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07-01일자 기사 '일본 반 원전 시위 수만명 참가, 대규모로 번져'를 퍼왔습니다.
일본 도쿄 시내 총리관저 앞에서 금요일마다 열리는 ‘반(反)원전’ 시위가 갈수록 대규모화되고 있다.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를 방불케 하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탈원전 여론에 아랑곳없이 일본 정부가 원전을 다시 돌리기 시작한 1일에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처음으로 벌어졌다.
지난달 29일에는 지난해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반원전’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오후 6시부터 20만명(주최 측 추산)의 참가자가 나가타초(永田町) 총리관저 앞에서 정부청사가 몰린 가스미가세키(霞が關) 앞 일대 1㎞에 이르는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원전 재가동 반대’를 외쳤다. 젖먹이 아이를 안은 엄마, 퇴근길 회사원,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성 등이 ‘원전 필요없다’ ‘피폭국으로서 부끄러움을 알라’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자연스럽게 대열을 이뤘다.
시위규모에 당황한 경찰이 관저 앞에 수백명의 기동대를 배치하기도 했으나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일본에서 이처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십수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는 수국 혁명”… 어린이들도 “원전 반대” 일본 어린이들이 지난달 29일 도쿄 시내 총리관저 앞에서 열린 탈원전 시위에 참석해 ‘원자력발전소 반대’라는 글귀가 쓰인 종이와 수국을 들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금요시위를 ‘수국 혁명’으로 부른다. 도쿄 | AP연합뉴스
‘수도권 반원전 연합’이 주도하고 있는 금요시위는 지난 3월29일 시작돼 매주 열리고 있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300명에 불과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원전 재가동 방침을 결정하기 전날인 지난달 15일에는 1만명을 넘어섰으며, 후쿠이(福井)현 오이(大飯)원전 재가동을 정식 결정한 직후인 22일에는 4만5000명(주최 측 추산)으로 불어났다.
시위 참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위소식을 접하고 참가한다. 과거처럼 특정 정당이나 노동조합이 참가자를 조직적으로 동원하지도 않고, 행진을 벌이거나 폭력화하는 것도 아니어서 퇴근길 회사원, 아이 엄마 등 보통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참가하며 세가 불어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시위에 6~15세 아이 3명을 데리고 참가한 다나카 사토미(44·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는 “인터넷을 통해 평화적인 시위임을 확인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마이니치신문을 통해 밝혔다.
평소 시위 보도에 소극적이던 NHK와 민간방송들도 이날부터 시위를 주요 뉴스로 다루기 시작했다.
탈원전 시위가 이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은 지난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에서 벗어나자는 탈원전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1970년대 학생운동이 과격화된 이후 시위 자체를 터부시해온 일본 사회가 지난해 ‘아랍의 봄’과 ‘월가 점령시위’ 등을 접하면서 바뀌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달 22일부터 시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는 한 여성(41·결혼 카운슬러)은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대는 다툼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시위 참가를 나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우리들이 무관심하니까 정치권이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시위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선 금요시위를 ‘수국(일본명 아지사이)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작은 꽃망울이 모여 큰 봉오리를 이루는 수국처럼 시민 개개인의 힘은 작지만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내면 나라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수국은 일본의 여름철에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이런 원전 재가동 반대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정부가 오이원전 3호기를 1일 저녁부터 재가동시키자 이날 도쿄 신주쿠에서는 ‘원전을 멈춰라, 노다 퇴진하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원전사고 이후 반원전 시위가 본격화됐지만 총리의 퇴진을 내건 시위는 처음이다. 주최 측은 이날 시위 취지문에서 “ ‘국민생활을 지키기 위해 원전 재가동을 결정했다’는 노다 총리의 말은 기만”이라며 “국민 다수의 뜻을 무시할 뿐 아니라 (원전 재가동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노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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