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5-20일자 기사 '기념탑에서 5.18을 얘기하지 말자'를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5.18국립묘지 구 묘역 전경
어김없이 올해도 5월이 찾아왔다. 산과 들에 녹음이 번져가고 청자 빛, 백자 빛 하늘이 따사로운 5월의 햇살을 내뿜는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들썩인다. 겨우내 움츠렸던 탓일 테다. 그래서인지 전국 방방곡곡은 산과 바다를 찾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어떤 이들은 국내여행 대신 미주로, 유럽으로, 동남아시아로 때 이른 휴가를 즐긴다. 요즘처럼 살기 좋아진 때는 흔해 빠진 게 여행인지라, 남미나 아프리카 정도는 다녀와야 ‘여행했다’고 생색을 낼 수 있으니 더욱 그러할 게다.
하지만 5월이 되면 꼭 놓치지 말고 찾아봐야 할 곳이 있다. 5.18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광주 ‘5.18국립묘지’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과 역사는 외면한 채 틈만 나면 이국의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느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정도는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찾아 ‘임’의 뜻에 머리를 조아릴 줄 아는 것이 ‘예의’다. 이것이 바로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 구실을 하는 것이다.
ⓒ민중의소리 5.18국립묘지 구 묘역 전경
그 많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5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광주 5.18국립묘지를 찾았다. 해마다 망월동 구(舊) 묘역에 돌탑이 높게 쌓여갔고, 추모의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어지러워 마음 다질 곳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고 갔다. 또 자녀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들려 역사 공부도 하고, 오늘을 사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2012년 5.18국립묘지는 너무도 한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길이 막히고, 추모의 물결이 줄줄이 이어졌던 옛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5.18광주항쟁이 ‘기념일’로 전락하면서다.
5.18국립묘지가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거대한 기념탑이 세워졌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관료와 국회의원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대리석으로 조성된 넓은 재단에 향이 피워졌다. 추모곡도 또한 장중한 관현악 연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5.18광주항쟁은 묘지가 아니라 기념탑 밑에서 얘기하는 ‘기념일’이 돼버렸다. 묘지에 들려 눈시울을 적시는 이는 드물어지고, 기념탑 앞에서만 향을 뿌리는 사람들만 늘어가고 있다.
이제 5.18광주항쟁은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처럼 얘기되곤 한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5.18을 몸소 겪었거나 목도했던 사람들은 다를지 몰라도 먼 기억, 혹은 교과서 속의 역사로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민중의소리 5.18국립묘지 기념탑 앞 전경
기념탑 앞에서만 5.18을 얘기하지 말자
‘5.18국립묘지’로 가는 길. 물론 신나게 즐기는 여행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정말 사소한 일, 쉬워 보이는 일이 때론 가장 큰 위로를 줄 수 있다. 조금만 마음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면 이 땅의 피맺힌 울분을 못 들을 리 없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과 스쳐 닿지 않을 수 없다.
‘5.18국립묘지’에서 꼭 ‘큰 의미를 찾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직접 묘지를 찾아가 조그마한 꽃 한 송이, 마음 한 조각으로 5월을 이야기해보자. 5월이 되면 한 번 쯤은 기념탑이 아니라 묘지를 둘러보면서 여유로운 5월의 햇살을 만끽해보자.
그러다보면 그 마음이 전해지고 전해져 사람들을 다시 5.18국립묘지로 불러 모을 수 있지 않을까.
5.18광주항쟁의 역사적 의의
5.18광주항쟁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이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권력누수의 기간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획책하는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여 일어난 시민봉기다.
5.18광주항쟁은 깨어 있는 민중들이 민주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나아가 불의의 독재를 거부하는 민주화운동이 합법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5.18광주항쟁은 유신체제를 계승한 ‘제5공화국’정권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여 끝내 그 체제를 붕괴시키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으며 50년 만의 여야 간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결국 5.18은 과거의 역사적인 민중항쟁을 통해 표출됐던 자주 민주 통일의 전통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민주주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민권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동권 기자 su@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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