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5일 금요일

[사설] 역사·정치적 의미 큰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24일자 사설 '[사설] 역사·정치적 의미 큰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퍼왔습니다.
대법원이 어제 일제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법률적으로뿐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크게 환영한다.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징용 피해자들과 후손들의 원통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사법부가 우리의 과거사에 대해 잇따라 진전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 같은 취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최고재판소에 의해 패소판결을 받았고, 우리 법원에서도 1·2심까지 줄줄이 패소했다. 이번 사건에서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는 일본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일본 판결이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그 효력을 승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 규정에 비춰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으므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일본 법원의 판결을 승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고 규범인 헌법의 규정과 정신을 제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헌정사에 남을 만한 명판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1·2심의 발목을 잡았던 시효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사 관련 고문조작사건 판결에서 그랬듯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이상 시효가 지났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정치적으로도 그간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맺은 한일협정에 얽매여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을 사실상 방치해오다시피 한 정부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1965년 맺은 한일협정에 의해 민간인의 모든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실상 나몰라라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헌재가 치욕의 과거사에 대한 정부의 헌법상 의무를 분명히 한 데 이어 대법원까지 개인의 배상권을 인정한 만큼 정부는 그 의미를 각별히 되새겨야 한다. 민간의 법률적 책임 추궁과 별개로 일본 정부에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일은 정부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 식민지배를 미화하려는 뉴라이트 등 일부 우익의 역사왜곡 시도마저 횡행하는 현실에서 식민지배를 부인하는 헌법정신을 재확인한 대법원 판결은 역사적으로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친일청산에 실패한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았고,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처참한 삶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판결은 여러 측면에서 국민적 각성과 함께 정부의 분발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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