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08-24일자 기사 '노다의 외교 도박? '베팅'은 이명박이 먼저!'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이명박 독도 방문 이후 극우파가 득세한 살풍경
한일 관계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외교관의 대사관 출입을 막았고,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이 보낸 외교 문서를 아예 ‘등기우편’으로 돌려보냈다. 23일 하루 동안 양국 정부는 서로의 처사가 외교적 관례에 어긋난다며 날 선 비방전을 벌였다.

▲ 24일자 중앙일보 1면.
이에 24일자 중앙일보는 1면 헤드라인을 ‘지지율 최악 노다의 외교 도박’이라고 뽑았다. 이 기사에서 중앙은 “수교국 간에 문서 반송을 거부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러한 강경 대응의 배경으로 “총선을 염두에 둔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총리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19%)을 기록하고 있는 노다 총리가 이 정치적 난국을 타개할 새 동력으로 독도를 활용하고 있단 지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라면 독도 방문 직전 18%의 지지율로 사상 최악의 상황에 몰렸던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가 먼저 지적됐어야 옳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분명했는데, 이런 공세적 행위의 배경에는 ‘정국 전환을 염두해 둔 전략적 포석’이 분명 깔려있었을 것이다. 불과 4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뚜렷한 실적을 남기지 못한 채 측근 비리로 휘청거리던 상황에서 정권 재창출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독도가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가 먼저 지적됐어야 한다.
침략과 전쟁범죄에 관한 일본의 거듭된 망언에 넌덜머리를 내던 한국 언론은 상황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를 따져 묻지 못한 채 ‘관망’하고 있다. 내심 속 시원해하는 심리와 함께 모든 비난을 일본을 향해 작렬시키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오랜 경제 침체로 사회 전체의 활력이 떨어져있는 일본 역시 노다 총리의 박력 있는 영토 공세에 ‘전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그동안은 극우 매체인 만 쓰던 ‘시마네현 다케시마’라는 표기는 이제 거의 모든 일본 언론으로 퍼졌다고 한다. “중·고교 교과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교육해온 것의 몇십배에 이르는 선전효과”가 며칠 사이에 발생한 셈이다.
일본의 유명한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풍경이 기원을 은폐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곧 끈 떨어질 한일 양국 정치권력이 난데없이 ‘살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풍경의 저변에는 ‘우리 땅 독도를 저들이 가지려고 한다’는 오랜 충격과 환멸이 깔려 있다. 한국 정부는 벌써 수년 도 더 된 문제인 일본의 외교청서와 방위백서의 독도 관련 표현을 이제와 근거로 들이대며, ‘일왕의 사과’를 요구했다. 전격적인 독도 방문 이후 대통령은 ‘기적’처럼 다시 언론의 중심에 섰고, 측근들이 감옥에 간 사실은 잊혀 졌고, 끝 모르게 추락하던 지지율은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허를 찔린 일본 정부는 그러나 곧 전열을 가다듬고 전방위적 총공세에 나섰다.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가 바로 현실의 이슈가 됐고, 일왕 발언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의 ‘사과와 발언 취소’가 공식화됐다. 통화 스와프를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는 말을 흘리며 압박해왔고, 정권이 바뀌어도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엄포가 등장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라며 '일왕의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연합뉴스
언론의 몫은 누가 뭐래도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기원을 단속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난데없는 살풍경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언론이 한일 관계가 왜 막장으로 치닫기 시작했는지, 그 현재적 발발의 기원을 찾아내지 못하고 통념적인 기억에 매달릴 때, 당장의 정치적 책임 소재는 모호해지고, 정치적 필요에 의해 탄생된 증오의 정국은 강건해진다.
독도 문제를 계기로 한일 양국에서 모두 극우파의 논리가 보편화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사회가 극우 논리로 묶어지는 것은 파시즘의 전조적 양상이다. 문제의 기원을 일본의 침략으로 까지 거슬러 오르지 않는다면, 독도 문제에 관한 우리는 밑질 것이 없다. 실효적 지배가 확실한 상황에서 일본이 제 아무리 독도를 ‘시마네현 다케시마’라고 부른 들, 일본이 독도를 빼앗아갈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독도에 대한 분노가 허구적인 것인데 비해 그러나 괜한 흥분이 불러올 파국은 현실의 문제다. 우리가 독도 문제를 떠들수록 역설적으로 일본 내 극우파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역설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 역설을 즐기는 이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야 이 난데 없는 살풍경의 기원이 보인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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