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11-14일자 기사 '누가 정말 투표시간 연장을 두려워 하는가?'를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

▲ 지난 9월 27일 오전11시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등 노동·시민사회에서 '선거일은 유급공휴일로, 투표는 9시까지'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디어스
2008년 봄 촛불시위가 시작될 무렵으로 기억된다. 청계천 광장에서 시작해 세종로로 흘러 넘친 촛불 행진은 주요 일간지와 여당 내에서 “대의 정치가 사라지고 국회가 없어질 수도 있다”거나 “정치 집회로 변질되어 모든 정책에 이명박 아웃(out)을 외치다 언제라도 반미로 옮겨갈 수 있는” 상황으로 인지되었다.1) 한 마디로 요약하면 “대의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거리의 정치”에 대한 불안에 다름 아니었다.2) 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정치 집회로 옮겨가면 안된다는 ‘과도한 정치의식’에 대한 이들의 경고는 불과 두 달 전 이들이 말했던 또 다른 정치를 떠올리게 했다. 이전 해 63.0%라는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과 46%라는 최악의 총선 투표율을 두고 대부분의 언론들은 ‘정치 혐오증’, ‘정치적 무관심’, ‘정쟁에 지친 실망과 피로감’을 토로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촛불이 꺼진 이후 지금까지 촛불의 정치와 대선의 정치는 왜 달랐고, 무엇 때문에 이런 간극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물음에 적어도 한국의 언론은 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투표
과도한 구분이겠지만 이 두 개의 정치를 제도정치와 그 외부의 정치라고 불러보자. 제도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그 영역과 구성원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선거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거란 송신자인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다양한 메시지를 수신자인 유권자들에게 전달하고, 선거 당일은 다시 유권자들이 송신자가 되어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숫자로 환원되는 표를 던짐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 문제는 이 두 개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실로 다양한 형태와 매체가 동원되는 풍부한 기호의 구성물이지만, 유권자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오직 숫자로만 계산되는 빈약한 기호이기 때문이다. 제도정치의 성패는 어쩌면 이런 비대칭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단순하고 객관적인 기호로 환원된 지지율만을 정권의 존립근거로 삼을 때, 촛불시위와 같은 거리의 정치는 포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외부의 정치이자 불순세력의 음모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2008년 촛불시위가 남긴 유산은 반MB 감정의 유포가 아니라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한 대선과 총선이라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빈곤함일 것이다.
일상의 패턴과 투표방식
한국에서 20여 년 간 대선 뿐 아니라 총선 모두 점점 낮은 투표율을 기록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론조사나 출구조사, 선거 이후의 투표율 분석 등의 기법은 고도로 발전해 왔지만 투표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분석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 한 명의 정당과 제도정치에 대해 복잡다단한 감정이 몇 개의 보기 중 하나의 선택으로 계산되듯, 투표하지 않은 이들은 ‘정치적 무관심’이나 ‘냉소’, ‘혐오’와 같은 몇 개의 단어들로 동어반복되어 왔다. 물론 투표하지 않는/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과 정치가 어떤 연관도 없다고 느끼거나, 투표가 일상의 다른 일들보다 우선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정치와 일상 사이의 간극이 심연처럼 깊지 않은 마당에야 다른 이유로 투표를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지극히 ‘객관적’인 지표를 보자. 최근 발표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비정규직 고용 실태를 보면 2012년 8월 기준 총 1,773만 명의 임금 ‘근로자’ 중 33.3%에 해당하는 591만 명이 비정규직 ‘근로자’이며 이중 70.4%가 30인 미만의 영세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총 스스로도 2004년 이후 지금까지 30인 미만 사업장의 비정규직 비중이 대기업보다 더 커졌다고 보고하고 있다.3) 문제는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에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MB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에서 올해까지 가장 많이 늘어난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파견, 용역, 재택, 일일 노동자인 “비전형” 노동자들로 4년 전 122만 9천 명에서 182만 6천명으로 48.5%로 한시적 노동자나 시간제 노동자보다 8배 가까이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일반적인 통계수치와 경총의 보고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시간이 일정치 않고, 일과시간 중 현재의 투표시간에 투표소에 갈 수 없는 비전형 노동자들과 같은 이들의 규모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단순한 정치 혐오나 냉소라는 단어로 환원할 수 없는 낮은 투표율의 이유를 이처럼 지난 10여 년간 달라져온 고용형태, 차라리 ‘먹고 사는 일상의 패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서 찾는 것은 무리인가? 선거가 실로 중요한 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이라면 이러한 장에 진입할 수 없는 장벽은 일종의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투표시간 연장을 비롯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은 일부 후보들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정쟁”으로 변해버린 투표시간 연장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넓히기 위한 요구로서의 투표시간 연장에 우리의 언론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자. TV 뉴스만을 보면 투표시간 연장이 처음 보도된 시점은 민주통합당이 현행 투표시간을 2시간 더 연장하고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내용으로 새누리당과 중앙선관위에 제안한 9월 중순으로 거슬러 간다. 이후 투표시간 연장은 지상파 3사와 YTN의 보도에서 통합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의 일방적 요구로, 나아가 다른 정치적 공방과 한데 묶여 다뤄져 왔다. 처음 이슈로 제기되었을 때부터 투표시간 연장은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신헌법 평가와 함께 묶여 법제사법위원회의 논란으로,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의 이슈로 한정되었다. 그 이후에도 정수장학회나 NLL 녹취록 존재 유무, 선거보조금 환수와 맞바꾸어야 할 거래 목록으로 묶여 전형적인 ‘정쟁’의 소재로 전락했다. 이는 최근 투표시간 연장을 다룬 뉴스 리포트들의 제목만을 일별해도 알 수 있다.
“투표시간 연장, 공동 대응 희망”(YTN, 10월 28일)“박선숙 본부장, ‘박근혜 후보 투표시간 연장에 동참해야’”, “새누리, ‘투표시간 연장 주장에 정치 의도 있어”(YTN 10월 29일)“여야, ‘투표시간 연장’ ‘정수장학회 강압’ 공방”(KBS 10월 28일)“NLL 대화록 존재 인정 … 투표시간 연장 압박”(KBS 10월 29일)“안측 ‘먹튀방지법’ 수용 존중 … 투표시간 늘려야”(SBS 10월 31일)“여야, 투표시간 연장․여성 대통령 놓고 공방”(SBS 11월 1일)“먹튀․투표시간․여성성 … 정치권 전방위 충돌”(MBC 11월 1일)“새누리 ‘후보단일화 비판’, 민주 ‘투표시간 연장’”(SBS 11월 2일)“야권단일화․투표시간․여성성 … 대선 쟁점 ‘난타전’”(MBC 11월 2일)
투표시간 연장 보도의 문제점은 한 가지 사례만 비교해도 알 수 있다. NLL의 인정여부나 정수장학회 문제는 유권자들에게 어떤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의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는지의 여부는 이런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언론보도는 투표시간 연장을 위와 같이 정치적 쟁점의 문제로 협소화시키며 다른 이슈들과 함께 후보 선택의 기준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투표시간 연장의 주장을 어떤 후보가 하고 있는지, 시간 연장으로 어떤 후보가 더 득을 볼 것인지의 문제틀에만 갇혀있는 꼴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축소하는 우리의 ‘공론장들’
투표시간 연장이나 사전투표제,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주로 근무처)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는 통합선거인명부제 등 투표율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9월 중순 민주통합당의 제안 이전에도 민변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해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언론은 투표시간 연장이 왜 필요한지, 이에 대해 그 당사자인 유권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이 투표율 제고에 정말 효과가 있을지 등에 대한 분석은 전무했다. 오직 유일하게 10월 21일 MBC 시사매거진 2580만이 “투표시간 연장 논란”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집중적으로 다룬 사례만이 있을 뿐이다. 시사매거진 2580의 리포트와 앞서 언급한 뉴스 리포트를 비교해 보면 현재 언론 보도의 수준을 갸늠할 수 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새벽 5시에 일상을 시작하는 건설 노동자, 선거일에도 납품기일에 쫓기는 반월시화공단, 격일로 근무하는 광역버스기사의 일상을 통해 투표시간과 일상을 불일치를 정확하게 포착해 냈다. 여기에 지난 총선의 불참사유 분석, 투표시간 및 투표요건 완화를 시행하고 있는 해외사례 등 “정쟁”이 아닌 범주로 투표시간 연장 이슈를 접근했을 때 어떻게 다른 보도가 가능한지를 보여주었다.
다른 선거도 그렇겠지만 대통령 선거야말로 정치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이다. 비록 건조한 숫자로 환원되는 수량의 커뮤니케이션일지라도 그런 환원으로써 2008년 촛불시위와 같은 ‘광장의 정치’, ‘거리의 정치’가 제도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선거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은 제도정치와 그 외부의 정치 간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을 커녕 오로지 후보 간 이전투구의 소재로 축소함으로써 제도정치의 문제로만 다루고 있다. 중대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을 이른바 공론장이라 자칭하는 언론 스스로가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주요 언론들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조망해야 한다는 기계적 중립성조차 내팽개칠 만큼 중대한 절대절명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최우선의 이해당사자가 되어버린 마당에 높은 투표율은 어쩌면 최악의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투표시간 연장을 바라지 않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정말 새누리당 뿐인가?
1) “국민, 대통령 사이 국회는 없었다”, 2008년 6월 11일 중앙일보 사설, 전진우 칼럼, “누가 촛불을 끄게 할 것인가”, 2008년 6월 14일 동아일보, “이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 2008년 6월 23일 중앙일보 사설.
2) “광장, 그 달콤쌉쌀함에 대해여”, 2008년 6월 14일 조선일보 사설.
3)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는 대선 후보들의 비정규직 축소 공약이 ‘영세기업들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는 대응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사업체 규모로 본 비정규직 고용의 변화 추이와 시사점, 2012.11.
김동원 /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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