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인 2012-05-10일자 기사 '‘진보정당 1번지’는 왜 줄줄이 무너졌나'를 퍼왔습니다.
울산ㆍ창원ㆍ거제 등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는 남동 임해권 ‘노동벨트’에서 통합진보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고질적인 정파 간 자리다툼과 원칙 없는 공천이 가져온 결과다.
전멸이다. 전국 최초로 진보정당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을 배출해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는 울산·경남 창원을 비롯해 대단위 산업단지인 남동 임해권 ‘노동벨트’에서 통합진보당(통진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자리만이 아니다. 명분도 잃었다. 진보 단일 후보를 둘러싼 정파 간 갈등과 잡음이 불러온 결과다.
선거운동 개시일을 앞둔 지난 3월28일, 이 지역을 두고 “어떻게 해도 우세인 지역이다. 시작하면서부터 앞서나가는 곳으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라던 조준호 통진당 공동대표의 호언장담이 무색한 상황이 되었다. 텃밭으로 여겼던 지역을 새누리당에 몽땅 내준 셈이다.
조짐은 있었다. 3월28일 이정희 공동대표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을 수 없었다. 비정규직 노조가 이 대표의 연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통진당이 노동자를 외면했다는 정서가 강하다. 솔직히 지금 통진당은 노동자에 대한 전략도 고민도 없는 ‘민주통합당(민주당) 2중대’ 아닌가. 우리가 새누리당은 못 찍을 걸 아니까, 막 대하는 것 같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흥구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출근 및 근무 교대를 위해 공장에 들어서고 있다.
통진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파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셈법이 복잡하다.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 북구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이는 통진당의 김창현 후보였다. 김 후보는 새누리당의 박대동 당선자에게 3634표 차이로 석패했다. 원래 이 지역구는 울산 남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가 단일화 경선에서 탈락해 본선에는 나가지도 못한 조승수 후보의 지역구였다.
창원ㆍ거제, 통진당과 진보신당 갈등
울산 동구청장 출신인 김 후보를 두고 지역에서는 “여기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까 자기 지역구(동구)는 ‘2인자’에게 넘기고, 북구로 밀고 들어온 거다. 곱게 보일 리가 있나”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통진당 내 울산연합의 수장 격인 김 후보에 대한 좌파 계열의 반발도 컸다. 선거 기간 중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찍어도 김창현은 찍지 말자’라는 문자가 노동자들 사이에 돌았다.
울산 동구에는 김창현 후보의 핵심 측근이 배치됐다. 김 후보가 옛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지냈을 당시 정책실장을 역임한 방석수씨의 부인인 이은주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것. 동구는 합당 당시 심상정·노회찬과 함께 통합연대 출신으로 합류한 노옥희씨가 출마를 준비하던 지역구였다. 그러나 최종 낙점된 후보는 이은주씨였다. 울산 지역에서 통진당 내 PD그룹 후보인 노옥희·조승수는 출마조차 해보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이은주 후보는 임기가 2년6개월 남아 있는 시의원이었다.
통진당 전국운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당의 승인 없이 총선 출마를 위한 선출직 공직자 사퇴는 적절치 않다’는 원칙을 정했지만, 허울뿐인 원칙이었다. 무엇보다 이 후보는 2011년 동구청장 재·보궐 선거 당시 새누리당에 보궐선거 비용을 부담하라고 압박한 전력이 있다. 그랬던 이 후보가 시의원을 사퇴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김창현 후보는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인재풀이 부족한 진보정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어떤 사람도 내세울 수 있다”라며 이 후보를 방어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어긋났다. 이 후보는 새누리당 안효대 당선자에게 6362표 차이로 패했다. 이 후보가 물러나 치른 시의원 보궐선거 자리도 새누리당에 내줬다.
똑같은 상황은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 성산에서도 반복됐다. 통진당 손석형 후보는 도의원직을 사퇴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애초 창원 내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해 결성된 야당과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진보 후보 발족위원회’ 내부에서는 현직 선출직 공직자의 출마를 반대해왔다. 그러나 통진당 내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손 후보가 출마를 강행했고, 이후 민주당과 단일화 경선을 치렀다.

상황은 울산보다 더 복잡했다. 진보신당의 김창근 후보가 손 후보 출마에 강하게 반발하며 선거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손 후보는 4년 전 새누리당 강기윤씨가 도의원직을 버리고 출마했을 때 재·보궐 선거 비용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 선출직이 임기 중간에 그만둘 수 없게 하는 조례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손 후보에게 ‘페널티’를 줘야만 단일화 경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김 후보의 요구는 거부됐다.
통진당 한 관계자는 “창원에서 손 후보가 사퇴할 경우 울산 동구의 이은주 후보까지 영향이 미칠 거라는 당권파의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당권파의 복잡한 셈법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했다. 새누리당은 어부지리 효과를 톡톡히 봤다. 손 후보(4만6924표)와 김 후보(7630표)의 표를 합치면 새누리당 강기윤 당선자(5만2502표)보다 2052표가 많다. 단일화가 성사됐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지역 역시 손 후보가 사퇴하면서 치른 도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당선됐다.
창원 성산에서 불거진 통진당과 진보신당 간 갈등의 여파는 경남 거제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거제는 전국에서 드물게 진보신당까지 포함해 야3당 단일화 경선을 치른 지역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지역구로 새누리당의 텃밭이라 분류되는 지역이었지만, 단일화 성사로 야권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곳이다.
그러나 야권 단일 후보인 김한주 진보신당 후보는, 새누리당에 이기고도 당선되지 못한 유일한 지역구 후보가 됐다.
민주당과 통진당 거제시위원회는 거제 단일후보 확정 뒤인 3월20일 “진보신당 거제시위원회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김한주 후보 측이 경남 전역에서 성공적인 야권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촉구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창원 성산에서 손석형-김창근 후보 간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김한주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거제에서 통진당은 ‘창원과 상관없이 우리라도 약속을 지키자’라는 쪽과 ‘창원이 단일화되지 않았으니 도울 수 없다’라는 쪽, 둘로 갈렸다. 결국 통진당 거제시위원회는 개인 자격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허용하되, 통진당을 상징하는 보라색 점퍼는 입을 수 없도록 방침을 정했다. “심지어 일부 통진당원은 무소속 김한표 후보를 돕기도 했다”라고 한 지역 관계자는 전했다.
김한주 후보는 “거제는 옥포에 대우조선해양, 고현에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그밖에 하청업체들이 있는 조선소 도시다.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현장 조직의 선거가 10월에 예정돼 있다. 단순히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것만이 아니라, 선거 결과가 사내 노조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일화가 됐어도 복잡한 구도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거제에서는 무소속인 김한표 후보가 당선됐다. 김 후보는 친(親)새누리 성향으로 분류된다.
노동자 정치 블록은 이렇게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의 기반인 울산과 금속노조의 근거지인 창원, 조선소가 위치한 거제까지. 내부 권력싸움은 단일화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조정할 전략과 정치력은 부재했다. 통진당 한 관계자는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권력 지향이 정파 대립으로 나타나면서 선거 때마다 자리다툼에만 바빴다”라고 평가했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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