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일 화요일

[사설] 한 전 총리 무죄는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 선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31일자 사설 '한 전 총리 무죄는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 선고’'를 퍼왔습니다.
법원이 어제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4월 5만달러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데 이어 벌써두번째다. 특정인을 겨냥해 두차례나 비슷한 과정을 거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니, 검찰이 애초부터 무리하게 전 정권의 상징적 인물을 상대로 표적수사를 벌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 전 총리 말대로 “정치검찰과 이명박 정부의 정치공작에 대한 단죄”이자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선고”라고 할 만하다.
지난해 한 전 총리를 법정에 세운 첫번째 사건은 뇌물 제공자라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현장검증에서 “총리공관 의자에 5만달러를 두고 나왔다”며 애초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검찰이 얼마나 엉터리 수사를 벌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번 사건에서도 9억여원을 전달했다는 ㅎ건영 한만호 전 사장이 법정에서 “검찰이 빨리 빼주고 사업도 재개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해서 허위진술을 했다”며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 이례적으로 첫 사건 선고를 하루 앞두고 둘째 사건을 겨냥한 압수수색을 하는가 하면,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며 한 전 사장을 위증죄로 기소하는 등 검찰 수사는 정도를 벗어났다. 첫 사건에 무죄가 나온 것을 만회하기 위해 검찰이 무리하게 보복수사를 벌였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현 정권 들어 검찰의 표적수사에 무죄판결이 내려진 게 한두 건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권 초기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배임죄 기소, 피디수첩 명예훼손 기소 등 정권의 비위에 맞춰 표적수사를 진행한 사건마다 모두 무죄가 내려졌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사상 최악의 표적수사라는 국민적 비판을 받고도 불과 7개월 만에 다시 전 정권 2인자였던 국무총리를 표적으로 삼았던 셈이다.
검찰은 항상 표적수사가 아니라 제보가 들어오거나 다른 수사에서 단서가 잡혀 수사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앞세운다. 그러나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을 비롯해 최근의 부산저축은행 사건이나 이국헌 에스엘에스그룹 회장 사건 등에서 보듯이 현 정권 최고 실세 관련 비리 의혹은 귀신같이 비켜가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검찰의 그런 변명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석고대죄하고 크게 자성할 일이다. 그러나 검찰이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고설사 자성한다 해도 그것만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이런 정치검찰을 그대로 두고는 사법개혁이니 법치니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이미 경험했듯이 국회에만 맡겨서도 될 일이 아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검찰을 바로잡기 위한 국민적 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내년 총선은 이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교회도 '기독교의 국가지배'를 꿈꾸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1-10-31일자 기사 '"한국 교회도 '기독교의 국가지배'를 꿈꾸나"'를 퍼왔습니다.
10.26 서울시장 선거가 시민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잔 중에 드러난 문제도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던 사건은 시민단체출신 박원순 후보에 대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기도 발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김 목사는 선거 직전 일요일 예배 중에 나라의 "심장부와 같은 서울에 사탄 마귀와 같은 사람이 시장이 되면 어떻게 하나? 올바른 국가관을 가진 사람이 시장이 되도록 기도하자"고 했다는 보도다.

목사의 기도라기보다는 한나라당 지도자의 상대방 후보 공격 발언에 가까웠다. 기독교보수 교회가 얼마나 정치화 됐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미국 기독교 우익들의 행동을 연상시키는 행동이었다.

"한국 개신교, '신권주의' 미국 기독교 따라하나?"

미국 기독교 우익은 기독교의 간판을 내걸고 기독교를 욕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싼조직이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가 반면교사로나 삼아야 할 이들 조직의 행동을 본뜨다니 한심스럽다. 우리는 미국에서 배울 것이 많다. 그러나 배워서는 안 될 것도 적지 않다. 기독교 우익의 행동은 배워서는 안 될 것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본다.

미국의 기독교 우익(Christian Right)는 기독교 근본주의, 복음교회, 오순절교회, 거듭난 교회 운동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dominionism). 나라의 정치도 성경의 가르침을 법으로 삼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권통치(神權統治)주의다. 2006년 미국에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던 의 저자 케빈 필립스는 이 책에서 신권통치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를 갈파한다. 적어도 민주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케빈 필립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미국인들이 기독교 우익에 얼마나 시달리고 그 위협을 느끼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의 칼럼니스트 로스 두테트는 지난 8월 "신권통치의 재탐방"이라는 칼럼에서 미국의 많은 리버럴과 교회를 안 다니는 일반 시민들이 종교적 보수주의자, 다시 말하면 기독교 우익을 단순히 정치적 반대자로 여기는데 그치지 않고 "일종의 실존적인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 종교적 우익이 정상적인 정치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책이 나온 지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신권통치를 '재탐방'한 것은 오늘날도 미국 사회가 기독교 근본주의의 망령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음을 상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지난 8월 당시 내년도 대선의 가장 유망한 공화당 후보로 거론된 미셀 바크맨과 릭 페리가 기독교 우익에 속하는 티파티의 열렬한 지도자들인 것이 드러나면서 기독교 우익이 다시 여론의 화두에 올랐기 때문이다.

의 편집인 지리를 퇴임하는 빌 켈러는  매거진에 실린 기고에서 앞으로 대선 후보를 다루는 기사를 쓰는 기자는 후보의 신앙 문제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되며 후보의 종교관을 철저히 취재해서 보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종교관이 그의 공공 정책에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독교 우파가 대통령이 될 때 민주주의 가치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경고한 글이다.

이렇듯 기독교 우파의 정치관은 민주주의 가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미국 지성인 언론인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독교를 국교처럼 신봉하는 보수 기독교 목사와 신자들이 하나님과 성경을 내세워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사탄이니 종북좌파니 하고 함부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그런데도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봉헌한다"고 공언한 기독교 보수파 대통령의 당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들 신자들이 다수 유권자층에 속해 있어서 그런지 이들의 발언을 질타하는 논평이 없다.


▲ 설교 중인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기독교 우익 끌어들인 공화당, 이제는 종교조직?"

기독교 우익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구성돼 있다. 근본주의는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그 위험성이 비슷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는 도화선에 불 붙은 폭탄처럼 위험시하면서도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위험하게 보지 않는다. 그러면 미국의 기독교 우익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는지 한번 살펴본다.

기독교 우익을 처음 정치무대로 유인한 것은 공화당이었다. 미국 공화당은 64년 배리 골드워터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라 출마했다가 참패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화당의 장래가 비참하리라는 판단 아래 당의 기반을 넓히는 전략을 짠다. 기독교 보수와 손을 잡게 되는 계기다. 공화당은 기독교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반 확대의 일환으로 기독교 우익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그 이전의 50년을 돌아보면 공화당은 열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4번 밖에 이기지 못했다. 의회는 24회기 중 두 차례 밖에 장악하지 못했다. 당의 기반 확충이 절실했다.

기독교 우익과는 공통점이 많다고 본 공화당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끌어들였다. 공화당 지도부는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기독교도 연합(Christian Coalition) 같은 조직을 이용하고 라디오 토크쇼와 설교를 통해서 보수의 정치 어젠더를전파했다. 수 백만에 이르는 유권자 집단을 확보함으로써 공화당은 그 후 실시된 여섯 번 대통령 선거에서 네 번 이겼고 상원의 12회 회기 중 7회, 하원은 10년 간 내리 장악하는 성과를 올렸다.

공화당과 제휴한 기독교 우익은 90년대가 되면 당의 동반자에 만족하지 않고 당의 권력구조 장악에 나선다. 교회 조직을 이용해 지방 카운티의 공화당 조직에서 시작해서 주(州)의 당 중앙조직을 장악하고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력으로 성장한다. 공화당은 이제 기독교 우익의 의사에 반해 정책을 실현하기 어렵게 됐다. 공화당의 한 간부는 "이제 공화당은 정치조직이라기 보다는 종교 조직의 분위기를 풍긴다"고 말할 정도로 기독교 우익이 공화당 내에서 행사하는 역할이 커졌다.

미국에서 기독교 우익은 유권자는 7인 중 1인정도로 추산되지만 이들은 평균 적으로 일반 시민보다 더 열심히 투표하고 정치적으로도 더 열성적이어서 공화당의 정치적 어젠더를 결정하는데 참여하여 그 영향력이 크다. 부시가 다수 국민의 비판을 받는 이라크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 우익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2004년 대선에서 부시는 열세에 몰려있었는데 민주 공화 지지도 차이가 근소한 주에서 부시를 당선시켜 준 것은 기독교 우익의 조직표였다. 부시의 정치참모인 칼 로브가 기독교 우익 교회 목사들에게 전화해서 기독교 근본주의 표를 부시에게 몰아줘 그의 재선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정책이다. 낙태, 이혼, 동성애, 줄기세포연구, 환경 문제 등에서 기독교 우익의 주장은 절대적이다. 기독교 우익은 이 분야에서 민주당 좌파나 진보 세력과 대립한다. 선거에서 이들 기독교도들이 공화당에 투표하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다. 얼마 정부터는 기독교 우익은 성경의 가르침을 현실 정책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이슬람교가 코란의 샤리아를 국법으로 정한 것과 유사하다. 기독교 우익은 그 조직과 그것이 선거에 미치는 위력을 근거로 미국 정치 특히 공화당 정권의 정책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독교 우익이 오만해질 수 있는 근거다. 미국 기독교 우익은 선거 때가 되면 3~4천만에서 1억을 넘는 투표 안내서를 교인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교회의 노골적인 선거운동이다. 교회와 정치조직의 경계선이 분명치 않다.

한나라당과 한국의 기독교 보수파와의 관계가 미국의 공화당과 기독교 우익과의 관계만큼 밀접한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 종교가 정치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할 때 그것은 종교나 민주주의에 다 같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한국기독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장행훈 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올해 4월, 호주는 왜 ISD를 '전면 거부'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1-10-31일자 기사 '올해 4월, 호주는 왜 ISD를 '전면 거부'했나?'를 퍼왔습니다.
[기고] 투자자 국가 소송제는 위험하다!

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 조항으로 꼽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 Investor-State-Dispute)에 대한 공개 토론회가 무산되어 버렸다고 하며, 한나라당은 이제 모든 토론은 끝났다고 공언하면서 당장이라도 힘으로 한미 FTA를 의회에서 밀어붙일 기세로 나오고 있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얼마나 큰 논쟁거리이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가를 알리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루어진 논의가 알려진 것을 보다가 다시 한 번 놀라게 된 것은, 그 동안 반대 진영 쪽에서 제시한 수많은 주장과 논의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정부 측 관료들은 이 제도에 대해 거의 아무런 경각심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학자는 "제대로 된 학자라면 이 제도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수 없다"라는, 정말로 "제대로 된 학자"인지 심히 의심스러운 주장까지 버젓이 펴고 있다는 점이다.

5년 전 나는 어떤 글에서 이런 분들에게 제발 1분만 시간을 내어 구글 검색창을 한 번만 두드려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와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서구의 여러 정부 기관과 유수한 연구소에서 1990년대 이후 이 제도가 확산되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논쟁을 낳았는지, 그리하여 21세기로 들어온 지금 이 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수많은 나라들이 투자자와 국가의 분쟁 해결에 있어서 1980년대 이전의 방법을 선호하는 쪽으로 회귀하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라는 점을 소상히 밝힌 문서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목소리들이 정부와 여당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듯싶다. 이들은 현재 한미 FTA에 명문화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2004년 새로이 마련된 미국의 투자 협정 표준안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 하나에 의지하여 그러한 모든 걱정들은 근거 없는 기우(杞憂)라고 일소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더 많은 숙고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자칫하면 현재의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포함된 한미 FTA 원안이 그대로 실현될 상황에 오게 되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 문제점을 지적할 만큼 지적한 지금,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실만 다시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 올해 2011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향후의 모든 자유 무역 및 투자 협정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고 공표한 사실이다.

(☞다음의 설명은 다음 기사를 참고했다. Kyla Tienhaara & Patricia Ranald, "Australia's rejection of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 Four potential contributing factors", Investment Treaty News, July 12, 2011.)

알려진 대로, 오스트레일리아는 2005년 발효된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AUSFTA)에서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배제한 바 있었다. 그러한 판단을 내린 배경에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반대자들이 제기했던 문제들과 똑같은 고려와 염려가 배경에 있었고, 이것이 노동 운동이나 환경 운동 등 시민 사회 진영은 물론 의회의 대다수 국회의원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 미-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 당시에는 비록 "양국의 법률 체계가 서로 믿을 만하고(robust) 또 역사적으로 많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불필요하다는 명분을 들어 이 제도를 배제하기는 했지만, 외국 투자자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각별한 보호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었고 따라서 많은 비판가들은 이것이 언젠가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등, 이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이후에도 ASEAN 각국들 그리고 대한민국 등 여러 나라들과의 자유 무역 및 투자 협정 논의를 진행해오고 있는 상황이며 여기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논쟁에 불을 붙인 정황은 2010년 들어서 오스트레일리아가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를 위시하여 말레이시아, 페루, 베트남, 미국까지 포함된 초 태평양 동반자 협정(TPPA : 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 논의였다. 이 협정에는 미국이 들어가 있기에 이 협정의 논의야말로 한 때 잠들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다시 전면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다시 오스트레일리아 시민 사회를 일깨웠고, 많은 시민 단체와 학자들이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미리부터 내기 시작하였다. 이에 통상부 장관인 사이몬 크린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자신들 또한 TPPA 논의에 있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조심스런 입장(serious reservations)"이라고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더욱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이 2010년에 벌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걸려드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안을 따라서 시중에 판매되는 담뱃갑의 포장을 광고 문구가 없고 대신 담배로 인한 건강 파괴의 이미지만을 담도록("plain packaging") 하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초국적기업인 필립모리스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게 이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각종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0년 6월 27일 필립모리스는 정식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제소(dispute)하겠다는 입장을 통지한다.

필립모리스는 많은 이들이 미국 기업으로 알고 있고 또 미국은 앞서 말한 대로 오스트레일리아와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오스트레일리아는 1993년 홍콩과 투자 협정을 맺은 바 있었고 여기에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필립모리스는 홍콩의 자회사를 이용하여 스스로를 홍콩 기업으로 내세운 것이다. 필립모리스는 이미 그 전에도 우루과이 정부를 제소한 적이 있었고 이때는 스위스 기업으로 스스로를 내세운 적이 있었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애초의 담배 포장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설령 국제 중재에 걸린다고 해도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안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 의사 협회 등 여러 시민 단체들은 아예 홍콩과의 투자 협정을 종식시키라는 요구까지 하고 나서게 되었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놓고 여야가 대립 중이다. 왜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외국은 ISD를 거부하는가? ⓒ프레시안(최형락)

이 와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2010년 11월에 오스트레일리아 의회의 '생산성 위원회(Productivity Committee)'가 내놓은 최종 보고서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라(seek to avoid)"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 위원회는 정부나 의회와도 독자성을 유지하는 학자들과 연구자들로 구성된 조직으로서, 의회는 2009년 말 이 위원회에 양자 간 및 다자 간 무역 협정의 효과에 대해 포괄적인 경제학적 연구를 위임한 바 있었다. 이 문건은 몇몇 개인들의 "편벽된" 견해도 아니요 또 "이념적으로 편향된" 운동 단체의 입장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여러 명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한 나라의 의회 위원회가 집단적으로 숙고하여 내놓은 문서이니, 그 관련 논지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바로 보기 : Austrailian Government Productivity Commission Research Report, Bilateral and Regional Trade Agreements, November, 2010. pp. 265-277.)

보고서가 내놓은 첫 번째 결론은,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있어야 할 경제학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특별히 투자자들을 보호해주는 장치라고 하기도 힘들고 또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이 제도를 택한다고 해서 외국 투자가 더 들어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옛날과 달리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은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각종 혜택과 보호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려들고 있으며 또 그러한 국제적 평판을 얻으려 애를 쓰고 있기에 오히려 자국 내 투자자들에 대한 역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005년에 나온 한 연구를 보면 80개국의 1만 명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을 때 자국 투자자들은 역차별을 걱정하는 반면 외국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한다.

둘째, 최근인 2010년에 나온 연구에서 볼 때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해외 투자가 증가하게 되었다는 의미 있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셋째, 해외 투자자들이 지게 되는 '정치적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에도 훨씬 효과적인 대안적인 장치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의 다자 간 투자 보장 기구(Multilateral Investment Guarantee Agency)는 개발도상국에 투자하는 이들에게 전쟁, 테러, 또 직접이든 간접이든 수용(expropriation)이 벌어질 위험에 대비하여 보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출입 금융 및 보험 공사 또한 해외에 투자하는 오스트레일리아 투자자들에게 "정치적 리스크 보험(Poltical Risk Insurance)"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제도가 있어야만 할 "경제적"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굳이 포함시킨 여러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볼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책에의 위협과 금전적 위험도 상당하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두 번째 결론이다.

첫째, 이 제도 때문에 공공 정책과 규제 활동에 제동이 걸리는 효과는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먼저 보고서는 소위 "규제에 대한 찬 서리(regulatory chill)"라는 현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해외 투자자와 대상국 국가 사이에 거액의 국제 중재가 걸리는 상황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상국 국가의 정부 관리들은 행여 자신들의 이윤에 영향을 줄 공공 정책이나 규제를 행하지 않는가를 예의주시하는 해외 투자자들의 숨결을 자기들 목덜미에 항상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굳이 "복지부동"의 공무원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위험한 소지가 있는 정책이나 규제는 애초부터 "쫄아서"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있다는 지적이 그 전부터 많았는데, 이 보고서는 그러한 위협이 현실적인 위험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하여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 대상국 정부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경우 국내의 투자자들과의 권력적 비대칭이 발생하여 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어떤 정책이나 규제를 취했을 때 투자자들에게 발생할 "정치적 리스크"는 동일한데 해외 투자자들은 이러한 보호 장치를 가진 반면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아무런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 투자자와 국가의 분쟁을 해결하는 제3자 중재(arbitration)의 국제적 규칙들이라는 것이 제도적인 편향, 이해 상충, 일관성 결여, 투명성 결여,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 등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보고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원회의 평가로 볼 때, 투자자-국가 소송제 조항들을 명시할 경우 이 때문에 주권 국가들은 다양한 범위의 잠재적 문제들에 부닥칠 수가 있으며, 그 문제들의 성격과 정도가 어떠한가는 대단히 계산하기 어렵고 협정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는 알 길이 없을 수 있다."

세 번째, 다음으로 보고서는 그렇다면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채택했을 때 투자 대상국에 발생할 위협을 줄이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논한다. 지금까지 주로 나온 논의는 협정에서의 문안을 최대한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투자 및 무역 협정에 사용되는 용어들은 아주 크고 추상적인 것들일 경우가 많아 거기에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가 애매할 때가 많다. 또 막상 국제 분쟁이 걸렸을 때에 이를 어떠한 절차로 어떻게 해야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될 때가 많다. 이러한 경우들을 최대한 예측하여 협정 문안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방법이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또 여러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간접 수용"의 성격이 무엇인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밀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으며, 결국 정부가 내리는 이런 저런 결정들이 걸핏하면 제3자인 국제 중재의 판단 대상이 될 위험은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결국 이 제도가 존재해야 할 경제적 이유는 찾기 힘들며, 대신 이 제도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위협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협정을 맺을 적에 마련된 이런 저런 협정 문안에 근거하여 그러한 위협을 막아낼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따라서 보고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최종적으로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원회의 평가는 이러하다. 비록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연관된 위험들과 문제들은 적절한 조장을 마련하는 것을 통해 완화될 수 있는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중대한 위험이 여전히 남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국제 투자 협정(…)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키는 것이 과연 오스트레일리아나 상대국들에 물질적 혜택을 가져다주는지는 의심스러워 보인다.. (…)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본 위원회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무역 협정에 있어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현재 이미 국내의 법률 체계에서 제공되어 있는 것 이상의 추가적인 내용적 혹은 절차적 권리를 부여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 조항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회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위원회의 보고서는 정부가 반드시 채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 보고서의 권고를 그대로 따른다. 그리하여 올해 2011년 4월, 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떤 종류의 양자 간 다자 간 무역 및 투자 협정에서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천명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정책적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요약은 다음을 참고하라."Austrailia says good-bye to neutral Investor-State Dispute resolution", Clifford Chance, Client Briefing, June 2011.)

물론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에서의 한미 FTA 논의가 이 보고서의 내용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여러 모로 세계 경제에서의 위치를 우리와 견주어 볼 수 있는 옆 나라의 의회에서 논의되어 결국 정부의 확고한 방침으로 까지 이어진 이 보고서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무시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제도에 대한 "끝장 토론"은 열리지도 못한 상태이며 이 제도를 협정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일방적인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우려를 이어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숱한 논쟁과 갈등을 낳은 바 있는 예민한 쟁점이며 지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이 제도에 대한 보류와 반대를 표명하는 나라들이 최근 들어 급속히 늘고 있다. (☞2008년에 나온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 Chen Huiping, "The Investor-State Disupte Settlement Mechanism : Where to Go in the 21st Century", The Journal of World Investment & Trade, December 2008.)

2004년 미국이 투자 협정의 표준안을 새로이 준비하게 된 것도 NAFTA를 낳은 1994년의 표준안에 들어 있는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숱한 문제를 낳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 2004년 표준안도 과연 실제 상황에서 얼마나 이러한 문제들을 예방하는 데에 효과가 있을지는 이 보고서가 숙고하는 대로 "협정이 이루어지는 시점에는 지극히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존의 문안을 이리저리 해석하여 이런 저런 걱정들이 기우라고 일소하는 대신,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논의를 열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어째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의회와 정부는 이 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여기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파국은 어떤 모습으로 오고 있나?


이글은 레디앙 2011-11-01일자 기사 '파국은 어떤 모습으로 오고 있나?'를 퍼왔습니다.
[유로존 금융위기 기원과 전개] 08년에서 11년, 미국서 유럽으로


▲유럽 중앙은행.
1.
그리스 등의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에서 시작된 유로존의 금융 위기 가능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가장 먼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나라는 아이슬랜드와 아일랜드였다.
그 뒤를 이어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의 남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 차원의 직간접적인 구제 금융을 받았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는 유럽 중앙은행으로부터 긴급 유동성을 지원받았고, 독일과 프랑스 등이 중심이 되어 긴급하게 조성한 '금융 안정 기금'과 국제 통화 기금 등의 긴급 구제 금융을 3차례에 걸쳐 지원받고도 여전히 국가 부도 위기를 모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
이 글에서는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유로존의 핵심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 등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 왔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업들의 얼키고설킨 금융 거래의 속성상 만약 그리스가 국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할 경우 인근 남부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서유럽 국가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파국적인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도 동시에 조망해 보고자 한다.
3.
그리스 재정 위기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려면 멀리 2007년 미국발 금융 위기 상황으로 잠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대략 2006년 3분기와 2007년 2분기 사이에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서브 프라임 모지기 대출자들의 부도율이 급속하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미 연방 주택청과 미 연준이 나서서 모기지 대출 승인 심사 절차를 엄격하게 재조정하면서 수습하려고 했으나, 2007년 3분기와 2008년 1분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쉽게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미 연방 주택청이 주택 가압류(foreclosure)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은행으로 하여금 모기지 이자율을 재조정하라는 행정 명령을 내리고, 미 연준은 정책 금리를 최고 6%대에서 0.25%까지 급격하게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각종 파생 금융 상품이 복잡하게 얼킨 금융 거래를 통해 국내외로 널리 팔려나간 상황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 위기의 확산과 파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차, 3차에 걸친 자산 유동화와 복잡한 금융 거래는 거래 당사자들 가운데 주택 시장의 침체와 주택담보부 채권의 부실화 때문에 누가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될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을 야기했고,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은행간, 그리고 비은행 금융 기업 간의 단기 대출 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4.
2008년 2분기에서 2009년 1분기는 미국 주택 시장 발 금융 위기가 결정적인 국면으로 치닫는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주택 대출을 전문으로 했거나, 신용 부도 스왑(credit default swap) 등의 관련 보험 상품을 팔았던 비은행 2차 금융 기관들(MBIA, MBAC, IndyMac, Countrywide, AIG 등)이 대거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불량 주택 담보부 채권에 대한 보유 비중이 높았던 투자 은행들의 대부분이 파산하거나 인수 합병되었으며(Lehman Brothers, Bear Sterns, Merrill Lynch, Wachovia), 미 연준의 긴급 구제 금융에 힘입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금융 지주 회사로 탈바꿈한 Goldman Sachs).
미국 국내적으로는 미 연준의 각종 긴급 유동성 지원 정책과 금융 산업에 대한 지원책 그리고 부시 행정부 하에서 취해졌던 조세 환급 조치까지 포함하면 총 3차에 걸친 확대 재정 정책 등이 집행되었다.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CEO(가운데 남자)에게 야유를 시민단체 회원들.

5.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 내의 조치들은 어디까지나 국내의 금융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미국 발 불량 주택 담보부 채권을 ‘분산 투자’(portfolio diversification)라는 명목으로 보유하고 있던 유럽의 각종 연기금과 금융 투자자들은 대거 손실을 보거나 해당 정부의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받아야 했다.
미국보다 먼저 정책 금리를 낮추고 주요 파산 은행들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취했던 영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앙 은행의 정책 금리를 추가적으로 낮추고 각종 긴급 유동성 투입 규모를 올리는 조치를 취했고, 뒤이어 유럽 중앙 은행도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6.
이후 미국발 금융 위기는 유럽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부실 부동산 관련 자산에 대한 위험 노출 규모가 컸던 은행들이 부실화되거나 파산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다. 해당 정부들은 당연히 국내 금융 시장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연쇄 파산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금융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다시 정부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부동산 부실 자산으로 손실을 본 외국의 은행들과 기관 투자자들은 해외에서 추가적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손실을 막기 위해 급속하게 자산을 빼돌리기 시작했고, 다시 급속한 자본 유출에 따른 금융 시장 불안정에 대비하기 위해 해당 정부가 재정 건전성의 지속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은행 산업에 추가적으로 개입하는 상황, 그리고 이것이 다시 민간 부분의 금융 위기가 정부의 재정 위기로 급속하게 변모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7.
2010년 3분기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국면은 국제 금융 기관과 민간 투자자들이 급속하게 단기 투자 자금을 남부 유럽 국가, 특히 그리스 등에서 빼내고 이 돈을 다시 남미와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에 투자하는 시기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아이슬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그리스 등이 유럽 금융 안정 기구와 유럽 중앙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의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받았으나, 사태가 수습되기는커녕 대외 채무 비중이 높았던 남부 유럽 국가들로 재정 위기가 파급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바로 이 남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채무 비중이 높은 서유럽의 주요 은행들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유럽 연합 전체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금융 및 재정 위기로 파급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8.
애초 그리스 정부의 재정 위기가 불거진 것은 2009년 집권한 현 사회당 정부 관계자들이 이전의 보수당 정부가 그리스 정부의 재정 상황을 제대로 공표하지 않고 이중 장부를 만들어 그동안 누적되어 왔던 실제 재정 지출 규모를 은폐하고 있었다고 폭로하면서부터이다.
유럽 연합에 가입한 국가들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일정한 규모 이상으로 재정 적자 폭을 늘릴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그리스의 이전 정부가 이를 속이고 은밀하게 정부 채무 비중을 높혀 왔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9.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계 골드만 삭스 소속 투자 자문가들이 어떠한 일을 벌였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골드만 삭스는 당시 그리스 정부와 공모하여 그리스 정부의 명목 부채 현황을 조작하고, 추가적으로 정부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명을 딴 중장기 채권을 지속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자신이 미국 내에서 발행했던 주택 담보부 채권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그 채권의 부실화가 발생할 경우 이익을 볼 수 있도록 관련 신용 부도 스왑에 대한 포지션을 바꿔치기 했다.
10.
BIS(국제결제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그리스는 총 3400억 유로 정도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 그 가운데 프랑스가 대략 420억 유로에 상당하는 민간 부문 부채와 567억 유로에 상당하는 그리스 정부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전체 450억 유로의 채권 가운데 그리스 정부 발행 채권을 339억 유로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를 이어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이탈리아의 민간 부문과 정부가 나머지 부채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의 민간 은행과 금융 기관들에 대한 지급 보증과 예금 자산 보호 등의 명목으로 그리스 정부가 추가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은행 산업에 쏟아 붙는 사이 정부의 채무 비율은 2007년 GDP 대비 105%에서 2011년 현재 158%로 폭증한 상태다.
11.
이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이나 국제통화기금 등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포함하여 제3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막상 사태가 변화하자 갑자기 표변하여 국제 금융 시장의 변동에 희생양이 된 그리스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2007년 1월과 같은 해 12월에 발표된 국제통화기금의 그리스 경제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 경제는 민간 자본의 유입과 이에 따른 신용의 증대에 힘입어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은행 및 금융 산업의 안정성도 증대되어 왔다. 하지만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 약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무역수지가 악화되어 왔고, 공공 부분의 재정 적자가 잠재적인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그럼에도 그리스 정부가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구조 개혁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잠재적인 불안 요인을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금융 부문의 안정성도 제고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12.
그런데 이와 같은 공식적인 평가는 2009년 초가 되면서 급격하게 반전된다. 2009년 5월에 발표된 그리스 경제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 소속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그리스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왔던 국제 신용 대부가 바닥나고 대외 경제 여건이 급속하게 변모함에 따라 본격적인 경기 침체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리스 은행들이 미국에서 발행된 부실 주택 담보부 채권을 직접 보유하지는 않고 있지만, 해외 민간 자본의 유입이 감소되는 상황에서 그리스 은행의 자산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미국 발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국내 은행들의 자기 자본 비율을 높이고, 예금 보험 제도를 도입했으며, 긴급 유동성 지원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재원을 조성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그리스 정부의 바로 이와 같은 조치 때문에 그리스의 재정 적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그리고 실제로 2010년 초반에 들어서자 그리스 정부의 재정 적자 문제는 국제 금융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우려의 대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2010년 3월 초 그리스 정부는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차원에서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일련의 계획을 발표했다.
13.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2010년 4월 11일) 그리스 정부는 유럽연합과 유럽 중앙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3자(트로이카)에게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국제 통화 기금은 4월 15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그리스에 협상 대표단을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마침내 5월 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유럽 중앙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은 그리스 정부에 총 1100억 유로(1450억 달러 수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국제통화기금은 3년에 걸쳐 총 300억 유로(400억 달러 수준)에 상당하는 지원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
물론 이 대가로 그리스 정부는 강력한 구조 조정 정책을 취할 것을 약속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 정부는 ①2014년까지 정부 재정 적자를 3% 대로 줄일 것(참고로 2009의 적자폭은 13.6%) ②이를 위해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공무원 연금과 임금을 줄이고 향후 3년 동안 이를 동결할 것  ③재정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2013년까지 부가가치세와 사치재에 대한 특별 소비세를 올려 GDP 대비 4%대의 조세를 더 거둘 것 ④연기금을 대폭 개혁하고 정부 거버넌스를 효율화하며, 더 나아가 각종 사회 안전망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폭 삭감할 것 등을 약속했다.
14.
그 이후 국제통화기금은 5월 2일 전체 지원액 가운데 1차분을 지원했다. 7월 초 트로이카 대표단이 그리스를 방문, 그동안의 구조 개혁의 진행 과정을 점검했다. 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평가 내용을 종합하면, 그리스는 애초 약속한 바대로 정부 재정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연기금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같은 해 9월 국제통화기금은 그리스 정부에 대한 지원과 구조 개혁 현황에 대한 첫 평가 보고서를 발행하고, 이후 11월 중순 트로이카 대표단이 그리스를 방문하여 두 번째 실사를 벌였다.
이 때 발행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의 구조 개혁 요구를 전반적으로 따르고 있지만, 재정 적자 폭을 줄이는 데 있어서는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냈다. 특히 보고서는 그리스의 의료 보장 체제와 국영 기업의 운영이 비효율적이고, 조세 집행이 고비용 구조라면서 이 분야를 중점 개혁해 추가적인 정부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에 그리스 정부는 같은 해12월 초와 이듬해 2월 말 두 차례에 걸쳐 수정된 구조 개혁 방안을 국제 통화 기금에 제출하였다.
15.
그로부터 한 달 후 국제통화기금의 실사단이 다시 그리스에 파견되어 구조 개혁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관련 보고서는, 2010년 한 해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4.5% 감소했으며, 경제 전반적으로 디플레이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빠져들자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외무역수지도 더 악화되지 않는 상황이 발행하고 있고, 금융 부문의 경우 은행간 대출이나 신용 대출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은행의 자산 건전성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태라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정부 부채 규모가 축소되는 반면 민간 부문의 채무 규모가 대폭 증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몇 달 후 트로이카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의 권고대로 국영 기업과 은행 산업에 대한 민영화 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7월 초 그리스 정부는 다시 세 번째 구조 개혁안을 국제 통화 기금에 제출했고, 이를 근거로 국제 통화 기금은 같은 달 전체 지원금 가운데 세 번째 지원액을 제공했다.
16.
그렇지만 그리스 정부는 7월 중순 경부터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재정 적자 폭의 축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이에 트로이카는 더 이상의 추가적인 금융 지원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그리스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유럽 통화 동맹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그리며 우려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국제 금융 자산 시장의 변동성이 대폭 증대되기 시작했다. 7월 22일 유럽 재무 장관 회의와 17개 유로 통화권 국가들이 그리스 정부에 1090억 유로에 상당하는 신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고, 이와 동시에 이들 국가들이 유럽 금융 안정 기구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신축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사태가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17.
이후 트로이카 실사단이 5번째 평가 보고서 작성을 위해 실사단을 그리스에 파견한다. 그리고 10월 1일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그리스발 재정 위기가 인접 남부 유럽 국가들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등의 서유럽 은행들의 자산 안정성에 대한 의문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6일 현재 유럽 연합의 주요 국가 재무장관들은 유럽 안정 기금의 예비 운용 자금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그리스 정부에 대한 지원 규모를 다시 늘리며, 그리스 정부가 발행한 채권의 50%에 상당하는 가치를 손실 처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8.
이 발표가 있은 직후 지금까지 국제 금융 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는 상황이고, 그리스에서 새롭게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남부 유럽의 재정 위기를 근본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50%에 상당하는 그리스 정부 발행 채권의 최대 보유자는 바로 그리스의 민간 은행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합의안 대로 50%에 상당하는 자산을 손실 처리할 경우 그리스 민간 은행들의 자본 비율과 자산 건전성을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리세션(경기 후퇴)에 빠져들고 있는 그리스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19.
이미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부터 그리스 경제는 경쟁력 있는 제조업 분야의 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인접한 독일과 프랑스에 대해 지속적인 무역 수지 적자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외 채무를 상환한다는 미명 하에 그나마 남아 있는 국영 기업들을 민영화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그리스 경제는 사실상 자체의 독립적인 성장 기반을 갖지 못하는 좀비 경제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그리스는 더 이상 유럽연합이라는 틀에 존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어차피 그리스는 유럽연합에서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정부의 당국자들은 현재 국면에서 과연 무엇이 자국의 경제 공동체의 명맥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20.
지금까지 서구의 주요 언론은 그리스 정부와 트로이카의 협상 타결 여부만을 중점적으로 보도해 왔다. 이 때문에 현재 그리스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현재와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 국면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에 관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있는 자료들의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그리스 정부가 구제 금융을 지원받는 댓가로 취한 일련의 구조 개혁 조치들은 2011년 현재 기준으로 약 14%에 상당하는 5,600유로(7,707달러, 854만원 수준)의 가계 소득의 축소를 가져왔다. 그리스 경제는 올해만도 5.5%의 마이너스 경제 성장율을 경험할 것이고 2012년에는 2.5%의 추가적인 경제 성장 감소율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스 정부의 대규모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시위대들.

21.
이러한 상황에서 자살율과 범죄율을 폭증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캠브리지 대학 사회학과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일랜스와 스페인 그리고 그리스 등지에서 자살율이 지난 몇 년 동안 폭증했고, 그 가운데 그리스의 경우는 올해 들어 16%나 증가했다.
이 연구에 참여했던 파블로스 티마스 교수는 “사람들이 매우 극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살을 택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자살을 일종의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이 와중에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와 같은 극단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22.
또 한 가지 중요한 지표는 이주 노동자에 관한 자료이다. 현재와 같은 파국적인 경제 상황 하에서 젋은 노동 인구의 다수가 그리스에서 탈출하여 대거 인접 유럽 국가들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의 경우만 해도 2011년 상반기 동안 무려 28,000여 명의 남미계 이주 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갔고, 만약 이러한 사태가 지속될 경우 채 10년도 되지 않아 50만 명 정도의 인구 감소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23.
그리스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미 앞서 언급한 것처럼, 며칠 전 유럽연합 차원의 재정 안정 방안은 그리스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민간 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유럽연합 내 프랑스와 독일 민간 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방안을 비대칭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상태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합의안은 한마디로 그리스 은행 부문과 그리스 경제 전반을 포기하고 그리스 발 재정 위기를 차단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실상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불가피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다만 그 파국적인 여파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의 당국자들은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그나마 남아 있는 자생력의 기반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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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일지

• 1999년 1월 1일 유로화가 공식 출범하고 발효됨
•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함
• 2008년 말타와 사이프러스가 유로존에 가입, 같은 해 12월 200bn에 상당하는 경기 부양 조치를 발표
• 2009년 슬로바키아가 유로존에 가입, 에스토니아, 덴마크,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가 유로존 공동의 환율 조정 메커니즘에 가입하고 자국의 화폐 가치를 유로존의 화폐 가치에 준하여 조정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함
같은 해 4월 유럽 연합 집행 위원회는 프랑스와 스페인, 아일랜드와 그리스 정부로 하여금 재정 적자 폭을 줄일 것을 권고함
같은 해 10월 조지 파판드리우(George Papandreous)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가 출범; 11월 두바이발 재정 위기가 전세계 금융 시장을 강타하면서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상태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가 고조됨

12월 그리스 사회당 정부 관계자들이 이전 보수당 정부가 정부의 재정 적자 규모를 은폐했으며, 실제 정부 부채가 300bn에 상당한다고 발표 (GDP의 113% 규모, 유로존 평균인 60%의 두배에 상당하는 수치);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그리스 정부와 은행들의 신용 평가를 낮추기 시작함
• 2010년 1월 유럽연합이 그리스 정부 부채 규모에 대한 실사 파악에 나서고, 2009년 재정 적자를 애초 공표된 3.7%에서 12.7%로 상향 조정함.
• 2010년 2월 그리스 정부는 정부 재정 적차를 줄이기 위한 일련의 긴축 재정 조치를 발표. 그러나 인접한 남부 유럽 국가들,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채권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인접 국가들로 재정 위기가 번져나가기 시작.
• 2010년 3월 유로존 국가들과 국제통화기금은 약 22bn에 상당하는 자금을 조성하여 그리스에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발표.
• 2011년 3월 12일 유럽 금융 안정 기구의 예비 자금을 €250bn에서 €440bn로 확대하기로 합
• 2010년 4월 유로존 가입 국가들이 약 30bn 정도의 긴급 자금을 빌려주겠다고 발표
• 2010년 5월 유로존 국가들과 국제통화기금이 그리스 정부와 합의하여 110bn의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해 주기로 결정
• 2010년 11월 유럽 연의합과 국제통화기금이 아일랜드에 총 85bn의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
• 2011년 1월 에스토니아 유로전에 가입
• 2011년 2월 유로존 재무부 장관들은 500bn 상당의 재원을 가지고 운영되는 유럽 연합 차원의 금융 안정 메커니즘 (European Stability Mechanism)을 설립하자는 데 합의
• 2011년 5월 유럽 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이 78bn의 긴급 구제 금융을 포르투갈에 지원하겠다고 발표
• 2011년 6월 유로존 재무부 장관들은 추가적인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 정부가 더욱 강력한 구조 조정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요구함
• 2011년 6월 2일 미국 신용 평가 회사 무디스가 그리스 국채에 대한 신용도를 B1에서 Caa1으로 강등함. 이와 더불어 10년 만기 그리스 국채 이자 부담률이 16.25%로 오름
• 2011년 7월 3일 그리스 의회는 추가적인 긴축 조치안을 통과시키고, 유럽 연합은 12bn의 두 번째 지원금을 지급함. 같은 달 두 번째 구제 금융 안이 합의됨
• 2011년 7월 21일 유럽 금융 안정 기구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금융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긴급 행정 조치를 발동할 권한을 부여받음; 이 자리에서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은행과 투자자들은 국채 수익의 현재 가치의 21% 상당하는 지분을 손실 처리하고, 그리스 정부에 대한 € 109bn의 신규 구제 금융 지원을 승인함. 더불어 장기 그리스 국채의 만기일을 최대 30년까지 연장하는 조치에 합의함
• 2011년 8월 5일 유럽 중앙 은행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해당 국가 발행 국채를 사들이기 시작
• 2011년 9월 15일 유럽 중앙 은행, 영국 중앙 은행, 일본 중앙 은행 그리고 미국 연준이 합의하여 외화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유럽의 민간 은행들이 이들 중앙 은행에서 달러화를 최대 3개월 간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
• 2011년 9월 17일 유럽 재무장관 회담이 그리스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이나 유럽 주요 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위한 유동성 지원 등에 관해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끝이 남.
• 2011년 9월 22일 국제 금융 시장이 요동을 침,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주요 은행들의 주식 가격이 중심이 되어 국제 주식 시장 가격이 폭락하고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칼, 그리고 이탈리아 국채에 신용 부도 스왑 이자율이 치솟음.
• 2011년 9월 23일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여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독일과 프랑스 정상들과 가진 회담에서 국제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위해 양국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함.
• 2011년 9월 26일 독일 총리 안젤라 메르켈 총리가 유럽 금융 안정 기금 확대 여부를 둘러싼 의회 내 투표가 열리기 전 '그리스에 대한 지원은 유럽연합의 안정과 지속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요지의 연설을 함
• 2001년 9월 29일 유럽 금융 안정 기구, 유럽 중앙 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일명 트로이카가 그리스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조치의 성과를 평가하고 €8bn을 추가적으로 지급할 지 여부를 결정함.
• 2011년 9월 29일 독일과 에스토니아 의회가 유럽 통화 안정 기금을 확대할 지 여부를 두고 의회 내에서 인준 투표를 실시함.
• 2011년 9월 30일 오스트리아가 유럽 통화 안정 기금에 대한 자국 정부의 분담금을 상향할 지 여부를 두고 투표를 실시함.
• 2011년 10월 초 네델란드 의회가 유럽 통화 안정 기금 확대 여부를 두고 투표를 실시함.
• 2011년 10월 3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개최.
• 2011년 10월 4일 유럽연합 재무장관 회의 개최. 이 자리에서 유럽 주요 은행의 자기 자본 비율을 높이는 방안에 관해 논의함
• 2011년 10월 6일 유럽 중앙 은행 정책 금리 이자율 결정, 유럽 중앙 은행 총재 장-클로드 트리체의 마지막 기자 회견, 스페인 정부가 2014년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을 발행, 프랑스 정부도 장기 채권을 발행.
• 2011년 10월 6일 영국 중앙 은행은 추가적으로 £75bn에 상당하는 양적 완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
• 2011년 10월 15일 G-20 재무장관 회의 개최.
• 2011년 10월 17-18일 유럽연합 정기 의회 진행.
• 2011년 10월 25일 슬로바키아 의회 유럽 통화 안정 기금 확대 여부에 대한 의회 승인 투표.
• 2011년 10월 27일 유럽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그리스 구제 금융 지원에 관한 새로운 합의를 발표: 그리스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민간 은행과 투자자들이 50%에 상당하는 그리스 국채를 손실 처리하고, 유럽 금융 안정 기구의 총 예비금을 애초 €250bn에서 €1000bn으로 확대하며, 그리스에 대한 긴급 구제 금융 지원액을 지난 7월에 합의했던 €109bn에서 €130bn으로 확대하며, 더 나아가 유럽 주요 은행들의 자본 재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106bn을 추가적으로 조성하는 것에 대해 합의함

2011년 11월 01일 (화) 08:15:47 신희영 / 뉴욕 뉴스쿨대학

홍준표 "한미FTA, 사법주권 전체 미국에 바친 것"


이글은 대자보 2007-05-30일자 기사 '홍준표 "한미FTA, 사법주권 전체 미국에 바친 것"'를 퍼왔습니다.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출연, 이-박 맹공

* 최근 정부.여당.보수언론은 한미FTA 비준과 관련해 야당 인사들의 과거 한미FTA 관련 발언들을 주요 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ISD(투자자 국가소송제)가 주요 논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와 관련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2007년 5월 28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발언한 기사 전문을 다시 올려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편집자 알림

대미자주노선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한나라당 홍준표 이원이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갖다 바친 것"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홍준표 의원은 28일 CBS (FM 98.1 Mhz, pm 7:05-9:00, 진행 : 명지대 신율 교수)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주한미군과 관련된 협상을 지켜봤는데 방위비 협정을 보면 주한미군이 줄어드는데 방위비는 올라가고 있다"며, "(미국이 한국을 혈맹이나 우방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중심주의로 대하는 만큼) 우리도 미국에 요구할 건 요구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이어 한미 FTA 협상에서 합의된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라고 혹평하고 "FTA가 세계적 추세이므로 따라가야 하지만 따라가는 방법이 자기 임기 중에 실적을 남겨야겠다는 조급한 생각 때문에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이 없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신율 (명지대 교수/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 경선출마 선언을 했는데?

지난 1월 중순에 양 주자 진영에서 참여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사실상 정치 이전에 인간의 문제다. 이명박 전 시장과의 관계는 오래됐다. 그래서 1월 중순에 양 캠프에 가지 않는다고 언론에 말씀드리고 바로 5개월 동안 지난 12년간 국회에 참여하면서 생각했던 정책구상을 했다. 그리고 두 주자가 극심하게 대립할 시점에 가서 내가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 한나라당 경선이 성공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

-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권을 빼앗기면 정권교체가 돼서 자기가 죽는 줄 알아요'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겨냥해서 말하자 홍준표 의원이 '그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일단 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 때문에 정치에 들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땐 표가 된다는 생각으로 가는 게 아니다. 명절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땐 반드시 인사를 드리러 간다. 내가 정치판에서 본 분 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장 솔직하고, 거짓말을 안 하시고, 담백하시고, 부정을 안 한 분이다. 

오늘 내가 인사드리러 갔을 때 KBS 카메라와 일부 기자들이 있었는데, 앉으시자마자 느닷없이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 내가 좀 당황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게이트 사건이 많았으니 그런 뜻으로 말씀하시는가보다 하고, 그러고 난 뒤에 기자들을 내보내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20분 정도 개인적인 얘기를 했다. DJ 마지막 시절에 권력형 비리가 많았다. 그런 뜻으로 내가 말씀드렸다.

- 최근의 '훈수정치' 논란에 대해 어떻게 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후에 유언정치를 했다. 그걸 차용해서 유언정치 비슷하게 하고 있는데, 대통령까지 하시고 은퇴하신 분들이 정치 일선에 정치적 견해를 말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퇴임하시면 국가원로로서 국민통합에 앞장서야지, 특정 정파나 정당을 편드는 건 옳지 않다.

- 호남지역 정서가 움직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움직이면 호남정서가 많이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YS는 또 그런 얘기를 안 하시더라.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시던데, 어쨌든 전직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관여하는 건 어른스럽지 않다.

- 현재의 한나라당 상황은 어떻다고 보나?

지금은 갈등의 시작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갈등이 시작됐고, 검증 단계에 들어가면 서로 쌓였던 감정이 폭발할 것이다. 그래서 검증은 당에서 정한 검증위원회에서 주관하는 게 맞고, 양 주자끼리의 쟁투는 없어야 한다. 특히 후보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을 다 걸러주는 게 맞다고 본다.

- 후보 등록 일정은 어떻게 되나?

후보 등록은 6월 11일부터 13일 사이에 하기로 했다고 오늘 확정했다. 미리 후보 등록을 하고, 당의 주관으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다가 7월 중순 넘어가서 정식으로 중앙선거관리위에 경선 위탁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책임당원제 문제는?

책임당원은 보통 6개월 정도 당비를 내야 하는데, 경선을 코앞에 둔 지금에 와서 급조 책임당원을 만들어서 가입시키려는 건 옳지 않다. 이미 룰이 정해졌으면 정해진 룰대로 가는 게 맞다.

- 출총제 제한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지금은 지분이 3~4%밖에 안 되는 재벌총수가 상호출자를 통해 수십 개의 기업군에서 황제적 지위를 누리는 왜곡된 경제구조다. 이런 경제구조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있고, 불합리한 부의 대물림을 계속하고 있다. 소위 아버지 잘 만나서 재벌이 되는 풍토는 이젠 없어져야 한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현재의 출총제 제한제도는 유지되는 게 맞다고 보는데, 이건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시장과는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를 허용돼선 안 된다는 금산법도 지금처럼 유지돼야 한다. 금산법과 출총제 제한이 유지되는 건 재벌기업의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까지다. 특히 재벌 상속에 대한 철저한 탈세 감시가 필요하다. 최근 신세계에서 상속할 때 수천억을 냈는데, 그런 건 바람직하다. 그런데 수천억의 출처가 어디였나도 명확히 해야 한다.

- 획일적인 고교평준화 제도를 지양하고, 본고사 부활시켜서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특목고 문제는 어떻게 보나?

특목고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내세워야 하는 건 인재대국주의다. 빌게이츠 한 명으로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먹고 사나. 과학자 한 사람의 역량으로 얼마나 많은 국부가 창출되나. 자원이 없는 나라, 아이디어나 과학이나 기술로 먹고 살아야 할 나라에서 획일적인 하향평준화는 옳지 않다.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한 고교평준화 정책이 너무 오랫동안 시행됐다. 이제는 획일적인 고교평준화 제도를 지양하고, 본고사 부활시켜서 대학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서울대나 일류대학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실제로 서울대학교는 세계 100대 대학에 못 든다. 우리나라가 세계 11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100대 대학에 드는 대학이 없다는 건 부끄러운 얘기다. 

인재를 키워야 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아울러 국립대학을 법인화해서 독립채산제로 가야 한다. 국립대학을 법인화해서 국가예산이 투여되지 않고, 대학을 자유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정말 교육기관으로서 가치 없는 대학은 정리돼야 한다. 지금은 너무 난립해있다. 그리고 KBS에 있는 EBS를 독립시켜서 교육부 산하로 가져가서 공교육 지원 기관으로 하고, 국가예산으로 메가스터디라는 인기 있는 강좌를 만들었다. 이 강좌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일류 강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EBS를 교육부 산하로 보내고 국가예산으로, 말하자면 수능 출제 교수들이나 일류 강사들이 24시간 과외채널을 운영해서 산골에서도 EBS만 보고 대학을 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 대미자주노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한미 FTA는 어떻게 보나?

지난 몇 년간 주한미군과 관련된 협상을 보면, 방위비 협정의 경우 주한미군이 줄어드는데 방위비는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 협정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불리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미군기지 반환에 대한 환경치유 협정에 따라 환경치유가 제대로 됐나. 이런 협상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이미 한국을 혈맹이나 우방국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국익우선주의라는 걸 확인했다. 6.25 때 참전한 건 고마운 얘기지만 아직까지도 거기에 매달려있어선 안 된다. 우리도 미국에 요구할 건 요구해줘야 한다. 

한미 FTA의 경우 일부 협상에서 문제가 크다. 국가소송제의 경우 대부분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뒤집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다. 이런 협상은 해선 안 된다. 한국의 헌법체계와 사법주권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협상은 큰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자기 임기 중에 한미 FTA를 하기 위해 너무 조급하게 서둘렀다. 

스위스는 미국과 FTA 협상을 3년 동안 하고도 자국의 농업 보호를 위해 마지막에 파기했다. 스위스는 지금 유일하게 EU에 들어가 있지 않은 나라다. EU연합에 들어가면 자국 농업이 보호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는 세계 일류 선진국이다. 한미 FTA뿐 아니라 FTA는 세계적인 추세이므로 따라가야 하지만, 자기 임기 중에 실적을 남겨야겠다는 조급한 생각 때문에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이었다는 점이 없지 않았다.

- 이명박 전 시장의 한반도 운하와 박근혜 전 대표의 열차 페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인고속도로가 화물수송기능을 상실했다고 해서 경인운하를 하자는 게 92년이었다. 15년 전에 경인운하를 하자고 정부에서 제안해서 15년 동안 해왔는데, 경인운하는 되지 않는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환경 파괴가 온다. 18km에 불과한 경인운하 하는 데도 15년 동안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반도 대운하는 530km다. 환경 대재앙이 온다. 그리고 열차 페리는 TCR 계획이다. 한국과 북한과 중국과 유럽과 연결하는 TCR 계획이 일본을 포함해서 협정을 맺으면 열차 페리가 필요 없다.



▶진행: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월~토 오후 7시~9시)

여야 뒤바뀐 '한미FTA'…누구 말이 맞나


이글은 대자보 2011-11-01일자 기사 '여야 뒤바뀐 '한미FTA'…누구 말이 맞나'를 퍼왔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뒤바뀌면서 이를 대하는 국민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참여정부 때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2007년 7월 ‘한미FTA 협상 결과 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이 능동적으로 추진한 이번 한미FTA는 ‘제2의 개항’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를 주도한 열린우리당의 한미FTA 평가위원장은 지금의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였다.

반면 비준동의안 처리에 앞장서고 있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같은 해 5월 "FTA는 세계적인 추세이므로 따라가야 하지만 자기 임기 중에 실적으로 남겨야겠다는 조급한 생각 때문에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이었다는 점이 없지 않다"고 주장하며 한미FTA를 반대했었다.

이런 입장 변화는 두사람만이 아니다. 상당수 의원들의 입장이 여야가 바뀌면서 왔다갔다 했다.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놓고도 여야는 지금과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열린우리당의 보고서는 “이미 우리가 체결한 대부분의 경제 협정에 ISD가 포함돼 있어 새로운 중대한 도전이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향후 중국, 기타 국가들간의 협정 속에 정당한 ISD 규정의 삽입을 통해 우리의 대외투자를 보호하고 활성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는 이미 ISD조항으로 82개국과 체결했다. 문제제기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2007년 홍 대표는 ISD에 대해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다. 이런 협상은 해서는 안 된다”면서 “한국의 헌법체계와 사법주권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협상은 큰 문제”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었다.

이는 보건·의료·노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공공정책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현재 민주당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야당이 된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한미FTA 비준안 반대를 주장하면서 자기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한미FTA를 초고속으로 밀어붙일 때도 그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심각한 검토와 고민없이 비켜서 있었다” (정동영 의원)

“총 1년이 걸린 협상 기간 동안 통상교섭본부가 추진하는 한미FTA의 본질이 무엇인지 까맣게 몰랐다” (이종걸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후 한미 FTA에 대해서는 서둘지 말고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1월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우리 경제와 금융 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며 "한미 FTA 안에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상황변화를 들고 있다.

참여정부시절 처음 협정을 맺을 때는 이를 통해 한국을 미국-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동북아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청사진이 있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찬사를 받아온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고 불안정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드러난만큼 이를 한국에 들여오겠다는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 의원은 “2008년 금융위기는 나에게 눈을 뜨게 되는 계기였다. 반성의 계기가 너무 늦게 온 셈이다”라고 했다.

또 현 정부가 재협상을 하면서 이익균형이 깨져 손해보는 FAT가 됐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도 재협상 안 된다고 주장했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자동차에서 확보한 이익 100중 75개 이상을 미국에 양보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야당시절과 달리 한미FTA를 조속히 매듭짓는 게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농축수산업과 중소기업 등 피해분야에 대해선 보완대책을 마련하고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협상을 통해 새로 만든 협정안에 대해서도 자동차 업계가 찬성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대고 있다.

물론 민주당은 이윤추구를 최고 목표로하는 업계는 생리상 이익이 100에서 50으로 줄어도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한미FTA가 전 정권에서 추진해왔던 것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ISD폐지와 관련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미FTA 통과가) 문제가 있어 그들이 승리하면 재재협상을 하면 될 것”(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라고 야당의 주장을 되받아쳤다.

여야의 주장이 시간을 달리해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한미FTA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명지대 신율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참여정부시절 정태인 국민경제비서관이 FTA를 반대하며 사퇴한 사실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원죄를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미국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미국의 사정이 더 급해진만큼 우리는 좀 더 느긋하게 시간을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국가소송제의 발톱을 보았는가?


이글은 대자보의 2007-0407일자 기사 '투자자-국가소송제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퍼왔습니다.
[긴급진단] 국가정책 무력화시켜, '조세·부동산 예외'에도 의혹 많아

* 최근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 강행처리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ISD(투자자 국가소송제)입니다. 이 부분을 명확히 밝히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2007년 4월 기사를 다시 올려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편집자 알림
한국 정부는 스스로의 판단에 근거해 모종의 정책- 환경 정책이든 산업 정책이든- 을 입안하고 집행한다. 그런데 한국에 투자했던 어느 미국 자본가는 이 새로운 정책 혹은 법령으로 인해 자신의 수익성이 중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 정책이 자신의 사적 소유에 대한 침해인 ‘간접 수용’이니 자신의 피해액을 배상하라고 한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물론 한국 정부는 거부한다. 

그러자 그 미국 자본가는 90일 안에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의 변호사와 만나서 국제중재재판소가 뽑아준 심판관 1인과 함께 모여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통지서를 보내는데, 그 액수는 물경 3천억원. 깜짝 놀란 한국 정부 당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100억원이 넘는 법정 비용을 써가며 변호사를 뽑아 그 미국 투자자 쪽 변호사와 맞싸움을 벌이도록 내보낸다. 그런데 결과는 한국 정부가 그 미국 투자자에게 2천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나온다. 한국 정부는 꼼짝없이 그 돈을 모두 현금으로 1년 만에 갚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세 유럽 상인법 전통에서 나와 

이런 식으로 해 멕시코는 유해 물질로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파탄낸 쓰레기장 매립 허가를 취소했다가 사업주인 미국 회사 메탈클래드에게 2000년 1600만달러를 지불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미국 투자자 로널드 라우더는 체코에 가지고 있었던 TV 방송국 내부의 경영권 싸움에서 패배하는데, 체코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감독 소홀’의 구실로 2억7천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판정을 2003년에 받게 된다. 비슷한 과정으로 레바논 정부는 프랑스 투자자에게 2억6천만달러를 물어줘야 했다. 러시아 정부는 유코스(Yukos)에 투자한 외국인들에게 총 330억달러에 달하는 세 건의 분쟁에 휘말려 있는 상태이다. 

요컨대, 투자자는 자신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투자 대상국 국가를 분쟁 중재 절차로 끌고 나올 수 있다. 국가는 꼼짝없이 끌려나와야 하지만 반대로 외국 투자자를 제소할 수는 없다. 그렇게 시작된 3인(국가 쪽 변호사, 투자자 쪽 변호사, 심판관)의 모임은 부당한 피해가 있었는지 그리고 피해액은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해 필요한 조처를 한다. 분쟁의 대상이 되는 정책은 환경·산업 정책은 물론 심지어 ‘감독 소홀’에까지 걸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분쟁이 시작되면 결정은 오롯이 그 3인이 독점한다. 그 국가의 국민들은 손가락을 물고 구경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법정’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 것이 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분쟁 중재 절차이다. 

이렇게 희한한 제도는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일까? 

먼 옛날 중세 유럽에는 상인법(lex mercatoria)이라는 비공식적인 법 체계가 있었다. 유럽 전역을 누비는 상인들에게 상업적 시비가 생길 때마다 교회나 영주의 ‘법정’으로 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비용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결코 수지맞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 사이의 신망 있는 상인 한 사람을 중재심판으로 삼아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합의를 보는 것을 상인들 세계 안에서 일종의 법처럼 만들었다. 이러한 분쟁 중재(arbitration)의 전통은 20세기에도 살아남았고, 특히 1980년대 끝 무렵 전세계로 확장되기 시작한 양자간 투자협정(BIT)과 자유무역협정(FTA)의 물결 속에서 이 ISD라는 독특한 제도를 탄생시킨다. 분쟁의 발생과 해결의 절차는 상인법적 전통의 틀 속에서 행해지는 분쟁 중재와 동일하지만, 분쟁 당사자들은 상인들이 아니라 한쪽은 투자가요 한쪽은 주권 국가인 데다, 분쟁의 대상이 되는 것도 상거래가 아닌 그 주권 국가가 행하는 제반의 법적·행정적 조처이다.

한마디로 외국 투자자가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투자가와 상인들이 주권 국가와 동급의 법적 지위로 올라서서 그 주권 국가의 행위를 상행위의 관점에서 시비를 걸고 맞장을 뜰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1994년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경험 속에서 전 지구적으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제 투자가들의 이익을 지킨다는 목적에서 주권 국가의 환경 정책, 공공 정책, 보건 정책 등이 무력화되고 있으며 또 앞으로 더욱 무력화될 것이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온 것이다. 

외국 투자자에게 힘을 주는 ‘간접수용’ 개념 

이 희한한 제도를 더욱 악명 높게 만든 것은 이른바 ‘간접 수용’(indirect expropriation)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철도나 도로를 놓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개인 토지들을 공공의 목적에서 가져가는 경우처럼 공공의 목적에서 개인의 사적 소유를 가져가는 것을 ‘수용’이라고 하며, 이때 국가는 응분의 보상을 그 개인에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간접 수용’이란 국가가 실제로 사적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해도 일련의 조처와 정책을 통해 개인 자산의 수익성 등 ‘자산 가치’를 심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으니 응당 그 피해액만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확장된 수용의 개념이 채택될 경우, 투자 대상국은 단순히 외국 투자자의 자산을 함부로 가져가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들의 수익성을 심각하게 건드릴 만한 일체의 정책과 조처를 하지 못하도록 위축당하게 마련이므로, 이 제도에서 투자 대상국 국가와 외국 투자자 사이의 비대칭적 권력을 더욱더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는 줄곧 이 제도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이며, 이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무지와 오해”의 소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제도의 파괴성을 심각하게 고려해, 간접 수용 관련 분쟁은 국제 분쟁 절차가 아니라 한국의 사법 체계로 해결하자는 실로 ‘대담한’ 요구까지 제출한 바 있으며, 이것이 거절당하자 최소한 부동산이나 조세 정책만은 ISD를 통한 외국 투자자의 분쟁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제외하자고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기게 요구했다. 

현재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ISD, 특히 간접 수용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줄이기 위해 자신들의 요구를 ‘대폭’ 관철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 골자는, 첫째 부동산과 조세 정책은 (간접) 수용을 구성하지 않는 것으로 명시해 ISD를 통한 미국 투자자의 분쟁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거했고, 둘째 외환위기 등의 상황에서 발동하는 세이프가드(긴급조치)는 ISD 분쟁 대상에서 제외했고, 셋째 보건 환경 안전 등과 관련된 공공정책들도 ISD 분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아직 타결된 협정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를 확실하게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지금까지 언론 보도 등으로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이것이 실상에서 심하게 부풀려진 과대 선전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정부가 ‘부동산 정책’이라고 하고 있는 것은 기실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으로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에 의하면 그 내용은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B)이나 투기과열지역의 대출금리 조정 등의 정책에 국한되는 것으로서 부동산 정책이라기보다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관리에 관한 ‘거시 금융 정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막상 부동산 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부동산 계획이나 토지의 관리 및 사용에 관련된 정책을 제외시켜달라는 우리의 요구는 이미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 의해 좌절된 바 있다. 

‘명백한 위협’이 있을 때만 예외라고? 

조세 정책의 경우도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돼 있으나, 그 ‘일반적’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고 되레 분쟁해결 장(chapter)으로 가보면 ‘조세 조치는 원칙적으로 협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 단, 조세 조치가 수용에 해당하는 경우는 투자자 대 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가 적용’이라는 구절이 나타난다. ISD나 다른 법률 분쟁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사건이 일반적인 것에 해당하는가, 예외적인 것에 해당하는가이다. 요컨대 ‘일반적인 경우’는 아예 분쟁이 일어나지도 않게 마련이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4월4일 나온 보충 문답 문건에도 이 ‘일반적으로’의 정의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되레 ‘조세 조치도 예외적인 경우에는 간접 수용이 될 수 있도록 협정문에 규정된 것은 사실임’이라고 의혹을 한 번 더 확인해주고 있을 뿐이다. 

▲한미FTA의 문제를 지구정치경학학적으로 풀어놓은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녹색평론, 2006

또, 보건 안전 환경 정책의 경우에 대해서도 미국 쪽은 협상 타결 직전인 4월1일까지 이것들을 간접 수용 개념에서 배제하는 것은 오직 ‘진정하고 명백한 위협이 있을 경우’로 한정하자고 했고 이를 한국이 받아들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최우성 기자, “투자자-국가소송제 결국 미국 뜻대로”). 

원래 보건 안전 환경 정책이란 단 1%의 위험성만 있어도 즉각 발동되는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준거하는 것인데, 보건 안전 환경 문제에서 ‘진정하고 명백한 위협’이 발생한 상태는 사실상 ‘준재난’ 상태와 다름없다. 정부가 함구하고 있지만, 만약 타결 협상안이 정말로 ‘진정하고 명백한 위협’이라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다면 사실상 준재난 상태가 발생하기 이전의 예방적 정책들은 모두 ISD의 분쟁 대상으로 남아 있는 셈이 된다. 

결국 타결된 ISD 관련 협상안은 미국의 표준적 ISD 협상안을 그대로 답습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 본문은 655호 4월 12일자에도 실렸습니다.