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3일 수요일

노무현을 대하는 종편신문의 방식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23일자 기사 '노무현을 대하는 종편신문의 방식'을 퍼왔습니다.
[한줌의 미디어렌즈] ‘철저히 버리는 것’…그들이 뱉은 말은 그들에게로 가야

2009년 4월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에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글을 올린다. 유서에 앞서 공개된 그의 마지막 글이었을 것이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옆길로 새더라도 이 말은 해둬야겠다. 노무현은 자신으로 인해 진보라는 가치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고 그래서 자신을 버리라고 했다. 진보라는 사람들은 이전에도, 그때도, 지금도 노무현을 진보라고 여기지 않을 테지만 아무튼 노무현은 그랬다. 자의든 타의든 꿋꿋하게 뉴스메이커 자리에 버티고 있는 어느 진보정당의 행색은 그래서 더 억장을 무너뜨린다. 다시 본론이다.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던 당시 언론 보도야 오죽했었는가.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말에 바로 화답했다. 2009년 4월 27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이 그런 예다. ‘노무현씨를 버리자’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이제 '노무현'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도, 정치인으로서의 긍지도, 좌파 리더로서의 존재가치도 사라졌다. 그래서 노씨 스스로 홈페이지에서 국민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를 버리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버리는 것인가?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를 기소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는 것이다.”
어찌 그게 김대중 칼럼만의 생각이었을까. "어떤 결과가 되었든 이미 대부분의 국민 마음속에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역사적 범죄자·배신자가 되어 있다"(2009.4.28 중앙일보)거나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국정 최고책임자로 대한민국을 이끈 인물이 거짓말을 늘어놓고 말을 바꾸는 것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잡범'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2009.5.11 동아일보)는 ‘주장’처럼, 지금은 종편까지 덤으로 얻은 신문들의 맘은 거기서 거기였다.
“나는 봉화산 같은 존재야. 산맥이 없어, 이 봉화산이….” 지난 5월 20일 공개된 노무현의 마지막 육성 중 일부다.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그날이었다. 봉화산 같은 존재라던 그는 스스로 봉화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상황은 종편신문들의 바람처럼 되진 않았다.
의례적일지 모르지만 그때를 되짚은 것은 지금의 종편신문들을 펼쳐봤기 때문이다. 이들 신문이 서거 3주기를 맞는 방식은 연일 ‘형님 의혹’이라며 지면을 채우는 것이다. 하긴, 지면에 조화라도 그리고 검은 리본 달릴 바랐겠는가. 양상도 다르지 않다. 검찰이 흘리고 받아쓰고. 검찰이 말을 바꾸건 말건 쓰던 대로 계속 키운다. 의혹을 산 자의 책임도 있겠으나 지면에 등장시키는 타이밍이 참 고약하다. 궁금할 것 없는 속내다.
그렇다. 노무현에 대한 종편신문들의 태도는 일관하는 바가 있다. 서거 전이든, 후든 그렇다. 이들에겐 애시당초 지워버렸어야 할 인물 아닌가. 앞서 인용한 김대중 칼럼은 그럼 심정을 솔직하게 토해냈다. “노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는' 것이다.” “그가 또 다른 어떤 계기에 그 어떤 사건을 가지고 '국민' 앞에 나서서 그의 번잡한 언변을 늘어놓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노무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런 노무현이 살아있었다면 또 어땠겠는가. 빨갱이를 국회에 심은 장본인이고, FTA 말 바꾸기로 그때나 지금이나 혼란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인사요, 친노세력 앞세워 재집권을 노리는 정치모리배가 되어있지 않았겠나. 그저 박멸대상이었을 테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론의 수준만큼 발전할 것”(2007. 6·10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이라던 그였다. 서거 3년이 흐른 지금, 조중동이라는 신문은 종편을 얻었고, 방송은 초유의 연쇄파업, 최장기간 파업을 맞이했다. 어떤 것은 달라졌고 어떤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중동 혹은 종편신문, 그네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윤태호의 3주기 추모문화제 포스터처럼 불 꺼진 건물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들 신문이 뱉어놓은 말들을 다시 줍는 건 그래서다. ‘철저히 버리는 것’, ‘역사적 범죄자·배신자’, '잡범'…. 오조준(誤照準)된 이런 말들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 그래서 꺼진 불이 켜지고 미동 없는 그네들의 자리가 요동치게 만드는 것. 그런 과제를 떠올리며 굳이 3주기 단상을 뽑아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평가와 지향까지, 꽤나 적확해 보인다. '잡범', ‘역사적 범죄자·배신자’ 그리고 ‘철저히 버리는 것’. 그리하면, 언론의 수준도 높아지고 민주주의는 그만큼 발전하지 않겠는가.

김상철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 공저자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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