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12-19일자 기사 '신영철 대법관 사태를 설마 잊었나요'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린다’와 이른바 ‘747’ 공약을 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비록 그것이 여러 지표에 의해 모두 허구로 드러났지만, 그러한 공약은 우리 사회에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성장’과 ‘성과’라는 가치를 앞세우도록 했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같은 헌법상의 기본권보다는 돈·경제력·순위 따위 숫자로 표상되는 가치가 더 인정받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목표 달성의 객체로 전락했고, 인간성의 보장이라는 숭고한 이념은 예전보다 한참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렬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이러한 사회 전반의 모습은 법원과 재판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다. 헌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는 ‘재판청구권’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국민은 재판청구권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재판의 객체 내지는 법원이나 담당재판부에 계류된 사건의 숫자로 취급받았을 뿐이었다.
성과 내기 위해 법관의 재판권까지 침해
그 첫 번째 실례가 바로 2009년 당시 서울지방법원장이던 신영철 현 대법관의 재판 개입 사태다. 신 대법관은 대법관 발탁을 위한 성과를 내기 위해 법관들의 재판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집시법 위반사건에 대한 신속한 재판을 법관들에게 요구했다(물론 신 대법관이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그런 행위를 했다는 견해도 있다). 법원이 억울하게 재판에 회부된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기는커녕, 그들을 개인 영달의 걸림돌로 취급한 단적인 예라 아니할 수 없다.

ⓒ뉴시스 2월17일 서울북부지방법원 앞에서 서기호 판사(앞) 퇴임식이 열렸다. 대법원은 서 판사의 근무 성적이 불량하다며 재임용을 거부했다.
두 번째는 2012년 서기호 전 판사 재임용 거부 사태다. 당시 대법원은 근무 성적이 불량하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행하지 않았던 법관에 대한 재임용을 거부했다(물론 재임용 거부가 대법원에 대한 입바른 소리를 해온 서기호 전 판사에 대한 보복행위라는 견해도 있다). 그 때문에 판사들은 자신의 지위 보전을 위해 근무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판사들로 하여금 재판 과정에서 재판 당사자를 위한 재판을 하기보다는 신속한 사건처리(법원에서는 이것을 ‘사건을 뗀다’고 표현한다. 지극히 비인간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에 내몰리도록 했다. 최근에 문제가 된 이른바 ‘막말 판사 파문’ 또한 이러한 성과주의 탓에 생긴 불행한 일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므로(헌법 제1조), 법원이 담당하는 사법권 또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일 뿐이다. 법원이 재판 당사자를 재판의 객체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으로 인식하려면, 이러한 성과주의의 폐해를 극복해야 할 것이지만, 국민 또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국민이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헌법 제24조에 따른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 즉 투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있다.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법원에 사법권을 위임한 주체가 아니라, 재판의 객체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국민을 사람으로, 주권자로 받들 후보자가 누구인지, 반대로 수단으로, 대상으로 삼을 후보자가 누구인지도 잘 살펴 신중하게 투표해야 한다. 그것이 참 주권자가 되는 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절대로!
이정렬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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