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1-18일자 기사 '표창원, ‘국정원 사건’에 언론의 존재이유를 묻는다'를 퍼왔습니다.
[미디어 바로미터]국기문란의혹사건에 과도한 침묵 이해 힘들어…언론은 정의와 진실 추구해야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2030과 5060세대 간 대립과 갈등이 두드려져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아마도 ‘국정원 직원의 불법 선거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극심한 분열과 대립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과 언론이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통해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을 ‘권력기관의 비리 의혹’ 사건이다.
의혹의 진위여부를 둘러싸고 대통령 선거의 향방이 바뀔 정도로 파괴력이 큰 사건이다 보니 사건의 본질과 진실발견, 정의 구현이라는 원칙보다는 입장과 진영, 이해관계에 따라 주장이 달라지는 ‘정치화’와 혼란 상황이 초래되었다. 종전에는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가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를 더 중시했던 ‘보수 진영’ 사람들은 이 사건에서 갑자기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한 반면, 그동안 주로 공권력의 남용 문제를 지적하며 개인의 권리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진보 진영’ 사람들은 경찰의 엄정하고 추상같은 법집행을 요구하는 웃지 못 할 상황마저 만들어진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야 당사자니까 이해한다고 쳐도, ‘권력의 감시자’, ‘국민을 위한 감시견’, ‘진실의 입’이어야 할 언론의 물타기 보도와 과도한 침묵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닉슨 대통령의 재선 선거운동 캠프와 연결된 것으로 의심되는 민간인 5명이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운동 본부였던 워터게이트 호텔에 잠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인 ‘워터게이트(Watergate)’는 최초에 닉슨 대통령과 선거운동본부가 강력하게 연관성을 부인하면서 묻힐 뻔 했다. 하지만 주간지 타임과 진보성향 일간지 뉴욕타임즈는 물론 중도 성향의 워싱턴포스트가 끈질기고 철저하게 파고들며 지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의혹의 본질이 드러나고 관계자의 공익제보가 잇따르면서 결국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왔다. 특히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깊은 목구멍 속(딥 쓰로우트, Deep Throat)’으로 알려진 내부고발자의 익명 제보 내용을 대서특필함으로써 백악관 관리들까지 연계된 대형 선거부정의 진실을 파헤쳐 보도함으로써 세계 정치사를 뒤흔든 초대형 사건인 ‘워터게이트’를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일등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딥 쓰로우트’의 정체는 2005년, 전 FBI 부국장 ‘윌리엄 마크 펠트 시니어’로 알려졌다.
대통령 선거 직전, 종편 방송 JTBC에서 행해진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개입 여론조작 의혹’ 관련 토론에서 세누리당 권영진 단장 역시 ‘사실로 밝혀진다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국기를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사실이 아니라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러한 엄청난 의혹을 제기해 국가안보의 중요한 한 축인 국가정보원의 신뢰성을 훼손한 민주통합당에게 철퇴와 응징이 가해져야 한다. 어떤 편인지를 떠나 ‘진실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그리고 주류 언론과 방송 모두는 시안의 본질을 흐리는 ‘국정원 여직원 인권’ 타령에 수많은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하는 반면, 사건의 본질과 관련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침묵했다. 그것도 무척 오랫동안 도대체 ‘언론과 방송 맞나?’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 정도의 오랜 침묵이었다.
언론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최대 가치인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무관의 제왕’아닌가? 힘없는 국민, 장삼이사 필부필부처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힘 있는 자, 권력의 이해에 따라 나팔 불어 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고 사명인가? 전쟁이나 국가위기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그 어느 때 보다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어야 할 대한민국 아닌가?

▲ 표창원 범죄심리학자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던 동료 19명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해직당해 길바닥에 앉아서도 대안적인 창구를 통해 보도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 민주주의의 본산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국가는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어떤 법도 제정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수 언론이라면 더더욱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외치고 떠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권력이 온 힘을 다해 묻어버리려던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국민 앞에 내어 놓은 타임, 뉴욕 타임즈, 워싱턴포스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관련자와 학자, 전문가들이 언론을 대신해, 자신에게 닥칠 불리한 결과를 무릅쓰며 제기한 사실과 의견이라도 제대로 알리고, 사건의 본질이 묻히지 않도록 수사진행상황과 풀려야할 의문과 의혹들이라도 지속적으로 제기해 진실발견을 위한 사회적 노력에 불이라도 지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는 망국적인 지역감정과 이념 갈등, 세대 간 반목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권력자들은 이러한 분열의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다지고 넓히는 데 악용하며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확산시키고 있다. 언론과 언론인마저 이런 비윤리적이고 비열한 진영주의 분열주의 행렬에 줄서 동참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참담한 갈등과 반목, 분열의 세상이 될 것이다. 정의와 진실이라는 말은 책에서나 볼 수 있고, 사치스러운 호사에 불과해질 것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유불리와 이해가 모든 문제의 판단기준이 되어 버릴 것이다. 벌써 우리 아이들 44%가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1년 쯤 교도소에 다녀와도 좋다’라고 응답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언론, 언론인, 부디 본분을 찾고 제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표창원 범죄심리학자 | cwpy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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