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18일자 기사 '김미화 “나 개콘하차 때 PD 치졸한 전략을…”'을 퍼왔습니다.
저서 ‘웃기고 자빠졌네’, “KBS 블랙리스트 고소사건 중 시험관 아이 착상 실패”
최근 방송연기자들이 외주사의 미지급 출연료 및 지연지급, 초과분 미지급 출연료 지급을 요구하며 개그콘서트 방송 저지에 나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개콘 출연자들은 18일 방송될 개콘 녹화를 마쳤다. 이 같은 이유를 두고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관계자들은 “드라마 연기자들 보다 개그맨들이 훨씬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며 “당장 잘릴 염려가 있는 젊은 연기자들이 선뜻 촬영거부에 동참하겠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의 단면은 KBS 2TV 개그콘서트를 태어나게 했던 방송인 김미화씨가 개콘에서 잘리게 된 과정에서도 그 일면이 나타난다. 김씨는 최근 저술한 저서 ‘웃기고 자빠졌네’에서 이런 기구한 사연을 담았다.
김씨는 “나는 잘리는 것에 담담할 만큼 굳은 살이 박인 사람”이라며 “그 긴 기간 동안 이만하면 됐다 생각하고 내 의지로 웃으며 그만둔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반 년 아니면 일 년, 순환하면서 프로그램을 맡게 되는 담당 PD의 예고없는 결정이나 통보에 나의 운명이 결정되곤 했다. 연기자 입장에서 황당한 것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주부터는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며 “개그콘서트에서 잘릴 때도 그랬다”고 지목했다.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
당시 늦깍이로 대학 공부를 하면서 PD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신이 맡은 코너를 미리 리허설하거나 살짝 미루는 방식으로 개콘 녹화방송 진행을 해왔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착각인 줄 모르겠으나 늦은 나이에 공부 좀 해보겠다는데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개콘 녹화가 있었던 어느 날, 새로 배치된 부장 PD로부터 다음 주부터 그만 나와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속으로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을’이고 비정규직일 뿐”이라고 한탄했다. 그래도 헤어질 때라도 서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다음 날 예능본부장과 만났더니 본부장실에 있던 부장과 후배 PD가 자신을 자른 이유를 듣고 “한마디도 못하고 그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본부장 앞에 앉은 부장은 후배 PD를 시켜 내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체크했노라며 노트를 좍 펴더니 내가 몇월 며칠 연습에 몇 분 늦었고, 며칠에는 몇 분 빨리 나갔는지를 침을 튀겨가며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그의 꼼꼼한 자료수집 능력과 치졸한 전략에 입이 쩍 벌어지면서 여기서 예의 운운하는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그냥 나와버린 것이다”.
김씨는 “이것이 개그콘서트를 탄생시킨 사람에 대한 마지막 대우였다”며 “나는 애들싸움도 이렇게 유치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분하고 서러워 몇 달을 끙끙 앓으며 지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썼다.
지난 1999년 9월 4일 첫방송을 시작한 뒤 13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에서 김미화씨가 ‘봉숭아학당’ 선생님 역을 끝으로 하차한 것은 지난 2002년 10월 27일이었다. 김씨는 개콘 아이디어 기획서를 들고 당시 경명철 TV예능본부장에 찾아가 설득한 끝에 OK를 받아낸 일화도 책에 썼다.
이밖에도 김씨는 이 책 ‘웃기고 자빠졌네’에서 지난 4년 여 간 KBS 블랙리스트 고소사건과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하차해가는 과정에서 ‘기막힌’ 경험을 담담하게 펼쳐놨다.

김미화의 저서 '웃기고 자빠졌네'
특히 김씨는 지난 2010년 KBS의 ‘블랙리스트’ 고소사건 과정에서 남편과 네 번째 시험관 아이 수정을 시도하던 중에 착상이 실패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KBS 고소사건으로 경찰에 출두하느라 시달리던 그 대 공교롭게도 나는 내 아이 둘, 남편 아이 둘, 도합 네 명의 자식에 이은 다섯 번째 아이를 갖기 위한 시험관 시술 중이었다”며 “늦은 나이지만 하늘이 허락해 주신다면 아이를 하나 꼭 낳고 싶었다. 일년 전부터 노려해왔고, 이미 세 번의 실패 후 네 번째 시술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난자를 다시 뱃속에 넣고 병원 침실에 나 혼자 하루 종일 누워서 꼼짝 안하고 잘 착상되길 기도하며 침대에서 그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어야 했다.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데 이 걱정 저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며 “시간이 흘러 전화가 왔다. 간호사가 ‘많이 기다리셨을텐데, 잘 안됐네요, 편하게 마음 먹으세요’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김씨는 “이런 말 못할 사정 때문에라도 그렇게 고소하지 말아 달라 KBS에 사정했건만…”이라며 “경찰서에 끌려 다니면서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꿈꾸며 분노보다는 희망과 기대감을 키웠고, 될 수 있으면 행복한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KBS 사건이 더더욱 난감하고 원망스러웠던 이유”라고 기록했다.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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