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사설]혈세만 축낼 아라뱃길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28일자 사설 '혈세만 축낼 아라뱃길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오늘부터 경인아라뱃길(옛 경인운하)에 유람선이 시범운항에 들어간다고 한다. 2009년 3월 아라뱃길 사업이 착공된 지 2년8개월 만의 일이다. 2조2500억원이 들어간 대형 국책 사업이 가시적인 첫 결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환영해야 할 일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의 당초 발표와 달리 아라뱃길이 경제성이 없어 국민 혈세만 계속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에게는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라뱃길 사업은 한강 쪽 김포와 서해 사이에 길이 18㎞, 너비 80m, 수심 6.3m의 수로를 만들어 서울~인천 간 육로 물동량을 분산처리하고 관광·레저 명소로 개발하는 것이다. 물류에 필요한 수로와 터미널 외에 관광·레저를 위한 테마파크, 전망대, 생태공원 등 인공물도 많이 설치했다. 그동안 정부가 밝힌 아라뱃길의 물류 혁신과 관광 시너지 효과는 화려하다. 아라뱃길이 개통되면 컨테이너 93만TEU, 모래 1000만t, 자동차 6만대, 철강재 57만t을 수송하고, 관광·레저 수요와 주변 개발 등으로 2만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3조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아라뱃길을 이용하는 화물 물동량부터 정부 기대만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대형 화물선은 운항할 수 없는 데다 거리는 짧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이다. 유람선을 띄운다고 하나 볼거리가 적어 관광객의 큰 호응을 얻기도 어려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서 아라뱃길 김포터미널까지 한강 15㎞ 구간에 항로를 만드는 서해뱃길 사업이 중단되면 더욱 그렇다. 박원순 시장은 오세훈 전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해수 역류에 따른 생태계 혼란과 지하수 오염 등 환경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경인아라뱃길이 기대한 만큼 물동량이나 관광객을 유치하지 못하면 경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계속 운영한다면 혈세를 먹는 하마가 될 것은 뻔하다. 벌써 수자원공사가 정부에 갑문과 주운수로 유지관리비로 매년 200억원을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라뱃길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철저한 타당성 조사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한 것이다. 최근 보가 속속 준공되면서 ‘새 물결’ 홍보가 한창인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아라뱃길 사업이나 4대강 사업이 재앙이 되지 않도록 기도만 할 수도 없고, 당장 뾰족한 수도 없어 답답할 뿐이다.

[사설]방송 광고시장 혼란이 이 정권의 속셈인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28일자 사설 '방송 광고시장 혼란이 이 정권의 속셈인가'를 퍼왔습니다.
SBS가 독자적 광고영업을 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엊그제 SBS 모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 발표에 따르면 독자적 미디어 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를 설립해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을 통해서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영 미디어렙을 통한 광고영업 같지만 사실상 광고 직거래 선언이다. 방송사가 자회사 미디어렙을 갖는 것은 직접 광고영업이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민영 지상파 방송이 독자적 광고영업에 뛰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올해 말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방송을 시작하는데도 이 정권이 미디어렙법 개정을 차일피일 미룸으로써 종편이 직접 광고영업에 나서자 취해진 자구책의 성격이 짙다. 이제 공영방송 MBC까지 자사 미디어렙 설립을 통해 직접 영업에 가세할 공산이 커졌다. 이렇게 지상파가 종편 출발을 틈타 직접 영업에 나서는 것은 공영성을 외면한 자사이기주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꺼번에 4개나 되는 종편이 마음대로 독자영업을 시작하는 것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지상파의 위기감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방송광고공사의 독점체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3년이 지나도록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 방송광고는 사실상 무법상태에서 방송통신위의 행정권고로 규율되는 형편이다. 

이렇듯 모든 문제는 종편으로 귀착된다. 이 정권은 무슨 속셈인지 순수한 광고시장 논리만으로도 잘해야 1~2개가 살아남을 종편을 4개나 허가했다. 그리고 많은 특혜를 누릴 종편의 광고를 지상파와 같이 미디어렙 체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주장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면서 신생매체이므로 독자영업을 허용해야 한다는, 시장원리마저 무시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반칙은 반칙을, 무리는 무리를 낳는다. 지금 우리는 미디어 시장에 폭풍전야와 같은 불길함, 불안감이 떠돌고 있음을 감지한다. 정권 안위에 도움이 되는 신문들에 선물을 안기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종편 장난’이 거대한 역풍을 부르고 있다. 우선 방송광고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일차적으로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 등 중소방송사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여론다양성이 훼손될 것이다. 또 방송의 공공성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될 것이다. 미디어렙은 방송사가 광고주한테 압력을 가하거나, 광고주가 방송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데 이 체제가 일거에 무너지게 됐다. 나아가 미디어 생태계는 승자독식의 정글로 변할 것이다. 이런 것을 미디어산업 선진화, 여론 다양성 확보라고 믿는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설] 경찰의 ‘나꼼수’ 수사를 경계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28일자 사설 '경찰의 ‘나꼼수’ 수사를 경계한다'를 퍼왔습니다.
경찰이 인터넷방송 (나꼼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과정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연회비 1억원짜리 피부클리닉에 다닌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낸 것을 나 후보 쪽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선거 과정의 근거 없는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 행위는 추방돼야 마땅하다. 선거 풍토를 혼탁하게 하는 흑색선전은 선거가 끝나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릴 필요도 있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기간 중의 다툼을 무작정 수사기관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고소·고발전의 난무는 낙후된 우리 정치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나 후보 쪽의 나꼼수 고발은 여러 면에서 부적절해 보인다. 우선 나 후보가 연회비 1억원짜리 피부클리닉에 다녔다는 방송 내용이 허위사실에 해당되는지부터 의심스럽다. 나 후보 자신도 이 피부클리닉에 다닌 사실은 인정했다. 심지어 인터뷰에서는 “시장이 된다면 피부관리 클리닉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건강관리를 해나가겠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돼 있다. 나 후보 쪽은 자신이 연회비 1억원을 낸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허위사실 유포를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가 ‘연회비 1억원짜리 호화 피부클리닉에 다닐 정도로 서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아왔다’는 본질에는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나 후보가 많은 언론 중에 나꼼수를 표적으로 삼은 것도 의아스럽다. 나 후보의 호화 피부클리닉 이용 사실을 본격적으로 보도한 것은 시사주간지 이었다. 의 보도에 근거해 수많은 언론들이 나 후보의 피부클리닉 이용 사실을 보도하고 비판했는데 하필이면 나꼼수를 걸고넘어진 것이다. 나 후보의 나꼼수 고발과 경찰의 발 빠른 수사 착수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정부여당이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나꼼수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기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스마트폰 앱 심의 전담팀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나꼼수를 비롯한 팟캐스트, 소셜네트워크 등을 겨냥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경찰이 만약 정부여당 입맛에 맞춰 나꼼수를 죽이려는 ‘꼼수’를 부릴 경우 거센 후폭풍을 면치 못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설] 서울시민 선택 짓밟은 부교육감 전격 교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28일자 사설 '[사설] 서울시민 선택 짓밟은 부교육감 전격 교체'를 퍼왔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어제 돌연 서울시 부교육감을 이대영 교과부 대변인으로 교체했다. 교육감 궐위 때 부교육감은 서울시 교육행정을 책임지는 권한대행을 맡는다. 민선 곽노현 교육감이 구속 수감되자, 교과부는 부교육감을 교체하는 방법으로 서울시 교육행정을 장악해버린 셈이다. 시민의 선택을 멋대로 뒤집은 것이니, 쿠데타나 다름없다.
교육감 선출제가 시행되면서부터 교육감은 부교육감에 대한 추천권을 행사했다. 물론 명문화된 권한은 아니지만, 시민이 선출한 교육감이 자신의 정책과 철학을 펼쳐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 하여 관습법으로 자리잡았다. 교육감과 부교육감이 사사건건 마찰해서는 교육자치제는 발전할 수 없다. 비록 곽 교육감이 수감됐지만, 형이 확정된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시민의 선택은 여전히 유효하다. 교과부는 권한대행을 멋대로 교체함으로써 시민의 권리를 부정했다.
교과부는 전임 임승빈씨가 거듭 사의를 표명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고, 임씨도 본인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곽 교육감과 교육정책에서 뜻을 같이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직무가 시작되기 무섭게, 예산 심의, 행정 감사 등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게다가 1월이면 정기인사가 있는데 급작스레 교체한 배경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곽 교육감 구속과 함께 임씨의 교체 논의는 교과부나 친정부 교육·언론 단체 주변에서 무성했다. 임씨는 이해찬, 한완상 교육부 장관 시절 비서관을 지냈고 곽 교육감의 추천으로 부교육감이 됐으니, 이주호 장관의 뜻을 관철할 사람으로는 부적절하다. 임씨가 압력에 굴복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후임자인 이씨는 이 장관의 ‘복심’으로 통한다.
이 장관은 곽 교육감과 학교 정책과 관련해 자주 마찰을 빚어왔다.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정책은 물론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 징계 문제 등에서 날카롭게 맞섰다. 이 장관이 이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장관이 명심할 게 있다. 서울 시민이 곽 교육감을 선택한 것은 그의 학교 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이었지, 생면부지의 그가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주요 정책을 훼손하는 것은 시민의 뜻을 짓밟는 일이다. 대법원에서 유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함부로 손대지 말기 바란다. 이미 추천권을 훼손한 것으로 충분하다.

[사설] 민심에 귀 기울일 시늉조차 않는 대통령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28일자 사설 '민심에 귀 기울일 시늉조차 않는 대통령'을 퍼왔습니다.
여권 지도부가 10·26 재보궐선거 뒤 이상한 행보를 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심각한 민심 이반이 확인되었는데도 원인을 진단하고 기존의 국정 기조를 추스르는 의례적인 몸짓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서울시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임 시장의 그릇된 국정·시정 수행을 심판하려 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대통령 가족이 국가예산을 이용해 개인 재산을 증식하려 한 의혹, 즉 내곡동 사건마저 불거졌다. 포괄적인 국정 실패 정도가 아니라 이 대통령 가족과 청와대가 민심 이반의 원인을 직접 제공한 셈이다. 박원순-나경원 후보의 인물 대결은 부차적 요소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곧바로 국민 앞에 나서서 머리를 숙이고 국정 쇄신을 다짐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과거 선거 패배 뒤에 했던 형식적인 반성의 말조차 듣기 어렵다.
고작 들려오는 이야기는 물러나겠다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이 대통령이 주저앉혔다는 것이다. 선거 다음날인 그제는 2008년 촛불시위 진압과 관련해 문책 경질했던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새 경호처장으로 불러들였다. 어제는 ‘대운하·4대강 사업 전도사’로 알려진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를 국립환경과학원장에 임명했다. 국민이 뭐라고 떠들든 말든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고, 이런 때일수록 내 사람끼리 뭉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작심한 듯한 모양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거 결과를 두고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라”는 말장난을 늘어놓았다. 그만두겠다는 대통령실장을 황급히 불러내 입을 틀어막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속셈은 뻔하다. 책임론이 확산되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을 걱정했을 터이다. 당 차원에서 에스엔에스(SNS) 대책기구나 만들겠다는 것도 우습다. 민심 이반을 초래한 근본 원인을 손대지 않고 여론 전파 경로만 탓하는 꼴이다. 정당은 유권자들이 회초리를 때리면 아파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법인데, 한나라당은 초보적인 정치상식조차 잊은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남은 임기 중 큰 업적을 남길 것으로 기대하긴 이미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국정을 더 망가뜨리기에 남은 1년여는 짧지 않다. 국민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민심을 외면하는 여권의 태도가 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보’로 위장한 4대강 댐은 국가 테러


이글은 Economy Insight 2011-11-01일자 기사 '‘보’로 위장한 4대강 댐은 국가 테러'를 퍼왔습니다.
[Environment] ‘환경 파괴의 절정’ 이루는 4대강 사업과 브라질 벨로몬테댐

4대강의 눈물, 아마존의 고통


한국의 4대강에 건설 중인 16개 보와 브라질의 아마존에 세워지는 벨로몬테댐. 지구촌 정반대쪽에 위치한 두 사업의 공통점은 ‘생명의 물길을 끊는다’는 것이다. 반생명적 댐을 저지하려는 목소리들에 대해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점도 닮았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지난 10월6일 금강 백제보를 시작으로 개방 행사가 시작된 시점에 16개 보가 지닌 문제점을 다시 조명해본다. _편집자

최병성 환경운동가 겸 사진작가 저자 

강은 오랜 시간 자신이 만든 길을 따라 흐른다. 굽이도는 물줄기를 따라 다양한 환경과 생태계가 이뤄지고, 강변에 깃든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도 형성된다. 댐은 일순간에 이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우리는 흔히 댐을 홍수 예방과 물 부족을 해결하는 데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댐 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문제와 고향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아픔에 대해선 필요악이라며 무시한다. 하지만 댐은 홍수와 물 부족 문제를 다루는 만능해결사가 아니다. 
댐의 효용성은 과장됐고, 댐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일반인들에게 감춰져 있다. 지금까지 정부와 건설업자들은 댐 건설을 위해 불합리한 선전을 남용해왔다. 가뭄이 든 해에는 물 공급을 위해 댐이 필요하다 하고, 홍수가 난 해에는 홍수 예방을 빌미로 댐 건설의 필요성을 홍보한다. 정부의 물 정책은 합리적이기보다 허위와 과장을 반복하며 국민을 속여왔다. 
1999년 강원도 영월의 동강댐 건설이 무산됐다. 정부는 동강댐 건설에 대해 국민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동강댐을 건설하지 않으면 2001년 수도권에 2.6억㎥의 심각한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침 2001년 중부 지역에 200년 빈도의 가뭄이 발생했다. 더욱이 북한 금강산댐 붕괴에 대비해 화천댐까지 비워놓은 상태라 한강의 유입량은 8%나 줄어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2001년 서울과 수도권의 물 사용에는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동강댐은 대한민국이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공급 과잉 국가’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가뭄이 일어나면 댐에서 물을 공급받는 도시보다는 댐의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산간지역과 섬마을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아무리 댐을 많이 건설해 물이 많다 해도 정작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대도시의 물 공급을 위한 댐은 넘쳐났다.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사용 불균형 국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댐 건설이 아니라, 물이 부족한 지역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물 해결 대책이다.



댐 재앙의 총집약 ‘4대강 사업’
홍수 예방이 아니라 오히려 홍수를 조장해 주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댐도 있다. 경남 진주의 남강댐이 그 사례다. 2002년 집중호우로 남강댐의 물이 저장 능력을 벗어나자 남강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남강으로 흘러간 물이 낙동강 주변인 함안군의 강둑을 무너뜨리고 농토와 도로, 마을까지 흔적도 없이 휩쓸어버렸다. 낙동강의 홍수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태풍 ‘루사’가 닥쳤다. 남강댐은 다시 물로 넘실거렸지만 이미 발생한 홍수 피해로 인해 쉽사리 물을 뺄 수 없었다. 급기야 댐 상류 마을인 지리산 자락의 산청군 생초면이 댐에서 역류한 물로 침수되는 기이한 일까지 발생했다.
더 이상 물을 저장할 수 없는 남강댐은 댐 붕괴를 막기 위해 사천만 방수로를 통해 황급히 남해로 물을 뺐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천만 일대의 양식장과 어장이 황폐화되고 사천시의 홍수 피해가 심각했다. 특히 사천 공군비행장이 남강댐에서 방류한 물에 잠기게 되자 공군단장이 권총으로 위협하며 남강댐 물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남강댐은 홍수 조절이 아니라 주변 지역에 홍수를 조장하는 흉기가 되었다.
과장된 물 부족 홍보는 동강댐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 부족과 홍수를 대비한다며 4대강 사업을 강행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주장과 달리 4대강 사업은 흐르는 강에 댐을 세워 물을 썩게 함으로써 먹는 물 부족 사태를 초래하고, 4대강에 건설한 16개의 ‘괴물 댐’은 홍수 예방이 아니라 홍수 재앙을 초래하는 ‘물폭탄’이다. 결국 4대강 사업은 물 부족과 홍수를 초래하고, 생태계 단절과 아름다운 경관을 훼손하는 국토 파괴로서, 댐 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악영향이 총집약된 참 나쁜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어 오염’은 심각하다. 4대강 사업의 핵심은 강을 준설하고 한강 3개, 금강 3개, 영산강 2개, 낙동강 8개 등 총 16개 보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댐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 ‘보’라는 용어로 국민을 기만했다.
세계 대형댐학회는 대형 댐의 기준을 △높이 15m △댐 길이 50m △저류량 100만t △홍수 방류량 2000㎥/초 중에 하나만 해당돼도 대형 댐으로 간주한다. 4대강 사업 중 낙동강에 세우는 보의 경우 높이가 9~13m로 대형 댐에 조금 못 미치지만, 댐 길이는 평균 500m로 대형 댐 기준의 약 10배까지 이른다. 특히 저류량 기준으로 살펴보면 함안보의 저류량은 1억2700만t으로 대형 댐 기준 100만㎥의 127배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2010년 6월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낙동강 강정보 수문의 크기는 45×11m짜리 2개로 구성되며, 수문당 방류 능력은 3100㎥/초로 소양강 댐 수문(1125㎥/초)의 2.7배, 팔당댐 수문(1733㎥/초)의 1.8배”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는데, ‘보잘것없는 보에 달린 수문이 대형 댐인 소양강댐의 2.7배, 팔당댐의 1.8배’라며 스스로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왔음을 고백한 것이다. 더욱이 4대강 보에 달린 수문의 방류 능력이 3100㎥/초로서 세계 대형 댐 기준 2000㎥/초보다 1.5배 더 큰 댐임을 확인해주었다.
정부가 4대강에 세운 보들은 ‘길이’와 ‘저류량’, ‘초당 방류량’ 등을 살펴볼 때, 보가 아니라 대형 댐보다 몇 배 더 큰 대형 댐이다. 결국 4대강 사업은 강에 운하용 대형 댐을 줄줄이 세우는 사업이다. 

일제 40여 년보다 더 심각한 국토 파괴
‘강’의 반대말은 ‘댐’이다. 댐은 강의 흐름을 정지시켜 강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16개의 대형 댐을 세우는 4대강 사업이 초래할 가장 큰 재앙은 물을 썩게 함으로써 앞으로 취수원을 옮겨야 하는 사태를 맞는 것이다. 이는 상상이 아니라 곧 닥칠 현실이다. 4대강 사업의 모델인 서울 여의도 앞 한강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한강은 잠실과 김포에 세운 2개의 보 때문에 항상 물이 넘친다. 그러나 물이 썩어 여의도 앞 한강엔 취수장이 단 하나도 없고, 잠실보 위의 구의취수장과 자양취수장은 1800억원을 들여 최근 상류로 이전했다. 이게 바로 앞으로 4대강에서 벌어질 모습이다.
4대강 사업이 초래하는 또 다른 재앙은 홍수다. 이명박 정부는 홍수를 예방한다며 4대강을 준설하고 16개의 거대한 댐을 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4대강 공사로 그동안 홍수를 막아주던 강변의 습지가 대부분 파괴됐다. 이제 물로 가득 채워진 4대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형 물폭탄이 된 것이다. 
최근 선진국들은 홍수 예방책으로 원래의 자연 습지를 회복하는 길을 채택하고 있다. 제방을 허물고 직선형 운하를 구불구불한 자연형 곡선으로 만들고, 물이 넘칠 습지를 복원하고 있다. 변종 운하를 만드는 4대강 사업과는 정반대다. 4대강 사업이 잘못됐고, 위험한 재앙이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역시 심각하다.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철새의 94%는 얕은 물가를 좋아하는 수면성 오리다. 강을 깊게 준설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철새 살 곳이 사라졌다.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던 ‘철새의 낙원’ 낙동강 해평습지가 준설로 인해 초토화됐다. 국내의 최대 철새 도래지인 낙동강 하구 역시 광란의 4대강 삽질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대한민국 하천에 사는 물고기는 얕은 여울을 좋아하는 저서성 어류다. 그러나 준설로 인해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이들이 살 공간이 사라졌다. 물고기는 ‘많은 물’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을 좋아한다. 4대강 사업은 생명의 강을 죽음의 수로로 만든 재앙이다. 

국민·환경·생명에 대한 국가의 테러

대구·경북 지역에서 4대강 사업의 하나인 달성보 공사가 99% 마무리된 가운데, 지난 10월15일부터 오는 11월26일까지 보 개방 행사를 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되는 경북의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 영주댐에서 댐 건설의 사기극을 잘 볼 수 있다. 총공사비 8380억원이 투입되는 영주댐은 높이 50m, 길이 380m, 총저수량 1억8100만t 규모(안동댐의 약 7분의 1)의 댐이다. 영주댐으로 인해 511가구가 수몰돼 강제 이주할 예정이다. 
과연 영주댐은 홍수를 예방하고 물을 공급해주는 타당성 있는 사업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영주댐 하류 지역에 100년에 한 번 정도 오는 큰 홍수가 날 경우 홍수 피해액이 83억원이란다. 공사비 8380억원을 들여 100년에 한 번 발생할 83억원의 홍수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영주댐 환경평가서는 댐의 필요성에 대해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하여 낙동강 유역의 연례 홍수 피해가 극심하여 홍수 재해를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최대 피해 지역은 강원도 강릉·양양·삼척·고성·정선으로, 피해액은 전국 집계의 46%, 인명 피해는 58%, 이재민은 82%를 차지한다. 태풍 루사와 매미 때문에 큰 홍수 피해를 입은 낙동강 유역은 영주댐이 건설되는 내성천 주변이 아니라, 내성천과 아무 상관 없는 지리산 아래쪽인 진주 남강댐 주변 지역이었다. 
영주댐 건설 목적의 92%는 하천유지 용수다. 댐을 건설하는 이유가 홍수 예방과 먹는 물 공급이 아니라, 8개의 거대한 보를 세운 낙동강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물을 흘려보내기 위한 것이다. 특히 영주댐 건설로 인해 지역 문화재의 수장뿐만 아니라, 하류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대 비경인 회룡포가 위태로워진다. 영주댐은 하천을 유지한다며 댐을 세워 내성천을 파괴하는 저급한 코미디다. 아무 타당성 없는 댐 건설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 영주댐이 잘 보여준다.
1993년 ‘대안노벨상’(Alternative Novel Prize)을 받은 환경주의 사상가 반다나 시바는 “테러리스트는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만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댐 건설로 인해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긴 수몰민 역시 ‘파괴적 개발’이라는 테러의 희생자”라고 지적한 바 있다.
영주댐 건설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모두가 거짓이다. 아무런 타당성 없이 재앙만 초래하는 영주댐 건설과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강의 생명과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고, 국민의 삶터를 짓밟는 국가권력의 테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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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넘는 새 민주주의 향한 출발점


이글은 Economy Insight의 2011-11-01일자 기사 '월가 넘는 새 민주주의 향한 출발점'을 퍼왔습니다.
[Cover Story]시위의 중심 맨해튼 ‘리버티 스퀘어’의 의미
고병권 수유너머R 연구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참가자들이 지난 10월18일 뉴욕 경찰의 폭력 진압에 항의하면서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시위의 중심 장소인 미국 뉴욕 맨해튼의 ‘리버티 스퀘어’(주코티 공원)는 지난 ‘9·11 테러’ 때 무너졌던 세계무역센터 바로 옆에 있다.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곳에는 지금 105층 높이의 ‘원월드무역센터’(One World Trade Center)가 건설 중이다. 알카에다의 공격을 받은 자리에서 미국에 대한 내부 공격이 시작됐다는 것은 참 묘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두 공격은 아주 다르다. 알카에다의 자살테러가 미국이 자행한 대외적 파괴가 끔찍하게 뒤집힌 버전이라면, 리버티 스퀘어에서 시작된 공격은 파괴보다는 활력에 기반하고 있다.

파괴가 아닌 활력이 낳은 시위
이 공원의 서쪽부터 살펴보면 우선 신나게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섞어가며 흥겹게 드럼을 치고 색소폰을 불며 클래식 악기들을 연주한다. 그 뒤쪽에는 침낭들이 쌓여 있는데, 거기서 누워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공원 가운데로 들어가면 주방이 있다.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나눠먹는 곳이다. 음식은 대부분 선물로 들어온 것이다(유럽에서 누군가 주문해 배달된 피자도 있다). 주방 곁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쉬거나 간단한 치료를 받는 곳이 있다. 그 너머로 가면 미디어센터가 있다. 세계 곳곳에 이곳 상황을 알리고 거기서 들어오는 메시지를 여기저기로 퍼나른다. 미디어센터를 지나치면 사람들이 토론하거나 연설하는 장소가 나온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마이크 체크’를 외치고 다른 이의 육성을 빌려 자기 말을 전달한다. 그 근처에는 책을 빌려주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동쪽 끝에 이르면 피켓 든 이들이 도로를 따라 쭉 늘어서 있다. 여기서는 각종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그 외에도 ‘월스트리트 점거하라’는 문구를 붙인 채 뜨개질하는 사람, 마사지하는 사람, 작은 공예품 만드는 사람 등이 곳곳에 있다.
매번 리버티 스퀘어를 방문할 때 ‘도대체 이곳은 뭐하는 곳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혁명’이니 ‘계급전쟁’이니 ‘직접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장소인데, 그 모습은 권력 탈취를 노리는 사령부보다는 맨해튼에 새로 생겨난 작은 공동체, 작은 마을 같다는 인상을 준다. 옷을 벗어던진 채 춤을 추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두런두런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태초의 어떤 공동체를 보는 것 같다. 그 옆에서 인터넷을 통해 다른 대륙의 사람들과 지지 메시지를 교환하고 그것을 프로젝터로 상영하는 것을 보면 미래의 어떤 공동체를 보는 듯하다.
한때 이 공원의 입구에는 ‘민주주의는 직접적이다’(Democracy is Direct)라고 쓰인 표지판이 서 있었다. ‘바로 여기가 민주주의의 직접성이 드러나는 곳’이라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민주주의의 재탄생(Rebirth)을 지지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그 의미를 물은 적이 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사람들을 싸잡아서 “월스트리트 돈을 받아먹는 놈들”이라고 욕했다. 그럼 ‘재탄생한 민주주의란 어떤 것이냐’고 묻자 그는 손으로 공원 안쪽을 가리켰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리버티 스퀘어는 일종의 ‘해방구’라고 할 수 있다. 해방구란 삶을 통제하는 기존의 모든 명령이 그 효력을 상실한 장소다. 경찰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곳이 뉴욕의 법과 행정의 바깥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를 해방구로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법적·제도적 영향력이 탈각되거나 부차화한 곳이라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사람들의 삶을 규정해온 모든 원칙, 그리고 사람들이 목표로서 인정하거나 꿈꾸던 모든 지향이 판단 중지되고 브레이크가 걸리는 곳이라는 의미가 훨씬 크게 다가온다.

‘불법’, ‘무자격’이라는 말이 오히려 효력 잃어
이 소박한 공원이 가진 급진성은 바로 거기에 있는 듯하다. 삶을 규정해온 원칙, 법과 제도가 판단 중지되는 곳이기에 여기서는 누구도 연령·직업·인종·문화·성적지향·국적 등을 이유로 자격 제한을 받지 않는다. 어느 미등록 이주자의 말처럼 여기서는 ‘불법의 인간’, ‘무자격의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각종 터부, 금기어들이 효력을 잃는 곳이다. 철학자 코넬 웨스트는 사람들에게 “‘혁명’이라는 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학자는 전후 수십 년간 미국 사회의 금기어이던 ‘자본주의’에 대해 이제는 솔직히 말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자본주의가 문제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좀처럼 용납하지 않던 각종 금기어들을 여기서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아메리칸드림이라고 불러온 삶의 이미지에 대해 괄호를 치고 있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추인했거나 꿈처럼 받들었던 삶의 유형을 타도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는 한때 많은 미국인들이 꿈꾸던 삶의 이름이지만, 이제는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탐욕과 도덕적 파산의 상징이 되었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그와는 다른 삶의 형식, 대안적 삶의 어떤 원형을 재주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주방에 결합한 생태주의자는 설거지한 물이 음식물 쓰레기를 거쳐 텃밭에 흘러가 채소에 양분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는 책을 가져와 도서관을 만들고, 누군가는 신문을 만들며, 또 누군가는 먹을 음식을 장만한다. 누군가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또 어떤 이는 노래와 춤을 선사한다.
이렇게 구축된 삶의 공동체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일자리나 소득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십 년간 자신을 지배해온 삶의 유형을 교체하고 싶은 것이다. 기존 삶을 지배한 원칙·관행·제도에 브레이크를 걸고 거기에 괄호를 친 뒤 대안적 삶의 원형을 주조해내는 힘이야말로, ‘법의 힘’도 아니고 ‘제도의 힘’도 아닌 ‘데모스의 힘’, 즉 ‘민주주의’일 것이다. 언뜻 허술하고 소박한 공동체로 보이지만, 리버티 스퀘어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수십만 명이 벌이는 투쟁의 중심에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거기에는 민주주의가 있고, 새로운 삶의 유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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