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3일 일요일

이름만 진보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2-05-09일자 기사 '이름만 진보인가?'를 퍼왔습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야 말로 심오함을 발견할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 2편의 단편 밖에 쓰지 못한 추리소설가인 저는...... 그래서 대중에 영합하는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 @jhyong91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에는 미도리가 운동권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민중이 어떠니 저떠니 외치다가 여자들이 싸 온 도시락을 가지고 투정을 하는 내용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대학교 도서관 개관식에서였다. 도서관 이름을 재벌인 이사장의 호로 하자, 소위 운동권 학생들이 스크럼을 치고 아예 도서관 진입을 막아 버렸었다. 당시의 나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었다. 문제는 그해 가을, 그토록 재벌 어쩌고, 매판자본 어쩌고 선동하며 앞서던 이들이 모두 그 도서관에 앉아서 취업준비를 하는 것을 볼 때였다. 뜨악했다. 그 정도로 반대했으면 적어도 도서관 따위는 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나는 하도 기분이 드러워서 그 뒤로 학교 도서관은 다니지 않았다.
물론 내가 본 것이 운동권의 전부는 아닐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지만 내가 본 것이 그 단면일 수는 있을 거다. 어쩌면.

출처, 오 마이 뉴스

소위 가투를 하고 수배당해 도망다니던 그런 운동권으로 한정짓자면 아마 내가 대학을 다니던 1, 2학년 때가 마지막이었지 싶다. 나는 민주화도 몰랐지만, 무엇보다 운동하면 집안이 폭삭 망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 하는 인간이었다. 데모 중에 돌맹이를 던진 것도, 사과탄이 내 옆에 떨어져 열 받았기 때문이었지 민주니 민중이니 하는 거창한 대의는 있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 했다. 다만 주위의 친구나 선 후배 중에 운동권이 많이 있었기에 제 삼자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앞서의 예처럼 이율배반적인 모습도 많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삼엄했던 시절에 운동을 했다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가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지금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위 운동을 한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어찌 그리 순순문단의 작가들같은 분위기를 풍기는지 모르겠다. 팔리지도 않는 책을 쓰면서 베스트셀러라면 무조건 대중작가(대중작가는 또 어때서?)라고 폄하하듯이, 운동권 출신 중에는 과거의 투쟁을 가지고 대다수 인간들의 삶을 쁘띠 브루조아 취급하며 마치 자신들만이 고결한 삶을 사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보는 인간들이 많음을 적어도 내가 겪은 선에서는 부정하지 못 하겠다. 솔직히 밥맛인 거다. 그런 논리면 전쟁에 나간 병사들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알게. 말도 안되는 얘기다.
한국말에, 그 사람 참 말은 잘하네는 대부분 긍정적인 뜻이 아니다. 입만 깠다는 경멸의 의미지. 이번 통진당 사태를 보면서 내가 느낀 인상은 딱 그런 것이었다. 참, 말은 잘하네.
당권파의 핵심이 NL인지 PD인지 아니면 주사를 너무 맞아 헤롱거리는 주사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략과 전술의 개념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는 거다. 하지만 그것이 소수로서 당의 권력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당이 대중성을 가지고 성장하는 데는 걸림돌이 되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정희 대표의 사무원이 부정적인 방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독려했고, 지금의 사태도 당권파를 몰아내기 위한 술수로 밖에 보지 않는 거다. 권력을 잡는 다는 전략 아래 온갖 기만전술을 휘황찬라하게 구사한 덕택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의 공정성이나 투명성, 또한 부정의 양이 아니라 한 줌의 부정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 모르는 것이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자신들만이 권력을 쥐어야 대중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함에 근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지한 대중이 아무리 떠들어도 당원의 명예 운운하며 자기들 편한대로 해석하지.
나는 아무주의자도 되지 말자 주의자다. 굳이 무슨 주의자라고 한다면, 인간을 희생시켜서 쟁취애햐 할 이념은 없다 주의자다. 그러니 극우든 극좌든 권력을 잡으면 전봇대에 목이 메달릴 팔자일 지도 모르겠다. 진영에 있는 인간들이 적보다 더 싫어하는 게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인간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투표에 통진당을 찍었다. 새누리라는 보수의 탈을 쓴 극우정당에 제발 좀 딴지 좀 걸어달라고. 묻지마 지지율이 30%나 되는,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해도 다수당으로 살아남는 그 당이 꼴보기 싫어서, 그렇다고 돈이 있어서 서사모아로 이민을 가지도 못하는 처지라서 그랬다.
그랬더니 하는 작태가 당원의 명예 운운하며 부정선거를 권력투쟁으로 바꿔 버리는 것인가? 선거부정을 책임지겠다며 울며불며 사퇴를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당권파를 몰아내기 위한 모략이라고? 아니 똑같은 상황인데 어찌 한 쪽은 부정을 책임지는 사퇴가 되고 다른 한 쪽은 권력투쟁이란 말인가? 이정희는 단지 이너서클의 얼굴마담이었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논리로(오세훈이나 나경원을 멘토로 바꾸셨나?) 의사진행방해를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악을 쓰는 모습에서, 언론에 노출되던 이정희가 잠시 흥분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 모습이 원래의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추락하는 실망을 잡기 싫은 기분이었다.
사실 무척이나 간단한 논리 아닌가? 부정이 저질러 졌다면 당연히 비례대표 전원이 사퇴하는 게 맞다. 진보정당이라서 도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게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도덕성은 다 중요하다. 다만 보수라고 표방하는 당이 원래 기대할 당이 못 되기 때문에 진보에게 만큼은 상식적인 것을 요구하는 거지. 그런 상식도 못 지킬 거면 진보세력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조사위 조사를 못 믿겠다고? 일괄 사퇴 뒤에 조사위의 책임을 따지면 될 것 아닌가. 부정확했다면 책임 소재를 가리면 될테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봐서, 부정이 저질러 졌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거기에 무슨 말을 보탤 필요가 있단 말인가? 일괄사퇴하면 되지.
그리고 이석기 김재연이 도대체 누군데? 당에서 비례대표를 뽑았으니 그건 당 내부의 문제다 마는, 과연 비례대표정당으로 통진당을 뽑은 사람들이 이석기나 김재연에게 기대를 걸고 찍었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이정희를 보고 찍었을 거다. 그들이 당을 잘 운영해 주리라 믿고 말이다. 게다가 비례대표면 정말이지 당과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네들끼리 기자회견 열고 당이 어쩌니 저쩌니 할 수 있나? 본인들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당의 진퇴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이런 행태야 말로 운동권이 해오던 구태의연한 전술 아닌가? 여기가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가? 괴벨스처럼 선동하면 대중에게 먹힌다고 생각하는가? 착오도 한참 착오다. 대중을 우습게 보니 그런 낡은 사고가 바뀌지 않는 거다.
게다가 당원들에게 진퇴여부를 묻자고? 선거자체가 부정으로 이뤄졌는데 그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또 투표하자고? 이건 뭐 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또 한 번 부정을 저질러서 자신의 제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건지,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를 모르겠다.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되지 않는가? 그래도 당권파의 핵심라는데 비논리적이란 걸 몰라서 그러진 않았을 테고, 굳이 해석하자면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가서 당이 어떻게 되든 권력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의중 같은데, 그렇다면 그런 당은 없어지는 게 낫다. 지지해준 대중도 안중에 없는 당이 세력이 커진대서 국민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참, 구태스럽다. 어찌 그리 새누리당과 다른 점이 없을까? 당명만 다를 뿐,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딱, 수꼴들이 하는 짓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심 다행스럽기도 하다. 저 운동권의 구태을 반복하는 세력들이 혹여 세력을 키웠거나 권력을 잡았을 때, 그 때는 아마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옭아 맺겠지. 극우가 무력으로 국민을 옭아 맺듯이.  이제 그런 선전 선동적인 논리나(먹히지도 않겠지만) 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들을 단순히 전술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부정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한다면 절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나아갈 수 없을 거다. 지금이 무슨 마오쩌뚱이 대장정 하던 시대인가?
흔히들 위기는 기회라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구태를 청산하고 새로 거듭날 수 있을 수 있는. 하지만 그 보다 더 분명한 것은 이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진보는 십년 뒤로 후퇴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거다.
P.S.
1. 온동권을 싸잡아 매도한 것 같이 읽혔다면 그런 의도는 아님을 밝혀 둔다. 다만 나의 지론은 어느 동네 건 제대로 된 인간은 10%(도 많은 것 같지만) 정도라 본다. 운동권이라고 예외라고 보이진 않는다.
2. 뭉텅이 투표용지와 관련해서 김선동 의원이 실제로 부정을 저지를 사람이 있었다면 뭉텅이째 넣겠느냐, 우리 투표용지 관리가 부실해서, 그것이 절취선에 절묘하게 잘려서 계속 넣다 보면 그 풀이 다시 살아나서 다시 붙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상에. 새누리당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논리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모두 이견이 없는 것 같은데, 당권파의 주장은 진상조사를 다시 해서 부정의 횟수를 가리자는 논리 아닌가? 한마디로 도둑질은 했는데 열 번인지, 백 번인지 정확하게 횟수를 파악해 보자는 뜻이다. 도둑질을 했으면 그냥 도둑일 뿐이지 그 횟수가 중요한 것인가? 일의 선후도 가릴 줄 모른단 말인가? 에고, 참, 대단들 하십니다.
3. 앞으로는 이 문구를 달 생각인데 글을 읽으시고 공감이 되시면 꼭 댓글을 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껌을 사고 슈퍼에서 나가면서도 수고하세요, 라고 말하는 법인데 공감이 되셨다면 댓글 정도는 달아주실 수 있지 않겠어요? 쓰는 저도 사람인지라 잘 읽었다는 댓글을 보면 잘 쓰지는 못 하지만 무진장 계속 쓰고 싶어지긴 하거든요. 게다가 훅 독자들은 유독 댓글을 잘 안다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필진들의 글도 댓글이 별로 없거든요. 신경 쓰지 않는 쿨한 필진들도 계시겠지만 저처럼 읽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한 소심한 필진분들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렵지 않다면 좀 달아 주세요. 어째 쓰고 나니 구걸을 하고 있는 노숙자가 된 기분이긴 합니다만(악플도 괜찮습니다만 딱 그 수준에 맞는 답글을 달아 드린다는 것만은 알고 계시기를). 하긴 뭐 저도 다른 필진들의 글에 댓글을 단 적이 있는데 답글은 없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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