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주간경향 2012-11-13일자 제1000호 기사 '[경제]환율 급락, 대선 이슈로 등장한 ‘토빈세’'를 퍼왔습니다.
ㆍ단기 외환거래에 매기는 금융거래세… 대선 후보들 공약으로 검토
10월 25일 원·달러 환율이 1098.2원에 마감됐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9월 9일 이후 13개월 만이다. 심리적 지지선이던 1100원선이 무너지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월 29일 외환은행 을지로 본점 딜링룸.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연저점을 경신하면서 하락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원화가치가 급등하고 있는 것은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미국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달러화의 유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ATM(자동입출금기)’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외국인 자금 유출입이 자유로운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과도한 변동성을 조절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선을 앞두고 이 같은 문제의식이 가파른 환율 하락 흐름과 접목되면서 토빈세라는 ‘아이템’이 부상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대 제임스 토빈(James Tobin) 교수(2002년 사망)가 1972년 프린스턴대 강연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토빈세가 올해 한국 대선의 쟁점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 투기자금 급격한 유출입 규제방안
토빈세는 국경을 넘나드는 단기 외환거래에 금융거래세를 매기는 것으로, 이것을 제안한 토빈 교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토빈 교수는 당시 외환·채권·파생상품·재정거래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국제 투기자본의 급격한 자금 유출입으로 각국의 통화가 급등락해 통화위기가 촉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방안의 하나로 토빈세를 제안했다. 당초 모든 외환거래에 세금을 매기자는 토빈세의 아이디어는 금융상품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금융거래세로 진화해 왔다.
토빈세 도입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은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에서 토빈세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광두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힘찬경제추진단장은 10월 29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투기성 자금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기존의 여러 가지 장치도 있긴 하지만 추가적으로 지금 전 세계적으로 토빈세 같은 것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해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외환시장에서 환율의 진폭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 경제하는 사람 입장에서 바람직한데, 그 진폭을 매우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투기성 자금”이라며 “투기성 자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규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는 김 단장이 토빈세를 언급한 뒤 “새누리당이 단기 투기성 자금에 세금을 물리는 토빈세를 박근혜 후보의 선거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역시 에서 단기 국제 핫머니 유출입에 대한 토빈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는 토빈세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은 ‘2단계 토빈세’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2단계 토빈세는 파울 베른트 슈판 교수가 1996년 처음 제안한 것으로 ‘슈판세’라고 불리기도 한다. 2단계 토빈세는 쉽게 말해 ‘평시에는 낮은 세율, 위기시에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2004년 벨기에 의회는 2단계 토빈세 도입 법안을 승인하기도 했다. 민 의원의 외환거래세법 제정안을 보면 평시에는 0.02%에 해당하는 저율의 외환거래세를 부과하고, 위기시에 해당하는 환율변동폭이 전일 대비 3%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30%에 해당하는 고율의 외환거래세를 부과한다.
현 정부 들어 도입하려다 흐지부지
국제적으로도 ‘광의의 토빈세’를 적용하는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은 이미 자국의 증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6%의 외환거래세를 부과하고 있고,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연합(EU) 회원국 11개국은 최근 채권, 주식, 파생상품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금융거래세 추진에 합의했다.
현 정부에서도 토빈세 도입이 검토되기도 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지만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대 등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강 전 장관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지금도 은행세(외환건전성부담금)보다는 토빈세가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0년부터 선물환 포지션 규제를 하고 외환건전성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단기 외화자금을 줄이기 위한 규제를 도입했지만, 외부 충격에 따른 급작스러운 자본 유출입에 대한 대비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일각의 지적과 맥이 닿아 있다.
정부는 하지만 토빈세 도입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토빈세의 아이디어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며 “브라질이 이미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고,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해 있지 않다”고 말했다. 토빈세는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추진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한 국가의 일방적 과세에 의해 금융거래가 역외금융시장으로 이동하게 돼 원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토빈세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이 함께 할 때까지 시행을 유보하고 있다.
신제윤 재정부 1차관은 10월 3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해 “(토빈세 도입을) 하게 될 경우 심하게 말하면 국제적인 ‘왕따’ 비슷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해 거시건전성부담금을 도입한 것”이라며 정부가 이미 도입한 선물환 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부담금 등 ‘거시건전성 3종세트’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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