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6일 수요일

"일구야! 광화문 시위 참 잘했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04일자 기사 '"일구야! 광화문 시위 참 잘했다."'를 퍼왔습니다.
MBC, 최일구, 권재홍, 이진숙과의 만남

▲ 김수진·최일구 MBC 아나운서 1인 시위. ⓒ 미디어몽구 트위터(@mediamongu)

“일구야! 오늘 마와리 돈 것 풀 해봐라.” 당시 연합통신의 한 고참 경찰기자는 우리가 지금은 앵커로 익숙한 최일구 초년병 기자에게 반말로 이런 저런 일을 시켰다. 1987년 서울 중부경찰서 기자실의 풍경이다.
여기서 마와리는 일본말로 돌아다닌다는 마와루의 명사형이고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기사거리를 찾는 경찰기자(또는 사건기자)를 사쓰마와리란 일본말로, 지금 시각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말이지만 어쨌든 당시 기자 사회에서는 이렇게 부르곤 했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같은 언론사의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예사였다. 경찰기자 가운데는 서로 다른 언론사 후배한테도 연조가 많이 차이 날 경우에는 종종 반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말을 한 그 선배와 최일구 기자의 중간 정도 연조였던 필자가 그에게 반말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그에 대한 기억은 사건 현장 이곳저곳을 발바닥이 안보일 정도로 열심히 다녔던 민완 방송기자로 남아 있다.
발바닥 닳게 다녔던 방송 민완기자 파업현장으로
그와는 그 뒤 취재현장에서 만난 기억이 없고 방송뉴스에 종종 모습을 보이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 앵커가 되어 매일 화면에서 만나게 됐다. 그런 그가 이번 문화방송 대파업 때 유명세와 간부급 기자를 모두 떨쳐버리고 파업에 동참해 후배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그가 최근 후배들의 목을 계속 자르고 있는 김재철 사장과 그 측근인 권재홍, 이진숙 아웃을 외치는 1인 시위를 4일 광화문 광장에서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권재홍과 이진숙과도 인연이 있는 필자로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현실에 대해 서글프고 안타깝고 분노하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자판을 두드리게 됐다.
먼저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대학에서 같은 과는 아니지만 사실상 같은 과 후배라고도 할 수 있는 일년 후배다. 그와는 유신시절 이른바 생물3과라고 해서 미생물학과, 식물학과, 동물학과로 나뉘어져 있던(지금은 생명과학부로 통합 돼 있음) 때 관악캠퍼스에서 같이 공부했다. 학년이 달라 교련이나 체육을 같이 하지는 않았고 생물3과생들이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들도 함께 배운 기억도 없다. 그는 학과 공부보다는 대학 방송반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앵커가 된 유명인 후배들에게 손가락질 
그는 학교 졸업 후 시사영어학원에 잠시 몸담았다가 언론계로 진출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인지 필자보다 1년 남짓 더 일찍 기자가 됐다. 1980년대 야생화의 사계 등 자연다큐멘터리로 이름을 날리고 큰 상을 여러 번 받은 그는 사회부 기자를 오래 한 필자와는 달리 경제부 기자 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출입처나 취재현장에서 서로 만난 일이 없었다.
그도 어느 날 앵커가 되어 유명인이 되었고 김재철 사장 밑에서 최측근이 되어 보도본부장이란 높은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파업 와중에 얼마 전 퇴근길에 후배들에게 자신이 폭행당했다는 허위사실을 MBC 9시 저녁뉴스 헤드라인으로 보도하도록 지시해 요즘 파업 후배들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신이 뉴스의 중심이 돼버린 또 다른 유명인이 됐다.
이진숙 기자는 이라크 종군기자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그는 서방기자와 한국 기자를 모두 싫어하는 후세인의 이라크 시절에도 상대적으로 신뢰를 받아 단독 기사나 인터뷰를 현지에서 하는 능력을 발휘해 아직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있다.
그와는 김영삼 정부 때 손학규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같은 출입처에서 선후배 기자로 만났다. 당시 필자는 출입기자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 기자가 다른 동료 기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기자실 소파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필요한 취재 아이템을 가지고 취재원(복지부 공무원)을 만나고 바로 회사로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 필자와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다.

▲ MBC기자회가 해고 동료들을 위한 릴레이 시위에 돌입한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첫번째 주자로 나선 최일구 앵커가 피켓을 목에 걸고 서 있다. ⓒ News1 박철중 기자

1986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연말에 되어 장관(손학규)이 기자실에 들러 바빠 기자들과의 송년모임도 못해 미안하다며 구두상품권인지, 백화점상품권인지 5만원짜리인지, 10만원짜리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대변인을 통해 상품권을 기자 당 한 장씩 주고 갔다. 대부분 한 장씩 나눠 주고 이진숙 기자에게 이를 주려 하니 그는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필자 것과 보태 기자실 서무 아가씨(2명)에게 연말보너스 격으로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 일로 필자에게 주관이 뚜렷한 기자로 각인됐다.
그 뒤 뉴스에서 별로 자주 보이지 않더니 어느 날 뜻밖에도 문화방송 홍보국장으로 기자 때와는 또 다른 유명세를 날렸다. 지금 파업을 벌이고 있는 대다수 문화방송 동료들에게 유명세가 아니라 악명세를 계속 날렸다. 그리고 그는 권재홍 보도본부장과 함께 퇴출 1순위로 이들에게 꼽히는 수모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라크 종군기자 회사편에서 악명 날려
이제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인연이 있던 권재홍․이진숙과 최일구는 서로 프리허그를 할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 필자는 이들 가운데 최일구 앵커의 정의로움과 양심의 행동을 믿는다. 그 정도의 경력에 유명세는 지닌 그이고 보면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정치권에 진출할 수도 있고 방송사에서 높은 자리나 요직을 꿰찰 수도 있다. 한데도 그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래서 김재철 사장에 의해 해고된 후배 박성호․이용마 기자들을 위해 "해고기자 살려내라" "김재철, 권재홍, 이진숙 OUT"이 적힌 팻말을 들고 1인 시위 첫 주자로서 서울시민 앞에 당당히 나선 것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25년 전 어느 선배가 중부서 기자실에서 했던 표현법을 빌려 “일구야! 장하다. 광화문 1인 시위 참 잘했다.”란 말을 언론계 선배로서 보낸다.

안종주 기자  |  jjahn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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