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9일 금요일

대선, TV토론의 장은 어디에 있는가?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08일자 기사 '대선, TV토론의 장은 어디에 있는가?'를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제도 언론의 부끄러운 풍경

대선이라는 치열하고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견인하는 대사를 앞두고, 기이하게도 이 “국민 드라마”의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후보자들이 직접 만나서 펼치는 논점의 전개와 공방의 풍경은, 혹은 공영방송이 마련한 포럼에 나와서 패널과 대선주자가 함께 풀어가는 대화와 논쟁의 장은 아직까지 볼 수가 없다. 물론 이번 대선의 대표주자들은 활발하게 현장과 거리의 곳곳을 누비며 손목이 시큰거리고 목이 쉬도록 지지를 호소하고 있고, 이들이 언론과 국민을 대상으로 던지는 발언들은 기사와 영상으로 연일 등장하고 있으며, 선거캠프의 주요 인사들은 자신들의 정책에 대한 홍보와 함께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거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 KBS는 최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불참한단 이유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나오기로 한 TV토론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럼에도 어딘가 허전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미 지금쯤이라면 외국의 선거상황에서는 흔하게 접했을 그리고 다수의 시민들이 대면할 수 있는 TV로 매개되는 대선주자들을 초청한 토론이나 “타운홀 미팅” 형식의 이벤트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필자가 논하고 싶은 주제는 이번 대선의 대표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혹은 선정된 패널과 주자 한사람 간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역량을 보여줄 대선토론회이다.
언론은 최근에 KBS가 이달 13-15일로 날을 잡아 기획을 추진했던 대선주자들의 토론회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산되었거나 “유예”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초청에 응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캠프와는 달리, 박근혜 캠프의 관계자들은 이 기획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언론은 “KBS 홍보실은 새누리당 측에서 여권 측 후보는 한 명인데 야권 측 후보는 두 명이 나오는 것을 지적하며 이번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언론노조 KBS본부에 의하면, ”박근혜 후보가 토론 순서에서 마지막 날을 주거나 아니면 자신만 별도의 날짜를 잡아 달라고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토론 자체를 거부한 것"이라는 입장이 제기되었다(연합뉴스, 11월 4일자 기사 참고). KBS측은 대선TV토론 방송위원들이 진행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토론회를 결국은 마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연유로 대선TV 토론회의 위원들은 위촉식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차후에 대선토론회가 마땅히 열리겠지만, 한쪽의 입장을 수용하고, 위촉한 위원들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이 연속토론회를 무산시킨 결정에 대한 비판과 책임론이 강하게 개진되고 있다. 

▲ 유력한 대선 후보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좀처럼 TV토론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약점이 많고 순발력이 부족한 박 후보가 TV토론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방송 역시 박 후보의 이런 점을 비판하기보다는 TV토론 자체를 피해가는 모양새다. 사진은 새누리당 후보 경선 당시 TV토론을 준비하는 박 후보의 모습.ⓒ뉴스1

언론학자이자 시민이며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먼저 드는 생각은, 공영방송의 역할과 기치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지 못하고 특정한 정치적인 논리와 이해관계에 휘둘리며 몸을 사리는 KBS 수뇌부의 매우 문제적인 결정에 대한 실망감이다. 다소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선거는 말의 향연이며, 팽팽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와 팩트 그리고 교차검증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국가지대사를 짊어질 이들이 방송이 제공한 포럼에 나와서 자신들의 정책과 철학, 그리고 여전히 검증이 되어야할 긴요한 사안과 쟁점들을 두고 벌이는 말의 퍼포먼스는, 활자화되거나 잠시 스쳐 지나는 수준의 관습화된 영상과 사운드바이트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후보자들의 언행을 생생하게 안방의 TV로, 그리고 다양한 매체로 이를 목격하는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각 캠프의 구성원들이 한국사회의 쟁점과 개입이 필요한 문제들을 풀어내는 정책과 강령을 그리고 후보자 상호 간의 차별점들을 담론화하지만, 후보자 본인이 직접 TV에 등장해서 자신의 육성과 표정으로 그리고 입장으로 풀어내고 방어하는 정치관과 정책에 관한 의견들이 생성하는 집합적인 효과가 대선이라는 정치이벤트에서 매우 긴요하다는 논의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특히 다수의 수용자들이 접근 가능한 텔레비전으로 매개되는 토론의 형식은 생업에 쫓겨 가며 신문지면을 읽는 독자들이나, 인터넷 포털의 대문에 등장하는 기사들을 클릭하고 자신들의 선택에 영향을 줄 정보를 채집하는 네티즌들이, 그리고 나아가서 지인들과 대선후보들에 대한 열기 띤 논쟁과 평가를 일상 속에서 이어가는 시민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유용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의 황금기를 혹은 최근의 진중권 교수와 간결이라는 네티즌이 벌인 “배틀”을 기억하는 이라면, 열띤 공방전이 펼쳐지는 동안 집안에서, 인터넷과 SNS의 공간에서 어떤 양식과 톤의 활기차고 열정과 관점이 깃든, 그리고 정서적이고 인지적인 측면의 반응들이 표출되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박근혜 후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라면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쟁점과 기존의 “줄푸세”에서 “경제민주화”로 급작스럽게 전환된 정책노선이나, 혹은 최근에 다시 불거진 박후보의 역사관과 불안한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복안에 대해 어떤 특정한 입장을 그녀가 직접 개진할 것인지 매우 궁금해 할 것이다.
반면에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라면, 정치영역에 상대적으로 늦게 입문한 이 두 후보가 어떠한 이유와 사명감으로 대선주자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그리고 “새정치” “단일화“와 ”신당창당“의 가능성이나 두 캠프간의 연대 등의 사안들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후보들의 입장은 무엇인지에 대해 여전히 상당한 궁금증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일단 스테이지가 차려지고 나면 보다 많은 논의와 관점들이, 솔직한 의견과 더불어 상대후보의 약점을 파고드는 공방이, 예리한 질문을 피해가는 방어의 기술들이, 그리고 논리와 함께 감정의 표출이 등장할 것이다. 물론 사안과 이벤트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에 맞춘 준비와 리허설을 한 후보자들이 예상된 혹은 준비된 언행을 보이겠지만, 여전히 TV토론은 후보들의 언행을 생생하게 노출/전달하고 이들의 캐릭터를 일정부분 드러내는 흔치 않은 장이자,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귀중한 표를 행사하는데 중요한 판단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다수의 시민과 수용자들이 분명 고대하고, 관심을 보일 이 공적인 스테이지는 여전히 차려지지 않고 있다. 유권자의 알권리를 부분적으로 충족시키며, 크게는 이 시대 말의 풍경을 다시 한 번 가늠하게 해줄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성사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여러모로 불만족스럽고, 실망스러우며, 안타깝다. 이 대목에서 다시 공영방송의 역할방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공학에 의존하는 캠프 구성원들의 단견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다르게 접근하면 언론학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이 선거와 관련해서 종종 주요한 사례분석으로 다루고 복기하는 “케네디 대 닉슨”의 TV토론이 견인했던 효과나 최근에 진행되었던 “오바마 대 롬니”의 텔레비전 토론의 함의와 명암을 이 대목에서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텔레비전으로 매개되는 대선토론이 만능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단한 노동과 정보와 언설의 홍수 속에서 여전히 대선이라는 국민적인 리츄얼(ritual)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시민들에게, 대선토론은 정치참여와 필요한 담론의 형성 그리고 후보자 검증과 비교를 활성화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하고 마땅히 필요한 자원이자 촉매재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공영’방송이 자신의 현저하게 추락된 위상의 일부라도 보전할 기회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기하고, 대선토론의 활성화에 주춤거리고 있는 궁색한 모습은 이 시대 제도언론의 부끄러운 풍경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기에 씁쓸하다.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공적인 책무를 진중하게 다시 곱씹어보기를, 시민과 시청자들을 떠올리며 자기반성과 더불어 늦었지만 변화를 신속하게 모색하기를, 그리고 공정하고 균형적인 룰에 의거한 매서운 질문과 심도 있는 검증이 제기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를 재차 요구한다.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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