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1일 금요일

[기고]곽노현 사건, 헌재는 결정 미루고 대법원은 선고 강행하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21일자 기사 '[기고]곽노현 사건, 헌재는 결정 미루고 대법원은 선고 강행하나'을 퍼왔습니다.
위헌이면 어쩌려고...헌재와 대법이 솔로몬의 지혜 찾아야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강일원, 안창호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지난 20일 정식 임명 절차를 거쳐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했다. 이로써 지난 달 대법관에 이어 헌법재판관까지 임명이 완성되어 우리 헌법의 최고 수호기관들의 진용이 확정되었다.

담당 대법관의 교체 등의 이유로 법정 선고 기한인 3개월을 넘긴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은 27일 선고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곽 교육감은 2011년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사후 매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사후매수죄라는 조항 자체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고, 일본을 제외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조항이라서 당연히 판례도 없고, 참고할 만한 사건도 없는 상황이므로 판단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1심에서도 거의 매일 재판을 하다시피 할 정도로 집중심리를 통하여 재판을 진행했고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결국 1, 2심 재판부는 사실관계에 있어서는 곽노현 교육감이 사전에 돈을 주기로 하고 후보를 매수하였다는 검찰과 보수언론의 사전 매수 주장 또는 사퇴 대가 금품 수수 등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법리적인 면에서는 사후매수죄를 적용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 곽노현 교육감 사건 27일 선고 예정, 헌법재판소는 뭐하나?

1, 2심에서 모두 유죄가 선고된 상황에서 2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다면 곽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잃게 되고, 대통령 선거일인 12월 19일 재선거가 실시된다. 반대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되거나 판결이 연기된다면 곽 교육감은 교육감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선고 기일에 변론을 재개하거나 선고기일을 연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곽교육감은 2011년 11월 공직선거법 제232조제1항제2호 사후매수에 대해서 지난 1월27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곽 교육감은 "후보자 사후매수죄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32조제1항제2호는 위헌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으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뒤 선고를 해달라"는 내용의 '선고기일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반면 검찰은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제270조에 따라 전심 판결이 있는 날로부터 각 3개월 이내에 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서둘러서 선고해 달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검찰측 주장대로 공직선거법에 의한 이 사건의 대법원 선고 시한은 2심으로부터 3개월 뒤인 7월 17일이므로 기일을 도과한 것이 맞다. 그래서 검찰의 주장이 억지는 아니다. 그러나 3개월 선고 기한이 강제력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선고 기일 자체가 재판부의 권한이라는 점, 중간에 대법관이 무더기로 교체되어 새로운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선고가 늦어진 측면, 이보다 더 오래 걸리는 사건도 많다는 점 등에서 대법원만 탓할 상황도 아니다.

주목해야 할 법정기한은 또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 선고 기한 180일이다. 헌법에 의해 설립된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 관한 법률인 헌법재판소법 제38조(심판기간)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헌법재판소 미결정 사건 목록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선고를 하지 않고 미루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오랫 동안 미루고 있는 사건은 2007년 10월에 제기된 사립학교법의 개방이사와 임시이사 파견 등에 대한 위헌법률 헌법소원 사건인데 (2012년 9월 말 기준) 1,800일에 가까워 법정시한의 10배에 이르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직무유기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곽노현 교육감이 1월 27일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니 선고기일은 최대 7월 26일이다. 그러니까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해서 법정 선고 기한을 60일 가까이 초과한 상태이다. 법의 최후의 보루라는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선고 기한 역시 대법원의 3개월 선고 기한처럼 강제규정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법 제30조는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은 서면심리에 의한다고 정함과 동시에 필요한 경우 공개변론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곽 교육감측은 이 사건 서면을 1월에 제출한 바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은 단 한번도 하지 않고 9개월째 서면검토 중이다.

그러니까 이 사건과 관련하여 현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모두 법정 선고 기한을 넘긴 상태이지만 그래도 헌법재판소가 대법원보다 3개월 정도 더 오래 이 사건을 검토했다는 의미이다. 헌법재판소 연구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검토가 끝난 상태이며 위헌 의견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작 시급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대법원 선고 기한 3개월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선고 기한 180일로 보인다. 사립학교법처럼 이번 사후매수죄 헌법소원 사건도 정치적으로 골치 아픈 사건이니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헌법재판소가 책임을 미루는 꼴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대법 선고 후 헌재가 위헌 선고하면 패닉 온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모두 우리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하는 최고의 헌법기관으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만약 유죄선고를 한 이후에 만약 헌법재판소가 위헌 선고를 한다면 교육감 2명이 서로 자신이 교육감이라고 우기는, 우리 역사상 초유의 패닉 상태가 올 수도 있다. 

대법원이 유죄선고를 내리면 곽교육감의 당선은 무효가 되며, 부교육감 직무대행을 거쳐 12월 19일에 재선거를 통해 새 교육감이 선출된다. 

그런데, 헌재가 이 사건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헌법과 헌법재판소법 제47조(위헌결정의 효력) 등에 의해서 법원과 국가기관은 반드시 그 결정을 따라야 하며, 형벌에 대한 조항(공직선거법의 처벌 조항도 해당)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며, 이미 유죄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재심을 통하여 다시 재판을 해야 한다.

즉,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지면 곽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선고는 무효가 되고, 동시에 당선무효도 무효가 된다. 그렇다고 선거에 의해 새로 뽑힌 교육감 당선까지 무효가 되고 곽 교육감이 즉시 교육감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감이 두 명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유죄가 확정된 경우 근거 조항이 위헌판결을 받았다고 당연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곽교육감도 재심을 청구하여 재판을 다시 받아야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를 받아야 한다. 이 기간만 해도 상당히 걸릴 것이다. 

최근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무효 소송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복귀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런 상황이 오면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재선거를 통해 뽑힌 교육감은 뭐가 되고, 돌아온 곽 교육감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새 교육감이 한 정책은 어떻게 되고, 곽 교육감이 물러나 실시하지 못했던 정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교육감을 하지 못했던 시간만큼 교육감 임기를 연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승빈 기자 곽노현 교육감이 서울시교육청 강당에서 5.14 서울교육의 희망을 위한 약속 서울 교육 희망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최고 헌법수호 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지혜 모아야

대법원 선고 후 헌재 위헌 선고로 벌어질 사태는 곽노현 교육감, 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불행일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법에 따라 위헌여부에 대한 결정을 먼저 하면 되는데, 굳이 대법원이 먼저 선고를 하여 이런 패닉 사태를 초래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쉽지 않다.

헌법과 법률의 최고 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 사실 현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관계가 별로 좋지 못하다. 

지난 6월 대법원이 GS칼텍스 등이 제기한 조세감면규제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유죄판결을 정면으로 뒤집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위의 상급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냐.”, “3심제라는 우리나라 재판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등 불만이 쏟아져 불편한 관계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모두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한 독립된 사법기관으로 각자의 역할이 있지만 헌법의 최고 수호기관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두 기관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가진 수평적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안 그래도 틀어져 있는 두 기관의 관계가 곽교육감이 재기한 공직선거법 사후매수죄 위헌 결정으로 최악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 두 기관이 이렇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사법부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교육계뿐 아니라 사법부, 최고 헌법수호 기관 사이의 최악의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 두 기관의 조화와 상호협조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대법관도 새로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새롭게 임명되어 이제 두 최고기관의 진용이 완성되었으니 최소한의 공식적 협의를 하면 될 것 같다. 두 기관이 만나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가 최대한 빨리 결정할 것이니 대법원 선고 기간을 조금만 미루자고 협의하면 된다. 

헌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게 ‘정치적’이라는 수사(修辭)만큼 치욕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대법원에게 가장 ‘정치적’인 것은 눈치를 보느라 헌법재판소 결정 이전에 선고를 서두르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게 가장 ‘정치적’인 것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결정을 계속 미루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법정 선고 기간인 180일을 두달이나 넘기면서 9개월 동안 검토해온 결과에 따라 위헌여부에 대한 선고를 하거나 필요하면 공개변론을 하면 된다. 얼마 걸리지도 않을 것이니 대법원은 헌재 결정까지 딱 그만큼만 선고를 미루기로 하면 조화롭게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이 이 상황에서 발휘될 수 있는 최고의 솔로몬의 지혜로 보인다. 또한 이것이 최근 인혁당 사건에서처럼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김행수 전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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