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14일자 기사 '15만 볼트 송전탑 위에서 ‘정몽구 회장’을 찾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미디어 초대석] 이호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법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불법파견 판정 이후 8년, 대법원 판결 2년, 그동안 현대차는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당한 요구를 들고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폭력과 징계,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등 탄압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조합원 한명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두 명의 조합원이 스스로 온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당겼습니다. 20여명의 조합원이 구속을 당했고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중략)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습니다. 더 이상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불법파견 인정! 신규채용 중단! 정몽구 구속의 각오로 고공농성을 이어갈 것입니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병승·천의봉 조합원이 10월17일 밤 현대자동차 중문 앞 송전탑 고공농성을 결행하며 쓴 글이다. 비정규직노동자 대한 차별과 설움, 탄압과 억압, 그리고 10년 비정규직 삶에 대한 트라우마를 확인하게 된다.
세계 자동차업계 5위의 현대자동차는 직접생산공정라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함께 투입해 왔다. 제조업체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파견법을 위반한 것이다. ‘도급이냐 파견이냐’라는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2012년 2월23일,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이라고 최종판결을 내렸다. 8년간의 법적 다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러나 대법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정규직 전환을 이행하라는 정당한 요구와는 달리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법적 책임을 외면하고 법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법판결은 존중한다면서도 ‘인정’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렇게 나온 것이 기만적인 3000명 신규채용안이다. 이는 ‘정규직 전환’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것으로 대법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법 위에 군림하는 현대자동차를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을까?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이 지난 17일 오후 9시부터 현대차 울산공장의 송전철탑 20m 지점에 밧줄로 몸을 묶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불법파견 인정-정규직 전환 실시, 정몽구 회장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등의 단체는 오는 26일 울산 현대차공장에 집결해 연대투쟁할 것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이러한 현대자동차의 행태에는 정부와 검찰의 수수방관도 한 몫하고 있다. 2004년 노동부는 불법파견 진정 사건에 대해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9234개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2006년 현대차에 대해서 ‘불법파견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판결을 계기로 2010년 9월 금속노조는 재차 정몽구 회장 등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불법 하청업체에 대한 폐쇄 진정을 접수한 바 있다. 그리고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누구도 불법파견으로 처벌받았다는 소식도 없다.
불법에 항의해 싸웠던 노동자에게는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불법을 자행한 현대자동차는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현실이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 법치와 정의구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언론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보수언론은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부추기는 태도를 취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연봉문제를 거론하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올 대선의 최대 의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다. 성장 중심·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등으로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해결책이 시급하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이 현안인 비정규직 대책,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확대 등을 공히 약속하고는 있지만 궁극적 해법보다는 단기적 대증요법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거 독재정권에 항거해 정치민주화를 이루었던 역사가 있었다면, 경제민주화는 바로 90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 객체화의 구조적 해결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문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업뿐 아니라 공공, 금융, 병원, 서비스산업에서 용역, 외주, 도급의 다양한 고용형태로 종사하는 비정규노동자가 있다. 2~3차 하청까지 100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위장·불법적 도급으로 고용되어 착취의 사슬에 얽혀있는 실정이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하청인생, 차별인생의 소외와 박탈감을 해소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인정을 외치는 철탑농성자의 피맺힌 절규에 있다. 사내하청문제는 현대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호·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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