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1-14일자 기사 '박근혜와 MB, 공조인가 야합인가'를 퍼왔습니다.
요즈음 진보적 신문들과 인터넷매체들은 ‘이명박근혜’와 ‘찰떡공조’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박근혜가 이명박을 러닝메이트로 삼았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박근혜는 이명박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거듭된 악정과 실정으로 이미 오래 전에 레임덕이 되어버린 대통령이 집권당 소속인데도 전혀 연관이 없다는 듯이 여기는 언동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MBC 사장 김재철 해임 문제와 ‘내곡동 사저 특검 시한 연장’을 둘러싸고 박근혜는 오랜 ‘정치적 동반자’처럼 이명박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갑작스런 화해와 동행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진영의 무차별 공세를 받은 데다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뒤져 패배한 박근혜는 감정의 앙금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본인을 비롯한 친인척과 측근들이 부정과 비리에 휘말렸을 때 구원의 손길을 뻗지 않고 ‘소 닭 보듯’ 한 것은 자연스런 일로 보였다. 그러던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이명박과 공생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명박의 임기말 위상은 최악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궁지로 몰아붙여 소속 정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김대중·노무현과 달리 그는 언론의 외면을 당하다시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NLL'을 소재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을 공격하던 때 그는 현장을 찾아가서 “NLL을 목숨 걸고 지키자”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쥠으로써 잠깐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8면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보수언론의 지면에서도 ‘뉴스 가치’가 보잘 것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 이명박의 손을 박근혜가 잡은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정치적 공조’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이것은 한마디로 ‘야합’이다. 공조는 생산적인 차원에서 ‘서로 돕는다’는 뜻인데 두 사람의 ‘찰떡공조’는 한국의 정치와 역사 발전에 이바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재철 해임안을 부결시킨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의 결정에 청와대와 박근혜 캠프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정황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갖은 비리와 추문으로 얼룩진 그는 공정방송을 열망하는 언론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이 ‘퇴출’을 요구하는 인물이다. 지상파방송 3사 가운데 MBC의 신뢰도와 뉴스 시청률이 꼴찌로 추락하게 만든 장본인인 그가 사장 자리를 지키면서 ‘지휘’할 대선 관련 보도와 논평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 문방위 위원들은 지난 11월 8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의 김 사장 해임안 부결과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의 폭로로 드러난 하금렬 대통령실장,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본 총괄본부장의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김 사장 유임 종용 의혹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가 ‘공영방송 MBC 장악의 완벽한 동반자임’임을 확인케 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5·16 쿠데타를 주동한 박정희가 방송부터 장악했던 것을 보기로 들면서 “박근혜 후보가 겉으로는 방송의 공공성 강화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고서는, 내심 편파 불공정 방송에 기대 정권 연장을 꾀하려 한다면 50년 군부가 방송을 장악해 독재정권을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명박이 자신이 연관된 ‘내곡동 사저 터 불법 매입’ 의혹에 관해, 특검을 향해 현행법에 어긋나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길을 닦아준 사실은 ‘이명박근혜’의 결합이 생산적 공조가 아니라 야합임을 명확히 입증했다. 진보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은 지난 13일 “특검 연장 거부로 교도소 담장 위 대통령의 농성은 약간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특검에는 시효가 있지만 국민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김영삼이 ‘3당합당의 주역’인 노태우와 함께 전두환을 철창 안으로 보내 결국 장기형을 선고받게 한 사례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최근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대표하는 보수언론이 이명박에 대한 기사와 논평을 미적지근하게 내보내는 것을 보면 2007년 노무현의 임기 말에 그 신문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정권의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인사에 불이익을 받을까 벌벌 떠는 공무원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몇 달 뒤면 헛일이 될 (기사)송고실 폐쇄 작업에 몰아넣고 있는 이 정권의 모습이 정상이 아닌 병적 귀기(鬼氣)를 자아낸다.”(조선일보, 2007년 12월 18일자 사설)
“국가가, 정부가, 이렇게까지 조롱거리가 된 적이 한국의 근대사에는 없다. (···) 노무현 권력은 막무가내다. 권력에 취해 나라를 총체적으로 결딴내고 물러갈 심산인 것 같다. (···) 대통령은 그동안 받아든 시험지마다 부실답안을 작성했다. 마지막 시험시간, 그는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 같다. (···) 실권(失權)이 두려워, 4년 반 동안 누렸던 영화가 달아나는 것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있다.”(중앙일보, 2007년 9월 12일자 사설)
“1만 명이 참석하고 억 단위의 돈을 들여 대대적으로 환영행사를 치른다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조용한 퇴임을 바라는 국민을 상대로 어깃장이라도 놓겠다는 것인가. (···) 숭례문 소실로 온 국민이 상심한 때 이런 소식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상할 지경이다.”(동아일보, 2008년 2월 14일자 사설)
봉하마을로 돌아가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노무현은 결국 권력과 언론의 무차별 공격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떠난지 3년만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사람으로 국민 앞에 되살아났다. 지난 5월 23일 리서치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가 노무현 35.4%로 박정희의 31.4%를 앞질렀던 것이다. 3위는 13.5%의 김대중이었고, 이명박은 8%에 불과했다. 지난 10월 29일 같은 기관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노무현 31.0%, 박정희 29.2%, 이명박 13.7%로 나타났다.
박근혜는 이런 이명박과 손을 잡고 대선을 치르려고 한다. 어떤 정치평론가들은 새누리당의 확고한 지지세력인 ‘집토끼들’의 표를 굳히면서 ‘호남 총리론’을 내세워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한다. 박근혜가 14 번의 전과와 많은 ‘위법·탈법’ 의혹에 휩싸여 있는 이명박과의 ‘찰떡야합’으로 12월 19일의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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