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홍성담을 알면 ‘박정희 낳은 박근혜’가 보인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1-20일자 기사 '홍성담을 알면 ‘박정희 낳은 박근혜’가 보인다'를 퍼왔습니다.
[데스크칼럼]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진 못할 망정
홍성담 화백을 만난 지 좀 됐다 싶다. 기자 생활이란 게 좀 그러하지 않은가. 만날 사람은 많아도 ‘이슈’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직업. 막걸리 해후를 약속하고도 찾아가지 못한 기자를 그는 이해할 것이다.
홍 화백은 밤이나 낮이나 꽉 찬 가슴으로 혁명을 위해 청춘을 바친 ‘조직 활동가’였고, 이제는 ‘화가’로 민중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최근 그가 평화박물관에 선보인 작품 ‘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와 ‘우리는 유신스타일’은 요즘 그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민중의소리 홍성담 화백
그의 작업실은 안산 원당마을에 있다. 기자가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는 종이 뭉치와 물감 그릇, 갖가지 미술도구들로 어지럽혀 있었다. 과장하자면 발 딛을 틈도 없이 뭔가가 잔뜩 있어 가까스로 앉을 수 있었다. 눈에 가장 먼저 띤 것은 더럽고 낡은 스피커들. 음악을 꽤 좋아하지 않으면 작업실 내부에 쌓아놓기조차 부담스러운 물건들이었다. 기자가 음악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장르 가리지 않고 음악은 다 좋아한다”며 웃어버렸다.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그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거나 조예가 깊은 사람 중 하나였다.
홍 화백은 아주 달고 맛난 그림으로 시를 짓고 이야기한다. 화제와 흥미를 넘어 날카롭고 섬세한 사회성을 모두 품는다. 경탄과 경멸이 뒤섞여 있는 현실에 몸을 담근 채 느끼고 보았던 일들을 기록한다. ‘야스쿠니의 미망’ 같은 작품은 한민족의 애환을 꿰뚫는 서사로 기자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홍 화백이 정식으로 화가가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故 윤한봉 선생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것은 다양한 형태와 경로가 있다.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 나듯이 단번에 바뀌기도 하고,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에 바위가 구멍이 뚫리듯 서서히 변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겪었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의식화되다 투철한 운동가를 만나 애벌레가 껍질을 벗듯 과감한 탈피를 했다.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 전면적으로 투쟁에 나서지 못했다. 몸도 좋지 않았고 의식도 깊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977년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결핵을 앓고 무안에 있는 요양소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민청학련 사건과 유신정부의 긴급조치 위반으로 지명수배 받던 윤한봉·김남주 선생을 만나면서다.
그는 윤한봉·김남주 선생과 가까이 지내면서 사회변혁 운동에 복무하는 문화운동가로 거듭났고, 이후 요양원에서 나와 백은일·최열·박광수 선생 등과 함께 ‘광주자유미술인협회’를 결성했다. 이 협회는 독재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태동한 전국 최초의 민중예술단체였으며, 민중문화운동의 전국화에 크게 기여했다.
ⓒ홍성담 홍성담, 개밥 1987 28 x 21, 목판화
홍 화백을 설명하자면 ‘5월 광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광주항쟁 당시 대자보를 써서 붙이고, 플래카드에 구호를 적는 선전일꾼으로 일했다. 그 시절에는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선전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때였다.
그의 작품 ‘밥’ 시리즈도 광주항쟁의 잊지 못할 기억 때문에 탄생했다. 계엄군의 첫 발포가 있던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 금남로가 시위대로 발 딛을 틈 없이 꽉 차있던 날, 연발 사격 소리가 짧은 간격으로 들려왔다. 사람들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도 광주은행 구 본점이 있던 골목에서 시민들과 함께 숨었다. 거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총 맞은 두 사람이 낮은 포복으로 내려왔는데, 배에서 피가 콸콸 솟아지고 창자가 함께 끌려왔다. 그는 죽은 이의 몸에서 뭔가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아직 삭지 않은 보리알이었다.
그는 “아침에 어머니가 해 준 밥을 먹고 그래도 민주화를 만들겠다고 나와 분절한 것을 봤다”고 말했다. 지금도 광주항쟁을 떠올리면 그 보리밥알만 생각난다는 것. 이날 그는 집으로 향하면서 “저 보리밥알을 심고, 저 시신이 거름이 돼 훌륭한 보리를 키워 황금 들녘을 이루고, 그걸 먹고 우리 후세들이 5월의 진실을 전국화 해야 한다”고 맹세했다. 이어 그는 “그 보리밥알 하나에 절대 고독하고 절대 함께 해야만 하는 인간의 존엄성, 그 생명의 사슬이 끊임없이 순환된다는 것, 죽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없으며, 오직 살아서 우리 안에 떠돈다는 것”을 느끼고 ‘밥’ 시리즈를 완성했다.
아울러 그가 감옥에 가기 전에 제작했던 ‘5월 판화’ 연작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홍성담 홍성담, 투쟁속보 1987 28 x 21, 목판화
홍 화백에게는 ‘통일화가’라는 수식어도 붙어있다. 바로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때문이다. 그는 1989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후배들과 함께 갑오농민전쟁부터 통일운동까지 ‘민족해방운동사’를 그렸다. 길이가 77m에 이르는 대형 걸개그림이었다. 그는 이 그림의 슬라이드 필름을 미국 교포단을 통해 북한 평양청년학생축전에 보냈다. ‘이 그림은 남쪽 청년학생들이 그린 반쪽의 근현대사이니 북쪽에서 나머지 짝을 그려 완성하기를 바란다’는 편지도 함께 써넣었다.
이 때문에 그는 그해 7월 31일 간첩 협의로 안기부에 끌려가 알몸으로 고문을 당했다. 무려 25일 동안이었다. 요즘 나온 영화 ‘남영동 1985’를 떠올리면 상황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몇 번이나 “이젠 내가 죽는 구나” 생각하는 순간 다시 살아났고, 계속 고문을 당했다. 그가 고문을 받으면서 “민족과 조국은 배반할 수 있어도 친구는 배반할 수 없다”고 버틴 일화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전설이 됐다. 지금까지 조국의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고문을 참고 견디는 사람은 있었지만 친구의 이름으로 고문을 참고 견디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대법원에서 간첩죄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혐의로 독방에서 3년 4개월을 지냈다. 출감 후 수개월 동안 밥도 삼키지 못하는 위장병에 시달렸고,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증 때문에 두 눈을 부릅떠야 했다. 또 섬 출신이지만 물고문의 기억 때문에 물만 봐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공포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러한 산고 끝에 ‘물속에서 스무날’연작과 ‘식구통’연작을 탄생시켰다. 고문의 흔적이 여과 없이 형상화한 이 작품들을 직접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참으로 겨운 그림”이라고 말한다.
ⓒ홍성담 홍성담, 욕조, 어머니 바다의 푸른바다가 보여요 1996 193 x 123 서양화
홍성담 화백이 최근 ‘박정희 낳은 박근혜’ 그림을 선보였다. 또 박근혜 후보가 인혁당 사건을 사과하는 날 부산에 내려가 말춤을 추는 것을 보고 ‘박근혜 말춤’을 화폭에 담았다. 인간적으로 아닌 듯 싶은 거다. 이 일로 새누리당은 펄쩍펄쩍 뛰며 법적 절차를 밟을 모양이다. 일부 국민들도 미학적 준거나 그림이 내포한 내용보다는 인간과 여성을 비하하고 박근혜 후보를 깎아내린 선동이라고 항의했다. 또 전라도 작가라는 식의 ‘지역주의’로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 화백이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전두환·노태우는 그가 역사의 한복판에서 싸워왔던 적이었고,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또 그와 그의 지인들을 악랄하게 고문하고, 죽이고, 민중을 도탄으로 빠뜨린 독재자였다. 그는 그 맥이 새누리당과 박근혜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한 듯싶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파시즘 독재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새누리당은 홍성담 화백의 그림을 두고, 아니면 그만일 일이다. 예로부터 풍자에는 해학, 익살과 함께 야유와 조소도 있었다. 권력자를 비판하는 그림에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보기에도 민망한 성행위도, 아이 낳는 장면도 많았다. 하물며 그와 민중이 독재정권에 당했던 아픔에 비하면 그의 그림은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 원통한 죗값을 어떻게 다 값을 수 있느냔 말이다.
새누리당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홍성담 화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진 세월을 모두 이겨온 사람이 바로 ‘홍성담’이다.
이동권 기자 su@vop.co.kr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