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12-20일자 기사 '다시 '보수정부' 5년을 맞이하며'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사흘의 희망’과 깊은 상실감에 대한 소고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늘 오전 현충원의 '부친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뉴스1
돌이켜보면 기자가 이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거라 생각한 기간은 사흘 정도였다. 그 전에는 주변에서 희망을 설파하는 이들에게 ‘박빙 패배’가 예측되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다 공표금지 기간의 여론조사들을 몇 개 접하며, 문재인 후보가 동률이 됐거나 뒤집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선거 마지막 날 여론조사를 보니 또 다시 비관론이 몰려왔다. 여러 상이한 조사를 접하며 하루에도 기분이 열두 번 바뀌었다. 선거날엔 고무적인 투표율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 직전에 전해 듣고 사색이 되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미디어스 기자들이 쓴 분석 역시 오류였다. 선거가 매우 어렵다고는 말했지만 투표율이 70%를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기자는 “새누리당 표는 1200만표를 넘어갈 수 없다”는 이해찬의 ‘정치공학’에 냉소했다. 하지만 역시 “박근혜 후보는 절대로 1500만표를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그랬으니 ‘3천만표’ 이상의 투표율이 나온 선거에서 ‘필승’의 기운을 느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보수는 2007년 대선 ‘이명박+이회창=1500만표’보다 더 높은 득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친노와 참여정부 2기가 싫어서 박근혜를 택할 이들의 숫자도 과소평가되었다.
이쯤에서 ‘정치공학’이란 말을 되돌아 본다.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공학’이란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처음엔 그 문제제기를 납득하지 못했다. ‘정치공학’이니 ‘선거공학’이니 남들 다 쓰는 말을 웹매체에서 조금이라도 재밌는 제목을 만들기 위해 쓰는게 무슨 문제인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민을 해본 결과, ‘썰’이 좀 길어지만 그 뒤에 ‘XX철학’이나 ‘XX의 인문학’이란 말을 붙이는게 전공자에게 기분 나쁘고 올바른 용법도 아니듯이, 뭔가 계산이 나온다고 ‘공학’ 운운하는 말들도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미디어스 정치팀에서는 다른 이들의 발언을 인용하거나 생각을 요약할 때가 아니라면 되도록 이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결의하게 되었다.
수많은 ‘정치공학’이 있다. 그리고 야권이 패배한 것도 결국 한 명 한 명 사람의 마음을 잡기보다 그러한 계산법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2년 쯤 전에 정치부 기자를 하는 한 선배가 “유시민이 대선에 나오면 무조건 대통령이 된다”고 주장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의 근거는, 노무현의 죽음 때문에 PK에서는 무조건 3할 이상을 득표할 수 있고, 유시민이 대구 출신이기 때문에 TK에서는 무조건 2할 이상을 득표할 수 있는데, 현재의 지역구도에서 야권이 그 정도 투표를 하고 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계산은 수도권의 우위와 충청/강원/제주에서의 적절한 분할을 가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산은 그저 ‘전례’에 입각한 것일 뿐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문재인 후보는 영남에서는 그의 기대 이상의 득표력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했다.
단순히 선거전술로만 봐도, 수도권과 부산경남 이외 지역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5060 세대 중 일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라는 고려도 없었다. 지난 5년 간의 정치전략을 본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반MB 정서’로 4년을 보내다 ‘독재자의 딸’로 1년을 보냈다. ‘안철수 현상’도 결국 받아 안지 못했다. 5년 동안 저들만 막으면 된다고 말하다 막상 저들을 막을 가능성이 더 높은 후보가 나타나자 정당정치나 집권경륜을 내세우는 꼴도 우스웠다. 결국 박근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이외의 ‘플러스 알파’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기자가 되기 전에 여기저기서 썼던 글들을 찾아본다.
“확실한 것은 2004년에 우리가 벌었던 것을 다 털어먹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진영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은 제로베이스로 돌아갔다.”
“다시 우리 시대의 정치적 투쟁은 '노무현'이란 이름의 내용없는 기호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모든 정치인들, 모든 것들을 사람들은 비난할 것이다.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난 그의 마음을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부여잡는다. 그의 부활은 정치의식의 성숙이 아니라 탈정치성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를 반MB전선의 상징으로 삼아봤자 그 수혜자는 박근혜가 될 것이다.”
3년 반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전후에 썼던 글의 한 조각들이다. 기자가 된 후 이번 선거 국면에서 쓴 글들도 뒤젹여 본다.
“민주당이 오늘날 처하게 된 고난은 대부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어떤 세대를 분할하는 것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공략이 쉬워보이는 특정지역(PK)과 특정세대(2030)를 부여잡으려고 한 데에서 온 것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주요 대선후보 1차 TV토론을 보고 트위터에서 ‘이정희의 발언은 문재인의 내면의 소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사로 본다면 민주당과 좌파 (민족주의) 운동권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민주당은 가령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선 적당히 인정하고 전두환에 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취한다든지 하는 식의 (세대 유권자 분할을 위한) 현실주의적 접근을 취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경제정책이야 어쨌든 역사관에 있어서는 민족주의 좌파들과 사실상 동일한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박정희에 대한 폄하를 자신의 청년시절의 노동에 대한 폄하로 받아들이는 특정세대에 대해선 본인들이 대변해야 할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접근할 길이 막혀버린 현실이다.
민주당은 그들이 조만간 늙거나 죽어서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세대를 선택한 자신들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처할 거라고 확신했을 거다. 보수언론은 민주당에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노인 폄하’ 발언을 확대해석하고 왜곡하면서 노년세대의 이러한 심증의 불씨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민주당의 판단은 장기적으로는 옳았다. 그러나 산업화의 성공이 가져온 평균 수명의 증대와 민주정부 이후 신자유주의의 수용 등이 얽혀서 가속화된 저출산의 기조는 세대 인구구성의 측면에서 ‘민주당의 노림수가 맞아 떨어지는 그날’을 끝없이 지연시키고 있다.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심판론’ 같은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을 들이밀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에서도 그들은 ‘우리처럼 사익추구를 포기한 사람이 하는 일에 시비를 거느냐’란 식의 운동권적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적절한 대처에 실패하고 말았다. 2002년의 상황에서 부산 출신 노무현이 민주당의 다른 정치인보다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반호남 정서를 우회할 수 있는 이였기에 호남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의 의미를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 여전히 ‘PK대망론’과 같은 정치공학을 짜면서 ‘친노 2선 후퇴론’은 정략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바로 아직 시대정신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친노의 자기확신이다.“ (기사 링크)
최근의 정국을 보며 쓴 글의 한 조각이다. 결국,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고 해결되지도 않았다. 민주세력이 집권했을 때도 나타났던 문제들에 대해서까지 ‘대통령 욕’을 일삼았던 지난 5년과는 달리, 새로운 보수정권을 맞이한 이번 5년은 이런 차원의 문제들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지금의 새누리당 역시 ‘1997년 대선의 패배’ 때는 운이 없었다 자조하다 ‘2002년 대선의 패배’와 ‘2004년 총선의 패배’를 겪으면서 영원히 권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뉴라이트를 만드는 등 뭔가 다른 길을 모색했다.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자뻑’도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배 곯는 것을 두려워하는 새누리당에 비해, 민주화 운동 출신들과 그 정서를 가진 야권은 “지더라도 버틸 수 있다”는 자세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악조건에서 버티는 것’과 ‘스스로 악조건을 만들어내면서 버티기만 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87년 체제’의 재구성은 물건너갔지만, ‘87년 정서’의 재구성은 이루어지지 못한 ‘민주정부 3기’를 위해 필수적인 과제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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