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박근혜에게 묻지 못하고, '복심'에게만 묻고 있는 언론의 무능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15일자 기사 '박근혜에게 묻지 못하고, '복심'에게만 묻고 있는 언론의 무능'을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이데올로그의 세상, 이데올로그의 대선

 
▲ 8일 박근혜 후보가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을 마치고 외신기자들과 악수를 하고 잇다. ⓒ뉴스1

말이 많은 대선 국면이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말을 많이 하는 이들이 많은 대선 국면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정치평론가들이 제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를 비롯해 신율, 고성국, 윤창중, 박상헌, 유창선, 전원책에 이르기까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정치 평론가들이 미디어를 종횡무진 중이다.
진중권과 변희재의 토론은 그 백미였다. 기존의 대중 매체에 몸을 싣기보다는 아예 새로 판을 짜 인터넷 생중계를 했다. 그런데, 수많은 이들의 말들이 유령처럼 미디어에 떠다녀도 정작 기억에 남는 말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생식기” 하나 정도가 뇌리에 남을 뿐이다. 양에 비해 영양가는 제로에 가깝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매체환경의 변화만으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종합편성 채널이 제 콘텐츠를 채울 역량이 못되기 때문에 대담 프로그램만으로 시간을 메우고 있다고, 혹은 SNS의 일반화로 이제야말로 말이 주요한 사회적 콘텐츠가 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핵심을 놓친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마(大馬)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대마에게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대마의 말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많은 것은 말이 없는 것의 이면이다. 우리는 자주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음을 감추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대마가 침묵하니 그 침묵을 대신하기 위해 수많은 이데올로그들이 대마의 복심을 자임하며 말을 건넨다. 미디어가 말을 끌어내지 못하니, 미디어는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자신의 무능을 감추고자 한다.
지금의 대선국면에서 보이는 복화술의 향연은 기실 수 년 전부터 예상되어 왔던 바다. MB 정권의 시작과 더불어 기획된 언론 장악과 그에 따른 심층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위축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위축시켰다. 진실이 방기되니 거짓과 추측, 의혹과 공방만이 미디어를 배회할 뿐이다.
MB 정권을 비판하는 가 역설적으로 “가카” 헌정방송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실을 전하지 못하는 미디어, 말을 끌어내지 못하는 미디어에 대한 실망감이 풍선효과를 낳고 로 부풀어 올랐다. 이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말을 떠벌리고 있다. 말에 대한 책임은 나중 일이다. 증명은 없고 주장만 남았다. 정작 말의 진실을 캐고 말을 거르는 언론이 제 책임을 못하니 말은 말을 더하며 수다스러워지고, 수다는 다른 수다로 뒤덮여 빈 수레의 요란한 소음만을 증폭하고 있다.

▲ 네덜란드 언론의 기자 바스 베르베익(Bas Verbeek)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박근혜 후보가 연 서울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 참가한 뒤 자신의 트위터에 "박근혜의 아무 내용 없는 긴 연설을 듣고 있다"며 “그녀는 많은 말을 하지만 한 단어도 구체적인 정책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물론 모든 대마가 묵언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주례 연설은 100회를 넘어 오늘까지 방송중이다. 그 어떤 대통령도 이렇게까지 말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허나, 그 일방적 외침을  말이라 할 수 있을까. 대화를 전제하지 않는 말을 사람의 말이라 할 수 있을까? 말을 말이게끔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반응이다. 청자의 표정, 반응, 질문이 화자의 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말에 내용을 더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미디어가 대마의 말에 어떤 반응을 했던가를 생각하면 절망스럽다. 비단 대통령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지금의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말 또한 마찬가지다. 드물게 대마가 말을 건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말에 살을 더하고 진실을 파헤쳐야 할 언론이 제 책임을 못하고 단순히 중계하는데 자신을 멈추면 말은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그들의 말은 자신들에게 되돌아갈 뿐이며, 단지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려는 영역 표시의 외침 밖에 되지 못한다. 시끄러운 침묵의 순간이다.
“원인이 부재할 때 결과들이 번성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말이다. 원인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정신 병리적 현상이 지속된다는 이야기겠다. 원인을 제대로 밝히는 일이 결과를 한정하고 정리하는 길이다.
이 말은 우리의 대선 정국에도 해당한다. 수많은 말의 향연이 대선 정국을 뒤덮고 있다. 그 자체로 정신 병리학적이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인이, 다시 말해 대마가 직접 말을 하게끔 해야 한다. 혹 회피한다면 이를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을 하지 못하고 못 배길 상황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언론의 역할이 아니던가. 대마가 제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말을 하고, 이에 대해 타자의 반응을 겸허히 수용하며 대화할 수 있을 때, 지금의 이데올로그들의 소음은 일거에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홍성일 /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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