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08-25일자 기사 '이명박·박근혜 여권 투톱 4개월간 ‘불안한 동거’ 시작됐다'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 때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는 대선 정국의 핵심 관찰 포인트 중 하나다. 여권 대선 후보와 현직 대통령의 관계는 여당의 대선 전략을 볼 수 있는 한 축이자 여야 간 선거 판세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현재로선 정치가 아닌 정책을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박 후보의 전략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지만 남은 4개월간의 변수도 적지 않다.
지난 5년간 이 대통령과 박 후보는 협력과 갈등을 반복했다. 두 사람은 대선 직후인 2008년 18대 총선 공천,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문제 등으로 현안마다 아슬아슬한 충돌을 계속했다. 박 후보는 ‘친박 학살’로 일컬어지는 18대 총선 공천 직후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이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이 대통령도 2010년 2월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강도론’으로 세종시 계획 수정에 반대하는 박 후보를 비판했다.
두 사람은 그러면서도 갈등의 수위는 조절해왔다. 박 후보가 두 차례에 걸쳐 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외교 행보에 나선 게 대표적인 예다. 2010년 8월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회동을 갖고 “이명박 정권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고 합의했고 이후 큰 틀에서 동행한다는 쪽으로 관계를 설정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 필요성이 부각됐던 지난 4·11 총선을 전후한 박 후보의 대응은 이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구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갈등18대 공천 ‘친박 학살’, 세종시 수정 싸고 ‘강도론’지난 5년간 현안마다 아슬아슬한 충돌 계속
■ 협력박 후보, MB 특사로 두 차례에 걸쳐 외교 행보2010년 청와대 회동서 ‘정권 재창출 노력’ 합의
■ ?정책 차별화·세력교체 등 앞으로 돌발변수 많아충돌 피하려 하겠지만 불신 증폭 땐 고비 올 수도
올 초 친박근혜(친박) 진영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 탈당론이 제기됐지만 박 후보는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박 후보는 지난 3월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통령 탈당이 해법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틀 후 한 토론회에서 박 후보에 대해 “그만한 정치인이 몇 사람 없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박 후보는 대통령과의 정치적 갈등은 최대한 피했지만 정책에서는 차별화를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1월 정당대표 연설에서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데 국가의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MB노믹스(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박 후보 측은 정부의 추가감세 노력을 무산시켰고, 인천공항·고속철도 민영화에도 제동을 걸었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며 정책의 ‘좌클릭’을 시도했다. 더불어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 대해서는 국정조사와 특검을 수용하겠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는 역대 여당 후보와 대통령의 관계 유형들과도 다르다. 극단적 대결로 치달아 정권연장에 실패했던 ‘김영삼·이회창 모델’은 피했고, 여당 후보가 현직 대통령의 공과를 모두 안고 가겠다고 선언하면서 비교적 순탄한 승계가 이뤄졌던 ‘김대중·노무현 모델’과도 다르다.
박 후보 측의 전략은 현재까지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박 후보에 대한 비토로 연결시키려는 야당의 ‘이명박근혜’라는 비판은 크게 먹히지 않았다. 또 지난 6월 중순 실시된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62.7%의 유권자 중 24.7%는 야당 후보가 아닌 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MB’ 유권자 중 상당수를 자신의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셈이다.
박 후보 측은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친박 고위 관계자는 “정책적인 면에서는 차별화가 불가피하지만 정치는 같이 가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당적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대통령 역시 박 후보와의 충돌은 피하려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박 후보 측의 정부 정책 뒤집기에 대한 비판을 아끼면서 추락한 국정 지지율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정권 재창출’이란 공식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후보가 여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또 한번의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4개월의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정치적 갈등으로 터져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야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고 정권심판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 박 후보 측도 ‘대통령 디스카운트’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양 진영에는 “함께 갈 수 없다”는 강경파들이 존재한다. 친박 일각에서 돈 공천 파문은 청와대의 작품이란 음모론을 제기했던 것은 ‘불안한 동거’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한 친박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안철수는 안되고 반드시 박근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박 후보가 야권 후보에게 10% 격차로 뒤지게 되면 이 대통령이 딴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 대통령이 박 후보가 아닌 다른 세력을 밀 수도 있다는 의심이자 불안감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남은 기간 두 사람의 관계를 결정할 핵심 변수는 박 후보의 순항 여부다. 박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도 현재의 우위를 유지한다면 정치적 충돌은 피하면서 정책적 차별화를 추진하는 현재와 같은 여유를 유지할 수 있다.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다른 후보를 지지할지도 모른다는 박 후보 측의 의심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하지만 야당 후보에게 뒤지거나 박빙의 전투를 하게 된다면 양측 관계는 충돌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박 후보 진영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탈당 요구 등을 통해 이 대통령과의 갈등을 전면화하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박 후보 측이 추진하는 정책적 차별화의 수위도 문제다. 박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돈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그림자처럼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권력의 그림자로만 있으라는 요구다. 하지만 여당 주자에게서 지난 5년의 정책을 통째로 부정당한다면 이 대통령도 가만히 앉아있기는 어렵다. 특검 등 돌발 변수가 불거질 수도 있다. 박 후보는 대선 후보 당선 직후 야당의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특검 요구를 받아들였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도 합의를 했다. 남은 기간 이 대통령 주변에서 또 다른 스캔들이 터져나온다면 박 후보 진영도 ‘MB 때리기’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박영환·임지선 기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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