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12-18일자 사설 '[사설]민주역량은 높은 투표율에서 나온다'를 퍼왔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나라의 주인이 된다. 앞으로 우리를 대표하고 우리의 살림을 운영할 대리인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결정하는 일을 한다. 우리가 선택한 대통령은 1826일 동안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 우리의 운명을 책임질 것이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으로서 청와대 주인에게 명실상부한 권한을 행사하는 날은 그 가운데 오직 하루, 바로 오늘뿐이다. 오늘 하루가 앞으로 1826일을 좌우한다. 그 어떤 처절한 호소나 저항으로도 요지부동이던 막강 권력의 선택권이 오늘 하루, 그중에서도 단 12시간 동안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날이 밝았다. 어제 자정으로 공식 선거운동이 마감되면서 ‘후보들의 날’은 끝났다. 단 하루뿐인 ‘유권자의 날’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이번 선거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지금 나라 안팎에 밀어닥치고 있는 변화의 파고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투명하고 변화무쌍하다. 팍스아메리카나의 퇴조에 따른 국제 패권질서의 재편, 서방 자본주의 체제와 시장의 혼란에서 비롯된 세계 경제의 위기,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한반도 주변의 정세 불안 및 외교적 갈등, 인류의 새로운 숙제로 등장한 기후변화 문제 등 전례 없는 난제에 한꺼번에 직면해 있다. 나라 안으로는 이러한 대외 환경 속에서 국가의 안전과 국익을 확보하고 어려운 민생을 되살리며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쉽게도 이번 선거 과정은 이런 중요한 의제들을 충분히, 그리고 심도 있게 담아내지 못했다고 본다. 먼저 다음 집권 세력을 선택할 1차적 기준이 돼야 할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시대정신이자 대선 의제의 중심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올려놓은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원론적 접근이나 구호 수준에 머문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마지막 TV토론에서 후보 간 양자 토론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인물 검증이나 정책의 차별화가 유권자에게 충분히 전달될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정치개혁 부문은 안 전 후보의 사퇴로 물밑에 가라앉았지만 후보자 및 정치권의 향후 숙제로 남겨지게 됐다.
선거 과정에서 이런 여러 가지 미진하고 불확실했던 부분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것이 표다. 어느 진영의 승패를 떠나 표의 총량과 그 구성은 민심을 반영하는 가장 확실하고 구체적인 증거다. 표는 향후 국정운영과 정치개혁의 지표가 된다. 각 후보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물론 선거 과정에서 표출됐던 온갖 네거티브 공세, SNS 불법 선거운동 의혹, 관권 개입 시비 등 정치행태에 대한 평가나 심판도 표에 반영될 수 있다. 투표장에 가기 전에 비정규직 문제, 일자리,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골목상권 보호 등 여러 현안에 대한 공약을 다시 한번 찬찬히 따져볼 필요도 있다.
이번 선거는 처음으로 뚜렷한 제3후보가 없는 양자대결 구도로 치러진다. 판세도 초접전, 박빙 승부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와 관계자의 분석이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 득표 대통령 당선자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다소 흐트러지고 심지어 후퇴했다는 평가마저 제기되고 있는 우리의 민주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좋은 기회라고 본다. 대선과 함께 실시되는 서울시교육감·경남지사 등 26개 지역 재·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지난 5년을 돌아보고 다음 5년을 내다보자. 대통령은 국민이 만드는 게 아니다. 투표하는 국민이 만든다. 권리 위에 잠자는 국민을 권력은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국민의 힘은 민주역량에서 나오고 민주역량은 투표율에 비례해서 커지는 것이다.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의무이기도 한 그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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