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14일자 기사 '청와대, 언론사에 전화 걸어 “참여정부 불법사찰도 다뤄달라”'를 퍼왔습니다.
[아침신문솎아보기] 윗선은 없다? 부실 수사 논란에, 청와대 사전 유출 의혹도
‘설마’했더니 ‘역시나’였다. 검찰의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재수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검찰은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해 3개월 동안 수사를 했음에도 숱하게 제기됐던 ‘윗선’ 개입 의혹을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의 ‘실력’이 드러남에 따라 정치권과 사찰 피해자들은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나서 파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전 일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참여정부도 민간인을 사찰한 게 나올 테니 균형 있게 다뤄달라”며 ‘물타기’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미리 보고받고 언론사의 논조에 개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신문의 논조나 방향은 크게 엇갈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신문이 검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했지만, ‘속내’는 달랐다는 이야기다.
다음은 6월14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노 정부 사례 나올 것 비중 있게 다뤄달라”)
국민일보 (대법원정 국정원장 재벌 총수도 사찰)
동아일보 (문제는 경제야! 더 큰 문제는 정치야!!)
서울신문 (3개월 재수사…“몸통은 총리실 차장”)
세계일보 (중 ‘엿가락 장성’ 공식 문건 확인)
조선일보 (미 ‘한미연합사 해체 백지화’ 제안)
중앙일보 (스페인을 봐라, 우리만 당했다)
한겨레 (윗선 없다니…검찰은 없다)
한국일보 (3개월 재수사…밝혀낸 게 없다)
“윗선은 없었다”?…검찰은 없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은 13일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 재수사결과 발표에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이 불법사찰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정식 보고라인이 아닌 ‘비선’을 통해 별도로 보고를 받는 등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지휘·감독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과정에 개입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한겨레 14일자 1면
부실수사 논란은 500건의 사찰 중 불과 3건만 기소한 데서 단적으로 제기된다. 검찰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전방위적으로 사찰을 벌였다고 밝혔다. 사찰 대상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민주통합당 이석현 양승조 의원, 백원우 전 의원, 윤석만 전 포스코 회장 등이 포함됐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홍문표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현 새누리당 의원), 엄기영 전 MBC 사장 등도 사찰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검찰은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과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서 간단한 서면 답변서를 받고 수사를 끝냈고,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관봉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의혹의 당사자인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의 집이나 사무실을 압수수색 조차 하지 않았다. 또 핵심 피의자인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참고인 신분이라 본인이 출석을 거부하면 소환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사실상 수사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특히 “VIP(대통령)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의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해야 한다”며 “VIP보고는 지원관실→BH(청와대)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에 대해서 검찰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또 장진수 전 주무관이나 진경락 전 과장 등에 의해 ‘VIP’가 언급된 것으로 알려진 것만 여러 차례다. 게다가 이미 장 전 주무관이 지난해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이 같은 증언을 한 사실에 기초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억지’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 조선일보 14일자 3면
검찰 관계자는 “500건을 전수 조사했지만 대다수가 적법한 감찰이었거나, 단순 동향파악 수준에 불과해 사법처리하기 어려웠다”며 “불법사찰 자체를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민간인 사찰 방지법’ 제정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공을 정치권에 떠넘긴 셈이다.
검찰은 또 “과거 정부의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도 현 정부의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유사하게 정치인과 순수 민간인 등에 대한 동향 및 비위를 파악,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혀 ‘참여정부도 했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을 ‘뒷받침’ 하기도 했다. 공무원 비위 감찰과 민간인 불법사찰을 섞어 ‘물타기’한 대목이다.
민주당은 즉각 검찰을 강하게 성토했다. 민주당 MB-새누리당 부정부패청산국민위원회(위원장 박영선)는 “청와대가 불법사찰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은 원숭이한테 검사복을 입혀 놔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쏟아졌다”며 원색적으로 검찰을 비판했다. 박영선 위원장은 “심부름센터에 의뢰해도 검찰 수사보다 낫다”며 “법무장관은 청와대 개인 변호사로, 검찰은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 요구서를 곧 국회에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는 정치공세로 변할 우려가 있다’며 특검을 통한 재수사를 주장했다.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수용하지만 국민적 의혹 해소에 미흡한 점이 있다면 특검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국정조사까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대통령 선거만 넘겨보자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곧 ‘민간인 사찰 방지법’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미 민간인 사찰은 불법인데 ‘불법 방지법’을 내겠다는 이야기다.
청와대는 단 두 줄짜리 서면브리핑을 내보내는 것으로 반응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권 남용 등에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관련됐다는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심정이다. 청와대는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한겨레 14일자 2면 만평.
청와대 언론사에 전화…“참여정부 불법사찰도 다뤄달라”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이날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전 일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현 정부뿐 아니라) 참여정부도 민간인을 사찰한 게 나올 테니 (현 정권의 불법사찰 내용과) 균형 있게 다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보도다. 이에 따르면 복수의 언론사 관계자는 “이날 오전 수사결과 발표 내용을 미리 파악한 청와대 언론 담당자들이 ‘과거 정부의 직권남용 사례가 발표될 것’이라며 ‘이를 (현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례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줄 수 있느냐’고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물타기’일 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간섭’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한 기자는 “정치부장이나 국장, 사장급에서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고, 다른 언론사의 한 기자는 “회사에서 ‘청와대 부탁이 있으니 참여정부의 불법사찰 사례도 잘 챙겨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 경향신문 6월14일자 1면
관심을 끄는 건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결과를 미리 보고받았는지 여부다. 검찰은 이날 오후 1시에 각 언론사에 수사결과 자료를 배포했다. 검찰청 출입기자들은 수사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수사결과가 사전에 청와대에 유출된 것 아니냐”, “검찰이 미리 법무부에 자료를 주었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 기자는 “청와대 언론 담당자들이 오전에 과거 정부의 직권남용 사례와 관련한 자료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대검찰청이 (청와대에) 미리 보낸 것이냐”고 따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무부에는 자료를 보내지 않았고, 대검에만 미리 보고했다”며 “대검에 보고한 자료가 법무부를 거쳐 청와대에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실제 검찰의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는 ‘과거 정부 시절 직권남용 사례’라는 항목으로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민간인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에 보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 없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청와대
경향은 이어 “검찰은 참여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특별수사팀의 수사 본류와는 거리가 있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이날 함께 자료를 배포했다”고 지적했다. 4면에서 이어진 기사에서 이 신문은 “참여정부 시절 직권남용 사례 중 상당수는 공직자를 감찰하는 통상적인 활동 범위 안에 들어가는 부분”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는 행위 자체가 다르다. 이날 발표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실수사’ 비판 한 목소리…‘속내’는 다르다?
신문들은 검찰의 부실수사를 일제히 비판했지만, ‘속내’는 조금씩 달랐다. 눈에 띄는 건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1면 관련기사 제목을 (이용훈 이건희도 동향파악)으로 뽑고,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충실히 전했다. 초점이 검찰의 ‘부실 수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2면 관련 기사에서 부실수사 비난이 거세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노무현 정부 때도 불법사찰’이라는 단락을 맨 마지막에 집어넣기도 했다.
▲ 동아일보 14일자 1면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검찰은 국민적 비난과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라고 비판했고, 세계일보는 “모든 사찰이나 정보는 ‘사용자’에게 보고된다”며 “일개 차관급이 위험천만한 불법 사찰정보의 사용자일 수는 없다. 소가 웃는다”고 성토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며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검찰의 은폐·축소 책임도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구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나 면구스러움은커녕 보스를 무사히 보호했다는 안도감, 의리를 지켰다는 으쓱거림만 물씬 전해 온다”며 “개를 나무라 봤자 헛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검찰은 도대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기에 이런 수사결과를 내놓는가”라며 “이런 수사결과를 보면 검찰이 재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넘어서는 안될 선을 스스로 그어놨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고 꼬집었다.
경향신문은 권재진 법무부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을 국회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수사요, 총체적인 부실 수사”라며 “권재진 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러한 수사결과를 믿으라는 것인가”라고 힐난했다. 이어 “국회는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열어 뻔뻔하고 무능한 두 사람을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서울신문 14일자 3면
▲ 한국일보 14일자 3면
이른바 ‘보수신문’들도 사설을 통해 검찰의 수사를 비판했지만, 방향과 ‘톤’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총리실 부속 기관이 사법부 대표인 대법원장까지 뒷조사를 했던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그런데도 검찰의 1차 수사는 국민에게 낙제점을 받았다. 90일간의 2차 수사도 국민 불신만 키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 신문은 “이런 검찰이 지키는 나라가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말로 사설을 마무리 지었다. 책임 추궁도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 ‘국민 불신’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지 언급도 없었다.
앞서 1면에서 (이용훈 이건희도 동향파악)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소식을 전했던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스럽다”거나 “제대로 된 수사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현행법으로 도청과 불법 계좌추적은 처벌할 수 있지만 사찰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한 처벌하기 어렵다”며 “‘불법 사찰 방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 같은 ‘대책’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제안한 이후 새누리당의 ‘당론’으로 굳어진 상황이다. 이 신문은 검찰의 부실수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진실 규명을 위한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 비판’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수사 결과는 물론 그 과정에서도 국민 기대에 부응하려는 결연함을 찾기 힘들다”며 “비상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의혹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려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특검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밝힐 수 있는 길”이라며 “특검에서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을 때 국정조사 등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특검을 통한 재수사라는 새누리당 입장에 힘을 실어준 대목이다.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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