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12-19일자 기사 '야만의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을 퍼왔습니다.
이번 대선은 5년 전의 대선과는 확실히 다르다.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공약 대신 경제민주화가 모든 후보들의 공통 공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만큼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권력을 사유화한 위에서 민주주의적 가치와 절차 모두를 외면하고, 부자들만 이익이 되는 경제정책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3배에 이르는 세계 1위의 자살률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서 ‘실업은 곧 죽음’이다. 일자리에서 내몰린 순간 경제적인 빈궁함을 넘어서 사회적인 낙오자가 되고 만다. 노인의 자살률, 청소년의 자살률도 심각하다. 하루에 42.6명.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만큼이라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이건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닌 야만사회다.

ⓒ시사IN 백승기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파업 노동자가 손배 가압류 당하는 나라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경쟁 시스템이 야만사회를 불렀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가 되어야 한다. 인권을 주장하는 게 좌파라는 잘못된 인식부터 거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파업은 권리다. 노동자들이 파업했다고 형사처분을 받고, 손해배상 가압류를 비롯한 경제적인 압박을 받는 것은 ‘인권’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유럽의 여러 국가가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실현했던 무상의료·무상교육을 외면하고, 사회보장을 주장하는 것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건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들이 지나치게 이기적임을 드러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뉴시스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건물에 설치한 망루가 불에 타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선거에서는 악마가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에 취해서 그가 대표하는 세력, 그의 살아온 이력, 정책들을 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할 수 없는 이력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서민의 아픔을 가장 많이 아는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말한다면 이것은 신뢰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살기 위해서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을 죽이는 국가가 아니라,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진압을 허가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도 함께 살 수 있도록 할 후보를 선택해야 할 것이 아닌가.
현실이 불만스럽다면 먼저 투표장에 가자. 투표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이 절로 바뀌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기가 돼지보다 더한 사람이라고 하면 모욕일까. 야만사회를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바꿀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냥 야만사회에서 불평하지 말고 살 일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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