마다 엄청난 오보를 해서 결과적으로 언론의 신뢰가 상실되는 것을 아주 통감한 사람…(취재원과) 언론과의 신뢰가 형성돼야 그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언론관…”(프레시안 2013년 1월 7일)
인수위 취재를 하는 기자들에게 ‘기사거리가 없다’면서 자신의 언론관을 길게 늘어놓았다. 언론의 오보를 막고 신뢰를 형성해주기 위한 그의 배려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언론의 추측성 오보를 막는 것이 대변인의 역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역할과 주장을 이해하면서도 우려가 되는 부분은 독특한 한국적 정서, 토양 때문이다.
우선, 그는 기자들에게 ‘기사감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언론계 경력 30년을 내세우며 자신의 언론관을 피력했다. 대변인의 자리에 가서도 언론계 경력을 내세우며 후배보듯이 내려다보기 시작하면 ‘언론에 대한 존중’ ‘국민의 알권리’는 소홀해질 위험성이 있다.
특히 한국의 언론계는 선후배 질서의식이 강하다. 폐쇄적 조직일수록 ‘선후배 의식’이 강해서 자리가 바뀌어도 사석에서는 ‘선배, 후배’라는 식으로 일체감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서로의 입장,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30년 언론계 선배가 3년차 출입기자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를 특정 언론사를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보겠는가, ‘젖비린내 나는’ 새까만 후배로 보겠는가.
언론계 출신 대변인의 장점은 언론계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빛나는 법이다. 벌써부터 언론계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발언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왜곡될 수 있는 법이다. 대변인으로 가는 순간, 언론계 경력발언은 빛이 아니라 그림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변인도 언론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만큼 과거 비판의 주체로 활동하던 언론인 사고체계의 신속한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사감 판단의 주체’ 부분이다. 대변인과 기자들 서로 ‘기사감 주체는 자신들이 한다’는 주장은 앞으로 분명히 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이다. 대변인과 기자가 기사감에 대한 인식이 비슷할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일을 해보면 대변인과 기자의 ‘기사감 판단’은 다른 경우가 잦은 편이다. 대변인은 특정 조직을 대변하고 기자는 국민을 대변하기 때문에 기본적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수위도 국민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인수위가 국민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대변인은 조직의 논리와 주장을 정리하여 전달하면 된다. 그 내용을 보고 기자들이 ‘기사감이 된다 안된다’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저널리즘의 정도다. 기자들이 기사감이 된다고 판단해서 기사작성을 하더라도 부장이나 국장이 ‘보도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을 내리게 된다. 저널리즘의 세계에서는 이처럼 각자, 각 위치에서 역할과 판단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흔들게 되면 혼란과 반발이 일게 마련이다. 언론계 경험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위치와 입장이 바뀌면 떠난 조직에 대한 존중은 기본이다.
윤 대변인이 야당에 대해 ‘훈수’를 두거나 반박하는 것은 업무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언론계 후배들을 상대로 ‘기사 판단은 내가 한다’거나 ‘언론계 경력 30년’을 내세우게 되면 향후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구나 ‘폴리널리스트’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언론계 선배에 대해 정조준할 후배기자들의 필봉도 갈수록 예리해질 수 있다.
인수위의 지엽적 문제가 본질적 문제를 압도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국민 화합과 국민 행복은 분열과 적대감으로는 한발짝도 다가설 수 없다. 언론과 국민에 대한 보다 겸손한 언어와 태도, 상대를 존중하는 열린 자세가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cykim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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