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원전 취재버스 내 방사선량 도쿄의 2만배…“문명사적 재앙”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14일자 기사 '원전 취재버스 내 방사선량 도쿄의 2만배…“문명사적 재앙”'을 퍼왔습니다.

ㆍ후쿠시마 원전 사고 1년7개월, 현장을 가다

주일 한국특파원들이 사고가 난 지 1년7개월 만에 처음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현장을 취재했다. 원전 부지 곳곳은 치명적 고방사선으로 접근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산재했고, 원전 부지를 도는 취재버스 내부의 방사선량만 도쿄의 2만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원자로 냉각을 위해 ‘밑빠진 독 물붓기’식으로 매일 불어나는 오염수도 처리가 사실상 난망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에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문명사적 재해임을 절감케 했다.

지난 12일 오전 8시 도쿄에서 약 220㎞ 떨어진 후쿠시마 J빌리지. 한국특파원 5명을 포함한 한·일 취재진 45명은 방진복과 장갑 세겹, 신발에 두겹의 커버, 머리 두건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취재버스를 타고 20㎞ 떨어진 원전으로 향했다. 원전 주변 20㎞권 안쪽 마을은 건물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상태 그대로인 ‘유령 마을’이었다. 2년째 농사를 짓지 못한 논과 밭에는 양미역취의 노란색 꽃이 가득했다. 

일본 도쿄전력 직원들이 지난 12일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건물 안 사용후 연료 저장조에 보관 중인 연료봉을 회수하기 위한 준비공사를 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 후쿠시마공동취재단

▲ 수치 치솟자 취재진 당황1·2호기 사이 고방사선잠시만 노출돼도 치사량

▲ 주변엔 무너진 ‘유령마을’방치된 논·밭엔 들꽃 가득“갈 길 멀지만 힘낼 수밖에”

원전이 가까워지면서 도쿄전력 직원이 손에 든 휴대용 방사선량계가 시간당 6마이크로시버트(μ㏜)를 가리키자 일반 마스크 대신 방독마스크를 착용했다. 오전 10시21분쯤 원전에 도착해 정문을 지나 바다 쪽으로 향하자 원자로 1∼4호기가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1호기 건물은 지붕에 대형 커버를 뒤집어 씌워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출입구 펜스는 뒤틀려 있고, 2호기 옆에는 쓰나미로 뒤집힌 차량이 보였다. 방사선량 수치는 시간당 100μ㏜로 올라갔다. 1, 2호기 사이에는 ‘접근금지’ 표지판이 있었다. 지난해 8∼9월 10시버트(1㏜=1000만μ㏜)가 측정된 곳이다. 10㏜이면 잠시 노출돼도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버스 내부의 방사선량도 점차 상승했다. 3호기 주변에서 시간당 300μ㏜를 가리킨 측정기가 4호기에 접근할 때쯤 1000μ㏜로 급상승하자 취재진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의 1만배, 도쿄의 2만배다. 취재진은 시간당 방사선량이 95∼200μ㏜인 곳을 골라서 10분간 차 밖으로 나갔다. 폭발로 지붕이 날아갔고, 외벽 곳곳에 구멍이 뚫린 4호기에서는 내년말부터 건물 위쪽 저장수조에 보관된 연료봉을 회수하기 위한 준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크레인을 타고 작업 중인 근로자들과 그 부근에 ‘마음을 하나로! 힘내라 후쿠시마’라는 플래카드가 인상적이었다. 4호기 부근엔 지난 8월에 꺼냈다는 지름 10m짜리 노란색 격납 용기 뚜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처음으로 공개된 1, 2호기 정면 쪽 방사선량은 시간당 800∼900μ㏜였다. 도쿄전력 직원은 장소에 따라 방사선량이 다른 이유를 “지금은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게 아니라 건물 잔해에서 방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안에는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와 금속잔해, 목재 더미가 흩어져 있다. 지난 2월 이후 증가세는 멈췄지만 지금도 시간당 약 1000만 베크렐(㏃)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고 있다. 

언덕 위쪽 너머 넓은 평지에는 오염수 정화장치들이 건설 중이었다. 지난해 사고로 연료가 멜트다운(노심용해)되며 원자로에 구멍이 뚫린 상태이지만 연료냉각을 위해 냉각수를 끊임없이 부어야 한다. 하루 450t씩 생겨나 20만t에 달하는 오염수는 처리할 길이 막막하다. 도쿄전력 측은 현재 22만t의 저장탱크 용량을 70만t으로 늘리고, 방사성 물질을 두 차례에 걸쳐 거른 뒤 바다에 방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현지에선 세슘 이외 스트론튬 등 62종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다핵종 제거장치’를 최종 점검 중이었다. 하지만 2차 정화를 한다고 해도 바다로 방류할 경우 어민들의 반발이 불보듯 하다.

사고수습 본부가 있는 면진중요동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창문이 모두 철판으로 막힌 건물 내부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0.01μ㏜로 도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벽에는 국내외에서 온 각종 격려편지와 종이학을 붙여 뒀다. 도쿄전력 직원은 “국내외에서 온 격려편지를 읽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2시간30분간의 취재를 마치고 원전 밖으로 나간 것은 오후 1시51분. 버스를 타고 J빌리지로 돌아가서 확인한 누적 피폭량은 52∼58μ㏜였지만 방사능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도쿄로 돌아가는 취재진들의 뇌리에는 4호기 벽에 뚫린 구멍과 원전주변 ‘유령마을’의 노란 양미역취 꽃, “갈 길은 멀지만 힘을 낼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도쿄전력 직원의 말이 맴돌았다.

후쿠시마 제1원전 | 후쿠시마공동취재단·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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