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12-20일자 기사 '패배한 문재인… 훈장이자 멍에가 된 친노, ‘정권 교체’ 문턱서 좌절'을 퍼왔습니다.
ㆍ안철수 지원으로 막판 상승세 탔지만 역부족
‘운명은 여기까지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가 현직 의원으로 향후 어떤 정치 행보를 보일지는 모르지만 다시 그에게 큰 기회가 주어질 지는 미지수다.
문 후보는 19일 밤 11시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서울 영등포 당사로 나와 기자회견을 열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죄송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저의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모두 다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18대 대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왼쪽)가 19일 밤 서울 영등포 당사로 가기 위해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을 나오던 중 지지자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후보의 정치 역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떼어놓을 수 없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전력으로 인해 판사를 포기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한 뒤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평생의 친구 노무현을 만났다.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고, 노동·인권·시국 사건을 도맡아 변호했다.
노 변호사가 1988년 13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두 사람은 잠시 이별했지만, 2002년 대선에서 문 후보는 노 후보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을 맡았다.
청와대에 들어간 문 후보는 민정수석을 맡았다. ‘왕수석’으로 불렸지만 5년간 국정운영 경험은 영광만큼 상처도 많았다. 2007년 3월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뒤엔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으로 여론이 악화됐다.

정권이 끝나고 친구를 따라 고향으로 낙향한 문 후보는 조용히 초야에 묻혀 지냈다. 2009년 그의 운명을 바꾼 대사건이 일어났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세상을 버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하고 장례를 주재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조용한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1년 정치에 입문했다. 문 후보는 올해 4·11 총선에 부산 사상에서 출사표를 내고 당선됐다. 부산·경남 지역 총선을 진두지휘했지만 3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문 후보는 지난 6월 지지자들의 기대를 현실로 받아들여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꿈꿔왔던 사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5년을 참을 수 없어 나왔다.”
당내 대선 경선 초기부터 불거진 모바일 투표 경선 문제로 후보들의 감정 싸움이 비화됐고, 문 후보와 친노 진영은 또다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본선은 더 치열했다. 9월16일 민주당 후보가 됐지만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 후보가 곧바로 공식 출마해 야권 후보 자리를 놓고 그와 맞섰다. 둘은 단일화 방식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협상 테이블은 안 후보의 사퇴로 개운치 않게 마무리됐다.
결승전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향한 공동전선으로 안 전 후보와 함께 유세를 했다. 상승세를 탔고, 야권의 지지층과 부동층 일부도 결집했다.
하지만 결국 문 후보의 ‘운명’은 대통령 당선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출마선언 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정치초년병 문재인은 불꽃같은 6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부산 사상 지역구 국회의원 문재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향후 전개될 민주당의 정계개편에도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 또 다른 운명을 맞게 된 셈이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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