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07-18일자 기사 '김재철 사장에게 보내지 못했던 '오동나무관'을 보며'를 퍼왔습니다.
[기고] 지역 MBC 동지들께 드리는 글
서대문 언론연대 사무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관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비가 추적거리는 요즘 쳐다보기만 해도 오싹하지요.. 야근하는 날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관의 사연은 지난 3월 김재철 님이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장직을 지키겠다“ 는 발언을 하자 성난 네티즌들이 MBC사장실에 전해달라고 보내 온 관인데요, 금장을 두르진 않았어도 튼튼한 오동나무랍니다. 들어 갈 관을 사두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통계학적으로 근거 있는 얘기라면 김재철은 사장직을 내리는 대신 장수라는 선물을 준 시청자에게 큰절이라도 올려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반년 동안의 초유의 파업, 지역 동지들의 130일의 파업 기간 동안 참으로 고생하셨습니다. 내부의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제대로 된 정리가 없이 묻지마 연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도 결과만 놓고 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의도 천막 노숙을 하면서 지역에서 올라 온 조합원들과 밤늦게 까지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그간 가둬두었던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고 지역의 실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 대구MBC를 포함한 19개 지역MBC 노조는 지난 6월 14일 대구MBC 사옥에서 '공정방송 쟁취와 지역사 자율경영 사수 1박2일 투쟁'을 진행했다. ⓒ춘천MBC 노동조합 트위터
노숙의 밤마다 이어졌던 고민들을 정리해보면 “우리의 자성에는 진정성이 있는가, 김재철 퇴진 이후 지역MBC는 파업의 성과로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가, 지역의 문제가 낙하산 사장 때문인가, 변명거리가 사라지면 우리의 행태가 달라질 것인가, 자사 출신 사장선임이 해법인가, 공정위가 처리해야 할 지협적인 사안을 스스로 확대해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지 않는가, 지역의 시청자들은 지역방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파업이 끝나면 우리는 진정으로 달라질 수 있는가” 등의 성찰의 물음들이 여의도 광장을 점령하곤 했습니다. 파업을 이어가는 지도부의 고민의 결은 좀 더 현실적이고 가닥이 굵고 정세의 변화에 만감할 수밖에 없었지만 제가 만난 조합원들의 솔직한 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사랑받는 방송이 되기 위해 택한 파업이 복귀 후 그저 그런 일상에 묻혀 기억도 가물가물 해지는 게 두려운 지도부와 조합원의 한마음이었다고 정리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함께 해 온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염려도 있다는 것을 지역 조합원 동지들이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낙하’ 김재철 님은 8월 방문진 새임기가 시작되는 즉시 경영전반의 책임을 물어 해임될 전망입니다. 사법처리도 불가피 할 거구요. 지역MBC 낙하산 사장들 또한 본인의 거처를 스스로 고민하고 있겠지요. 8월 임명될 예정인 새사장은 김재철과 그를 옹호하던 세력들이 벌여놓은 갖은 악행의 파편들에 대한 대청소로 임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깊은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결단과 지혜가 필요할 것이기에 김재철 퇴진의 순간까지 연대의 끈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란 생물인지라 긴장의 연속입니다. 정치권 합의의 입맞춤이 언제 살벌한 삿대질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김재철과 옹호세력들 또한 대선까지의 연장을 내걸고 정치적 타협과 물타기로 치열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지역방송협의회가 결합해서 지난해부터 활동 중인 정책생산 기구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와 언론연대가 지난 6일 지역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입법발의를 민주통합당 문방위 소속 배재정 의원과 함께 했습니다. 서울 MBC의 지배를 막고 낙하산의 낙하산을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법제화했습니다. 종속적인 지배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명실상부한 지역 공영방송의 개념을 정리해 내고자 노력했습니다. 논의의 출발입니다. 이 또한 사회통념과 MBC 틀안에서 또 다른 투쟁의 지점이 될 것입니다.

▲ 언론연대 사무실 복도 계단에 세워져 있는, 김재철사장에게 보내지 못한 오동나무관.
180일과 130일, 서울과 지역이 130일을 함께 싸웠고 50일을 함께 싸우지 못했습니다. 파업의 모든 권한을 본부 정영하위원장에게 넘기고 대오를 굳건히 하는 MBC본부의 단결된 모습이 130일의 무게라면 지난달 30일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파업콘서트에서 자랑스러운 MBC 800조합원이라고 반복해서 멘트하는 사회자를 비롯, 콘서트 내내 지역조합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그 같은 정서가 50일의 간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이지만 하나일 수 없는 현실의 벽을 하나가 되어 깨뜨려야 하는 운동의 순리,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진정으로 저기 세워진 관을 받아야 할 것은 우리 내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락함에 길들어진 관성이, 지독한 조직이기주의가, 가진 권력에 자유로운 본능이, 그리고 초여름 밤 여의도 광장을 점령했던 성찰의 내용들이 관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오동나무관, 김재철에게 보내긴 좀 아깝기도 하구요.
파업복귀가 조합원들에게 물 만난 고기 같은 신명을 허락하길 기원합니다. 가깝게는 다가 올 대선에서 공영방송 지역MBC가 고착된 지역구도를 허무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지역의 교묘한 짬짜미를 깨치고 지역 시청자가 주인되는 방송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그래야 공영방송의 파업이 진정한 무기가 될 수 있고 세상의 울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지들의 건투를 빕니다.
추혜선 언론연대 사무총장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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