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07일자 기사 '방송 직전 3주간 끌려다녔다'를 퍼왔습니다.
프레스바이플이 만난 사람-삼성 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②
김성환 노조위원장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노조사무실에 얼마전 삼성화재에 재직중 노조 설립과 관련해 해고되었다는 한용기 책임이 들어왔다. 땀에 전 얼굴에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삼성화재에 재직중이었던 지난 2009년 하반기, 한씨는 사내에서 발생한 불합리한 일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며 문제 제기를 했다"며 말을 시작했다.

▲ 김성환 일반노조위원장이 서초경찰서에 장보공개청구하여 입수한 "2011년-2012년 삼성전자 본관 주변 집회보고서", 이에 따르면 2011년 ~ 현재까지 사측이 신고한 집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한씨는 "정치권이 복수노조 유예기한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회사 안에서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관심을 두면, 해고를 각오해야 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라며, "결국 문제 제기를 사측이 수용하지 않았고, 나아가 자신을 징계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하자, 해당 사안을 MBC (휴 플러스)에 제보하게 되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2010년 3월 방송 직전에, 구조조정본부 출신 김모 상무와 공모 부장과 동행하여 강화 석모도, 용평, 제주 등지를 돌아다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본사 직원들이 내 집을 둘러싸고 있었고, 미행과 감시도 했다."며 "어쩔 수 없는 동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인사부서에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지역대책위 김모 부장을 통해 부사장에게까지 전달된 명함이 해고 처분의 도화선이 되었다"라고 밝혔다.
http://www.youtube.com/watch?v=u11mfclnFfs&feature=player_embedded
한용기 책임 인터뷰
저는 삼성화재에 근무했다. 삼성 같은 경우, 무노조 경영을 가치관으로 삼고 있다. 초헌법적인 일이다.결국, 삼성은 노조가 없어서 회사 내에서 불합리한 일이 발생 해도 전혀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다, 물론 '직장인협의회'가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삼성화재에서도 불합리한 일이 발생해서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문제 제기를 했다. 주변에서도 회사에서 발생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회사에서 도무지 수용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없으니 대응이 안되는구나
저는 결국, "노동조합이 없으니 이런 불합리한 일이 발생해도 대응이 안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제가 민주노총에 가서 자문도 받고, 교육도 받으면서 "삼성에 노동조합이 건설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2009년 하반기였다.
그때 당시 2009년 12월 31일 복수노조 유예기한이 끝난다는 사실 때문에 삼성에서의 노조 건설은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있었다. 저는 2009년 하반기 민주노총을 찾아가 노조 관련해서 구체적인 사항들을 여쭈어 보았다. 아직은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였지만, 확인해 보니, 삼성화재에는 이미 1987년도 안국화재 시절에 유령노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때는 노동운동이 봇물처럼 일고 있었을 때니까, 당시 안국화재에서도 몇몇 사람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었다 보다. 그런 노조 건설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이후 안국화재는 노조 설립을 좌절당하고, 회사 측과 다툼을 계속했다. 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이들은 그 해 말에 유예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복수노조 유예기한을 연장했다. 회사 안에서 노동자가 노조에 관심을 두면,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
그런 과정의 연장선에서 제가 노조로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풀어 보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복수노조가 다시 1년 6개월 유예되면서, 회사는 저에 대해 2010년도 초, 부산으로 강제발령을 냈고,왕따 근무를 시켰다. 이어 이번처럼 말도 안 되는 사유를 만들어 징계위원회에 넘겼다. 2010년 2월에 징계를 받았다.
삼성화재나 삼성그룹 자체가 국가기관을 관리하면서 아주 비리를 많이 저지른다. 그런 점을 저도 알고 있고, 우리 부서에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에 징계를 받고, 2010년 하반기에 다시 나를 징계하기 위해 또 말도 안 되는 사유를 붙였다. 상사 폭언, 동료 폭언 등 이런 것들이 그들이 만든 징계의 사유였다.
결국 공익제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민주노총 산별 노조에 가입했다. 회사가 그것까지 알게 되면서 바로 해고가 논의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해고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러면 문제가 되는 사항들에 대해 내부고발이라도 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국민이 많이 있으니까. 그래서 참여연대에 가서 자문하고, 민주노총이 도와줘서 3월 18일, MBC (휴 플러스)에 제보를 해서 내부고발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방송 나가기 전, 3주 동안 저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회사 측에서 저희 집을 삥 둘러싸고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회사에서는 저를 찾아와 회유했다.
"제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니 집 주위를 감시하고, 미행하는 사람들을 빼라"라며 사측에 요구했다. 사측에서는 본사 직원들을 배치해 내가 사는 집 주변을 둘러싸고,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사측에서는 "방송이 나가면 줄기사가 난다. 또한, 재차 취재를 요청하는 언론사가 생긴다."라며, 또한 "기존 방송을 최대한 막아보고, 그다음에 줄기사를 다 막고, 일간 신문 등 다 막고, 그리고 취재 요청 들어오는 것을 다 막고, 그래야 하기 때문에 너는 나를 따라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3주 정도 끌려다녔다.
그러면서 회사가 회유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 자신이 감시와 미행을 당하는 처지이었으므로, 또 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여서, 회사에서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이 일을 다 덮고,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내 아내에게까지 약속한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 “따라가면 안 된다.”라며,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나를 만류했다. 물론 나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 자신이 이미 미행과 감시를 당하고 있었고, 집 주변을 삼성 직원들이 다 둘러싸고 있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회사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3주간 끌려다니다 돌아오자, 회사에서 곧바로 징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회사의 명예실추였다. 또한, 다른 노동자들이 보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조직관리가 안 된다고 했다. 난 받아들였다.
회사는 서울에 있으면 안 된다. 그냥 징계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제가 노조운동에 대해 회사 안에서 공론화했다는 것을 수도권 쪽에서는 많이 알고 있었고, 그에 동의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회사 측은 갑자기 저를 부산으로 발령했다. "일단 이놈을 또 놔두면 노조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중이 있었을 것이다.
부산에서의 생활에서 더욱 큰 위기감을 느꼈다
부산에서도 말도 못하게 탄압을 당했다. 생활 자체에서 왕따에다가, 거의 동향 파악 다 하고, 사택에서도 다른 노동자들이 감시하고, 사측은 개인 시간이 없이 없을 정도로 술자리를 계속 만들었다. 그런 상태였다. 그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회사와의 대화 과정에서 작년에는 서울 발령에 대해 언급을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것도 안 되겠는지, 결국 서울 발령을 뭉개버렸다.
매우 큰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김성환)노조위원장께 도움을 요청했다. 회사 측에서 해고 절차로 가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과정에서 위원장님 만나고, 서로 노동조합 건설에 대해 논의했다. 또한, 계열사 노조원들과 만나 교감했다. 언젠가는 삼성 지역대책위에 있던 전직 인사 차장, 최주성이라는 사람이 우리 노조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부산에서 노조위원장과 세 명이 만났다. 최 차장의 말을 들으니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심각했다. 어쩌면 내가 당하고 있는 것처럼 또 다른 계열사에서도 탄압이 있을 수 있으며, 이를 공론화 하자는 차원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며 명함을 주었다.
그는 우리가 건넨 명함을 삼성SDI 상무에게 주었고, 이후 미래전략실을 통해 부사장에게 전달되었다. 결국, 숨을 쉴 수 없는 탄압을 당하게 되었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저녁이 되면 어떻게든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 때문에 나의 건강도 상당히 악화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회사에서는 폭언 등 개인의 사적인 내용, 결국 폭행 자작극을 만들어 이를 구실로 나를 해고했다.
제가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보면 회사에서 노조를 탄압하는 행태가 거의 똑같았다.
나를 3주 동안 끌고 다닌 사람들
MBC (휴 플러스)는 2010년 3월 18일 방송 예정이었다. 3월 8일 ~ 9일경부터 시작한 것 같다. 그 당시 구조조정본부 출신의 김모 상무라고 있었다. 지금도 재직 중이다. 그분이 나를 끌고 다녔다. 1주일 동안은 그분이 끌고 다니고, 2주는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분이었던, 공모 부장과 함께 다녔다. 공모 부장은 아직도 재직 중이다. 그들은 강화도 석모도를 데려갔다. 멀리 데려가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내가 끝까지 만류하며, 절대 경기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강화로 장소를 잡은 것으로 안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불안하니, 강원도 평창에 있는 보강 휘닉스파크(계열분리가 되었지만, 삼성 계열이었기 때문에)로 장소를 옮겼다. 나는 그곳에서 9일 정도 있다가, 용평과 제주로 이동했다.
협박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지만, 회유는 계속 있었다. "내가 있는 동안 지켜주겠다. 나는 구조조정본부 출신이다. 다른 상무들과 다르다. 절대 너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 일단 당시 자체에는 감시자들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도망가기도 어려웠는데, 한번 도망도 갔었다. 그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일이 잘되어가는데 못 참고 왜 가느냐?"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직접적인 탄압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부 감시체제
일반인들은 "두 명이면 노조를 만들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노무관리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현재 삼성 노동자들은 서로 감시하는 그런 체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희 보상부서는 노사관리하는 차장 같은 사람들이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그 옆에서 동료- 문제성 있는 동료가 발견되면 그 주변 노동자에 의해 감시된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서로 감시하게 된다. 회사는 사내통신이나 메일이나 메신저 등은 모두 관찰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소통할 수 있는 통신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리고 계열사마다 다르지만, 저희 휴대전화기들은 모두 회사 휴대전화기다. 자체적으로 위치추적이 되고 있다. 예전에 회사 휴대전화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니, 사측은 회사 휴대전화기를 강제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개인 휴대전화기를 별도로 한 대 더 사용했다. 회사 휴대전화기는 퇴근하자마자 꺼버리고, 현재 삼성에서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노조를 결성할 수 없다. 노조의 설립에는 일정 수준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그 준비 기간에 싹 다, 생각지도 못하게 사측에 소식이 들어간다. 들어가면 노조의 핵심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징계를 하고, 해고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회유하고 협박하며, 다 찢어놓고 있다.
이경직 기자 | mp97@naver.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