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23일자 기시사 '최시중 청탁인 나무라며 “왓투는 알고 하우투는 몰라”'를 퍼왔습니다.

파이시티 대표의 최시중·박영준 로비 진술
“2005년부터 3년간 돈상납…수시로 만나 도움 요청”
최 전 위원장 고향 후배통해 소개받고 정기 로비
“최시중엔 2005년부터, 박영준엔 2007년부터 줘
”채권단 압박 들어오자 직접 방통위원장실 찾기도
검찰의 칼끝이 대통령의 ‘두 남자’를 동시에 정조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려온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왕차관’ 또는 ‘왕의 남자’로 통했던 박영준(52)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수상한 돈거래 의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망에 포착된 것이다. 검찰은 돈을 건넸다는 ㈜파이시티 대표 ㅇ씨의 구체적 진술과 함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황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 브로커 주도, ‘검은 거래’의 시작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ㅇ씨와 브로커 이아무개(61)씨, 최 전 위원장, 박 전 차장 사이 금품 로비 의혹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초부터 서울 서초구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터에 대규모 복합물류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한 ㈜파이시티는 2004년부터 부지를 매입했지만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 ㅇ씨는 사업 초기 우리은행에서 빌린 4200여억원에 대한 이자가 고스란히 쌓이면서 금융 압박에 시달렸다.
2005년 12월, 과거 ㄷ건설에서 같이 근무했던 브로커 이씨가 이런 사정을 듣고 ㅇ씨에게 접근했다. 이씨는 “인허가 및 금융업무 등 사업 전반에 도움을 주겠다”며 ㅇ씨를 꼬드겨 최 전 위원장에게 소개했고, 그 자리에서 박 전 차장까지 불러 첫 만남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당시 최 전 위원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 박 전 차장은 이명박 서울시장을 보좌하는 서울시 정무국장이었다. 이씨는 최 전 위원장의 고향인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같은 동네에서 최 전 위원장과 함께 자라 집안끼리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 역삼동에 ㄷ랜드(건설 분야)와 ㅇ디자인(인테리어 분야) 등 회사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ㅇ씨는 검찰 조사에서 ‘최 전 위원장에게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돈을 줬고, 박 전 차장은 서울시에서 나온 뒤인 2007년 말 이후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돈줄’ 중단한 뒤 채권단 ‘사업 포기’ 종용? 2005년 12월 이씨의 주선으로 첫 ‘거래’를 튼 이들의 관계는 이후 2년6개월 정도 지속됐지만, 정작 파이시티는 업무 추진 과정에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ㅇ씨는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돈을 중간에서 전달해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얼마가 갔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고, 사업 논의를 위해 이들을 수시로 만났지만 이용을 당한 느낌만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ㅇ씨가 2008년 5월 돈 전달을 중단한 뒤 ‘보복성’ 압박이 여기저기서 들어왔다고 한다. 이씨가 ㅇ씨에게 노골적으로 파이시티 지분을 요구하는가 하면,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의 담당자가 ㅇ씨를 찾아와 “우리은행이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독자적으로 사업 추진을 결정했으니 권리를 양도하고 손을 떼라”며 사업 포기 대가로 200억원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ㅇ씨는 이와 관련된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조성사업 예정지인 옛 화물터미널 터. 오른쪽 사진은 조감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당시 ㅇ씨가 이를 모두 거절하자, 파이시티에 여윳돈 400억원이 있고 대출 만기 시점이 아닌 데도, 우리은행은 2010년 8월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하지만 회계법인 실사 결과 청산가치보다 계속기업가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ㅇ씨 등 경영진은 지난해 11월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파이시티 사업 인수 목적으로 비밀협약을 체결했고, 우리은행이 추천한 회생관리인 김아무개씨가 종전 경영진을 배제하고 업무를 부당하게 집행했다”며 사기 등 혐의로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 “왓투는 알고, 하우투는 몰라” 검찰은 최 전 위원장 등과 만난 시기와 장소, 대화 내용을 밝힌 ㅇ씨의 정황 진술과 자료가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전달했다는 ㅇ씨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ㅇ씨는 최 전 위원장이 민간인 신분이던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 때는 물론, 방송통신위원장 취임 이후에도 집무실에서 만났다.
또 ㅇ씨는 2010년 7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수재 등 혐의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수사를 받았는데,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토요일인 같은 해 10월2일 서울의 ㄹ호텔 식당에서 조찬을 하며 최 전 위원장을 만났다고 한다. “남들 눈이 있으니 외부에서 보자”는 최 전 위원장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최 전 위원장은 ㅇ씨의 설명을 듣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고위관계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동석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 관계자는 회의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ㅇ씨는 이후 3차례나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구속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ㅇ씨와 최 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23일 마지막으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은행 관계자의 지분 요구 등 온갖 압박이 들어오자, ㅇ씨는 최 전 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장실을 찾았다. 최 전 위원장은 ㅇ씨의 부탁을 받고 금융감독원의 고위관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민원인이 있으니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 전 위원장은 전화를 끊은 뒤 ㅇ씨에게 나무라듯 “당신은 왓투(What to)는 할 줄 아는데, 하우투(How to)는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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