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8-21일자 기사 '민주당, 19년전 '장준하 보고서' 공개'를 퍼왔습니다.
당시 검안보고서 "가격에 의한 두부골절, 의문의 주사자국"
민주통합당은 21일 고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검안의의 증언을 청취한 1993년 진상조사보고서를 재공개하며 거듭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촉구했다.
유기홍 원내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시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며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당시 검안했던 의사로부터 직접 증언을 청취했는데, 추락 실족사가 아닌 원형에 인공물체에 의한 두부골절이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광옥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는 약사봉 현장답사를 비롯해 유일한 사고 목격자인 김용환, 호림산악회 회장 김용덕, 동아방송 기자, 의정부지청 검사, 법의학자 문국진 박사를 대상활동을 벌였다. 또 당시 사체를 검안했던 조철구 박사도 소견서를 제출했다.
문국진, 조철구 박사는 "장준하선생 사망의 결정적인 원인은 직경 2cm, 중앙부에 홈이 있는 인공적인 물체를 가지고 직각으로 가격하여 생긴 후두부 함몰상으로 추정된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또한 "오른쪽 팔과 엉덩이의 의문의 주사자국은 보통 주사자국보다 크게 확장된 것으로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주사한 경우에 해당되며, 마취주사 후 선생의 몸을 고정시킨 뒤 후두부 급소 부위를 강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문 박사는 "두부를 비롯해서 외상을 입기 쉬운 견갑부, 주관절부, 수ㆍ족관절부 등 돌출부위의 외상이 전혀없는 점으로 보아 넘어지거나 구른 흔적이 없고 후두부 골절부위가 해부학적으로 추락으로 인해 손상당하기 어려운 부위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고현장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추락사를 주장하는 유일한 목격자인 김용환씨는 당시 현장답사에서 등반을 개시한 산 입구, 장 선생과 점심을 먹었다는 바위,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등 대부분 증언과 현장답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김씨는 추락지점에 고운 모래가 있었다고 했지만 답사 결과는 견치석(모난돌) 투성이었고, 높은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물체가 정지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또 김씨가 지정한 추락지점은 약 75미터 높이의 높은 절벽으로 장 선생의 사체처럼 아무런 상처없이 반듯이 누워 발견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권력기관의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동아방송 기자는 데스크로부터 무조건 취재 중단 명령을 받고 철수했고, 가족들은 사고 당일 오후 3시께 전화로 사고소식을 들었지만 당시 산에는 전화가 없었고 인가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유 원내부대표는 "2002년, 2004년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12가지 자세로 추락하는 것을 조사를 해봤는데 12가지 모두에서 머리 한 군데에만 함몰이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문의 주사자국에 대해서도 "주사자국 관련해서 만약에 마취제가 있었다면 유골의 그런 성분이 침착된 것을 밝혀낼 수도 있다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의견"이라고 재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그는 중앙정보부에 대해서도 "당시 중앙정보부와 보안사가 관여된 흔적이 있다"며 "중정이 일주일 전 산행에 대해서도 이미 동향파악을 했던 기록이 있고 바로 전 날 박형규 목사 재판에 장준하 선생이 참석했던 동향보고까지 하고 있는데 유독 당일만 자기들이 그날 동향 파악을 못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고 당시 사건현장 주변에서 중정 요원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경찰에게 함구해달라고 했다는 증언이 확보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사건은 대통령에 대한 A보고라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이것은 대통령에 보고 됐다는 것이고 그 자료는 보존되어 있다는 것인데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 역시 정부가 나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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